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구멍에 돌려막기 편법…부실급식·출산률 제자리 역기능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여야가 새해 예산안의 3대 쟁점인 누리과정, 담뱃값, 법인세 등에 대해 최종 합의했다. 타결 후 국회 내 분위기는 한층 고무된 상태다. 예산안 처리가 12년 만에 법적 시한을 지키게 됐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식이 달갑지만은 않다.

여야의 만족스러운 표정의 자평은 또다시 국민의 눈을 속이는 연마전술임을 아니까. 복지예산을 둘러싼 논쟁이 수 개월간 뜨거웠지만 결국 여야는 무상복지 문제의 ‘본질’을 피해 갔다. ‘복지예산 구멍’의 드러난 표면만 얼른 봉합하는 수준에 그쳤다.

합의안에 따르면 누리과정 예산 증가분만큼 정부가 시도교육청의 다른 사업 예산을 늘려 지원한다. 교육청은 그 예산을 누리과정으로 편성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편법이 동원된 ‘예산 돌려막기’다. 여당은 누리과정의 국고 지원 불가를 지켰고 야당은 무상급식-무상보육 예산 모두를 확보했다. 더 넓게 보면, 여당은 대통령에게 돌아갈 화살을 막았고 야당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거센 비판들을 일단 잠재운 셈이다. 여야 모두에게 실익인 환상적인 전략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시행 3년 내내 파열음이 끊이지 않았다. 줄곧 정부, 지자체, 교육청이 서로 예산과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는 ‘복지폭탄 돌리기’를 해왔다. 올해 초부터도 전국 곳곳에서 복지파탄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여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은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 공격하고 야당 성향의 좌파교육감들은 “무상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대립했다. 이후 홍준표 경남지사 발(發) 무상급식예산 중단 논란과 이재정 경기교육감 발(發) 누리과정 보이콧이 전국으로 무상복지 논쟁을 재점화시켰다. 그 불똥이 결국 국회로 튀었고 법인세 인상 등 증세논란까지 번졌다.

이 과정에서 여야가 보인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은 빤하다. ‘우리 복지’는 후퇴 못한다는 거다. 그러나 복지공약만큼 전염성 강한 것도 없다. 제아무리 ‘우리꺼’라며 외쳤던 공약도 다음 선거철이 되면 나란히 여야의 공통 공약으로 자리잡게 된다. 지금 ‘여당=무상보육’ ‘야당=무상급식’임을 기억하는 국민이 절반이라도 될까. 선거바람이 휙 지나고 나면 국민에겐 어느 공약이 누구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복지재정이 바닥난 마당에 정치권이 ‘내 공약’ ‘네 공약’ 구분 지으며 논쟁을 벌인다. 이번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월권’을 행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가 원내대표 시절 ‘영유아 무상보육’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바른사회시민회의 회원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계획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뉴시스

복지폭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무상보육은 2011년 말 국회가 만 0~2세 무상보육 대상을 전 계층으로 늘리면서 촉발됐다. 이듬해 3월 ‘어린이집 대란’이 벌어졌고 하반기엔 지자체들이 재정부족으로 사업 중단을 외쳤다. 9월 보건복지부가 소득하위 70%로 수혜범위를 축소하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을 발표했다.

하지만 2012년 말 정치권은 전면 무상보육을 그대로 고집하며 양육수당까지 추가시켰다. 또한 무상보육 첫 해 만 3~4세 아이를 둔 가정들이 복지혜택에서 소외됐다며 강력 항의하자, 만 5세만 지원하던 누리과정을 만 3~4세까지 확대시켰다.

그렇게 1년 만에 만 0~5세 전 계층 모든 가정에 무상보육 지원이 이뤄졌다. 무상보육 예산은 2011년 4조1033억 원에서 올해 10조3546억 원으로 2.5배 껑충 뛰었다. 정부가 무상보육 폐기선언을 할 정도로 무상보육의 폐단은 심각했지만, 정치권의 조급증과 근시안적 정책결정이 현재의 상황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결국 선별적 복지로 돌아가야 할 길목에서 계속 도망친 건 정치권이다.

