겉으로는 규제혁파 외치며 실제로는 역주행…13년새 규제 건수 두배로 껑충
한국제도·경제학회(이하 학회)는 지난달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를 주제로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한국경제를 개선하고 선진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아래 글은 한국제도·경제학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발표한 <한국시장경제의 특질 –지경학적 조건과 사회·문화의 토대에서> 발제문이다. 미디어펜은 이영훈 교수의 발제문을 상·하로 나눠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시장경제의 특질 –지경학적 조건과 사회·문화의 토대에서(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기득권 확보를 위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한풀이

고도성장기의 권위주의 정치를 해체한 1987∼1989년의 ‘노동자 대투쟁’은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까. 그 기간에 무려 7,238건에 196만의 노동자가 참가한 노동쟁의가 발생하였다. 노동자의 업종별, 지역적, 전국적 연대도 발전하였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자본주의 부정과 사회주의 건설”을 꿈꾸어 온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혁명가적 열정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의 노동운동은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였다. 대투쟁을 주도한 대기업과 서비스업 공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지위와 권리를 기득권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참여하였을 뿐이다. 그들은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묵인하였으며, 그들을 노동조합의 동료로 맞아들이길 거부하였다. 그들은 높은 임금과 양호한 근로환경을 제공하는 그들의 사용주와의 개별적 교섭에 만족하였으며, 열악한 처지의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연대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 대투쟁’은 그 때까지 “자본가들에 대해 억눌렸던 울분을 배설하는 감정적 표상”이었을 뿐이다. 전국을 휘감은 ‘한풀이’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 정규직 노동자들은 확실히 그들이 이전과 달라진, 사용자와 여전히 냉랭하지만 거의 대등한, 신분적 지위에 도달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만족감은 그들과 동류로 섞일 수 없는 하층 노동자에 대한 신분적 우월감이기도 하였다.

   
▲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제도·경제학회의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의 전경. 

기업과 산업 제도의 특질, 저신뢰 사회 및 정부 규제의 강화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적이 있는 기업 간의 수급관계에 대해 마찬가지 시각에서 몇 가지 특질을 살핀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의 착수와 더불어 한국경제는 기업 간의 협력이라는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생경한 문제에 부딪혔다. 대기업에 우량의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부쩍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1975년 정부는 계열화촉진법을 제정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증진하고자 했다. 정부는 일본의 하도급 관계를 모델로 삼았다. 계열화촉진법은 일본의 관련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실패작이었다.

일본에서와 같은 기업 간 신뢰와 협력의 전통은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대기업은 하도급 중소기업을 종속기업으로 간주하였으며, 중소기업의 기술과 품질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지 않았으며, 하도급의 결제를 미루었으며, 하도급 기업을 병합하여 기업 조직을 확장하고자 했다.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특정 기업과의 장기간 고정거래가 그를 종속시킬 위험성을 처음부터 경계하였다.

계열화촉진법이 요구한 공동사업계획서는 형식에 불과하였으며, 계열기업협의회의 활동은 미미하였다. 당연하게도 정부의 규제는 강화되었다. 1975년 법률이 금지한 대기업의 부당행위는 6가지였는데, 1993년까지 5례의 개정에서 11가지로 늘었다.

다른 산업·기업정책에서 마찬가지이다. 정부규제는 관료들의 선호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에 역사적으로 배태한 요인에 의해 초래되고 강화되었다.

전경련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각종 규제는 2000년 6912개에서 2013년 6월 1만 5007개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2014년 OECD가 작성한 상품시장규제(Product Market Regulation) 지표에서 한국은 2013년 조사대상 OECD 국가 가운데 4위이다. 한국보다 규제 수준이 높은 나라는 터키, 이스라엘, 멕시코의 세 나라이다. 한국 다음은 슬로베니아, 그리스, 폴란드의 순서이다. 비회원국으로서 규제가 가장 강한 나라는 중국,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크게 보아 한국은 이들 10개 국가와 경제체제의 질을 같이 하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주의이다. 한국의 경제체제는 ‘국가주의 시장경제’이다.

   
▲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제도·경제학회의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국경제의 특질에 관하여

먼저 간단히 요약한다. 한국경제는 고도의 개방체제이며, 소수 대규모 기업집단이 국가경제의 중핵을 점하고 있다. 그 대척점에 수출 및 대기업과 무관한 영세사업체가 과밀하게 적체해 있다. 노동시장은 고용의 질이 열악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절성이 강하며, 숙련을 기업 외부에서 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가 드러내는 이 같은 몇 가지 정형화된 특질의 상당 부분은 고도성장기 이래 주요 소재, 부품, 기계를 대일 수입에 의존했다는 지경학적 조건에 기인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한국경제의 특질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사회·문화의 특질과 깊숙이 조응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사회는 관료제적 위계로 통합된, 저신뢰의 물질주의 사회였다.

사회·문화의 그러한 특질은 권위주의정치에 의해 고도성장의 동력으로 동원되었지만, 이후 이른바 ‘민주화시대’를 맞아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저지하는 ‘역사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

   
▲ 고도의 개방체제, 시장경제체제를 통해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한국. 하지만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로 인해 정신문화는 개방되어 있지 않고 병리적 분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지적이다. 사진출처: 미항공우주국(NASA)의 Earth Observatory 사이트(http://earthobservatory.nasa.gov/IOTD/view.php?id=83182) 

한국사회, 지식인 사회의 병리적 분열

한국경제가 정형화된 사실로 드러내는 특질 한 가지가 추가한다. 그것은 한국의 경제학자를 포함한 지식인 사회는 그들의 경제체제를 형성해 온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나아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결여한 현실은 정신과 육체의 병리적 분열을 초래한다. 예컨대 한국경제는 대외의존율이 100%가 넘는 고도의 개방체제이다. 그렇다고 이 나라를 네덜란드, 벨기에와 같이 고도로 개방된 정신문화의 나라로 평가하면 큰 오산이다. 이 나라가 뿜어내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독소는 국제적으로 특이한 수준이다. 2010년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외국인 이민자나 노동자를 살기 싫은 이웃으로 지목한 정도는 그에 응답한 17개국 가운데 단연 최고이다.

한국인의 육체와 정신이 분열 상태임을 드러내는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들을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 고도성장의 길로 이끈,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지경학적 조건으로서 인접국 일본과 비생산적, 편견에 가득 찬, 분쟁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20년을 경과한 양국 간의 역사적, 외교적 분쟁은 이 나라의 지식인 사회가 자신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해함에 있어서 얼마나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근래에 생산된, 경제체제와 사회·문화의 비교적 특질에 관한 몇 편의 우수한 논문들은 공통으로 한국이 멕시코, 터키, 그리스, 슬로바키아, 폴란드, 이탈리아, 헝가리 등과 동질의 국가군을 형성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OECD의 회원국으로 초대된 것은 그들의 지경학적 조건, 그 비교우위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죄다 주변부 국가들이다.

지난 세대의 경제적 성공에 도취해 있는 한국인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국 역시 주변부 국가이기는 마찬가지다. 정신과 육체의 분리는 주변부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