무상급식은 2011년 8월 서울시 주민투표와 오세훈 시장의 사퇴를 불러올 정도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돼 올해 무상급식 대상 학생은 전체 초중고교생의 70%에 이른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자”는 어버이 마음을 가장한 무상급식은 ‘부실급식’ 오명을 뒤집어쓴 채 아이들에게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해마다 버려지는 음식이 늘어 무상급식 잔반처리에 지난 4년간 무려 388억 원이 소요됐다. 무상급식의 ‘친환경’ ‘안전한 먹거리’란 아름다운 구호도 ‘저질’ ‘농약급식’ 논란을 일으키며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상급식에 예산이 쏠리면서 교육의 질(質)을 높이고 낡은 학교시설 보수에 쓸 예산이 급감한 점이다. 학교 현장에선 영어 원어민 교사들을 찾기 힘들고, 명예퇴직 예산이 줄어 많은 젊은 예비교사들이 발령적체 상황에서 절망하고 있다.

무상급식이 시작된 2010년 5631억 원이던 예산은 올해 2조6239억 원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학교 안전, 교구 개발,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예산 등이 무상급식에 밀려나야만 했다.

이쯤되면 무상급식이 먼저인지, 아이들 안전과 교육의 질이 먼저인지를 학교와 교육수요자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일부 지자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무상급식보다 교육환경개선이 중요하다는 결과도 나왔다.

원래의 취지와 거꾸로 가는 복지정책

너도나도 복지를 늘리자고 했지만 정작 복지를 왜 주장했는지, 과연 실효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언급하는 이가 없다. 무상보육의 도입 취지는 저출산 문제 해소와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이는데 있다. 저출산 예산의 75%(10조원)를 무상보육에 투입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무상보육을 몇 년간 시행했건만 출산율은 요지부동이다. 또한 만 0~2세의 어린이집 이용률은 거의 50%에 이르지만 엄마의 취업률은 33%에 그친다. 무상복지 주창자들이 틈만 나면 모범사례로 내세워 온 스웨덴조차 취업 여부에 따라 차등 지원된다.

무상급식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눈칫밥 먹이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급식을 먹으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거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밥 한 끼 정도는 국가가 먹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밥 한 끼에 약한 국민 정서를 파고든 것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면 냉혈인간 취급을 받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무상급식 재정에는 한계가 있기에 전체 급식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급식만으로는 부족해 집에서 간식비를 챙겨오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저소득층 아이들은 간식비 차별로 상처받는데다 급식의 부실화로 이중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밀려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사업이 축소됨으로써,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에게 결정적인 불평등을 불러온 셈이다.

무상복지의 ‘싱크홀’을 대비하라

여야는 무상복지 예산을 합의했다고 해서 근원적 문제를 해결한양 착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이번 합의는 ‘무상복지의 이상징후’를 덮어버려 사회적 논의 기회를 차단시켰다. 이미 많은 국민들은 무상급식이든 무상보육이든 이대로는 버텨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정치적 계산을 접고 복지의 구조조정에 용기있게 나서야 한다. 이번의 복지예산 돌려막기는 내년에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행여 이런 편법이 관행처럼 굳어져서도 안 된다.

지자체의 빚더미는 더 커지고 국가 복지 디폴트의 시계는 더 빠르게 카운트다운 하고 있다. 지자체 곳곳에서 ‘무상복지의 싱크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밑바탕의 구조적인 문제해결 없이, 보이는 부분만 메운다고 싱크홀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번의 복지예산 우회적 지원은 복지예산 구멍에 모래를 갖다 채운 임시방편일 뿐이다. 여야는 선거철 복지바람만 휘날리고는 재정조달에는 침묵해왔다. 무상복지 원죄가 있는 정치권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대한민국 전체가 복지 싱크홀에 빠지기 전에 말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