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기한내 처리 역사적 의미 퇴색시키지 말아야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국회선진화법과 예산안 처리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선진화법을 제대로 적용하여 정부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법을 지키려는 국회의장의 의지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일관된 태도에 밀려서 야당인 새민련도 예산심사를 보이콧하려다가 바로 원대복귀해서 정상적으로 심사에 임했다. 이에 따라 여야 합의로 수정안을 마련하면, 비록 정부안이 상정되었다 하더라도 표결 시 원안보다 수정안을 먼저 표결하는 규칙에 따라 상정된 정부 예산안보다 먼저 처리하는 식으로 예산안을 합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간에는 헌법 제54조에 예산안 처리 기한이 정해져 있음에도 ‘그 놈의 헌법’이라는 모 대통령의 말처럼 국회도 헌법 알기를 우습게 알아왔었다. 그래서 연말이 다 가서야 국가예산이 통과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해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국비를 받아서 이를 예산에 포함시켜 처리해야 하는 지방의회는 예산집행계획도 세우기 전에 연초에 또 다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2중의 고역을 치러야 했다. 이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

예산부수법안이라는 이름의 세율 증감 끼워넣기는 부당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11월 26일 31개 목록의 14개 법률안을 예산부수법안들로 지정했다. 문제는 상임위에서 이 예산부수법안들을 충분히 다룰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세율 및 공제 내역의 증감들을 충분한 심의 없이 예산부수법안들로 끼워넣기로 처리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것이다.

세율 및 공제 내역의 증감들이 있어 세입이 증감될 경우에는 그것은 추가 경정예산 등에 반영하면 된다. 따라서 충분한 심의를 마다하고 끼워넣기를 할 이유가 없다.

   
▲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이 열린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실에서 회동이 길어지자 새누리당 김재원(오른쪽부터) 원내수석부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가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다. /뉴시스
미국 독립혁명의 정신이 무엇인가? “대표 없이 조세 없다”가 아닌가? 그만큼 현대 국회에서는 조세의 증감은 중요한 대목이다. 미국에서는 그래서 예산안 편성 제출권이 집행부에 아예 주어져 있지 않다. 국회가 예산안을 편성 통과시키는 데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정부폐쇄(shut-down)에 들어가고, 공무원들은 일시적으로나마 해고된다.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지원에 반대한 공화당 다수의 민회(House, 하원)와 그에 찬성한 민주당 다수의 국회(Senate, 상원)의 의견차이로 2013년 10월에 정부폐쇄가 단행된 적도 있다. 그 정도로 예산 초과지출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강하다. (201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국회와 민회 모두에서 승리했다.)

미국에서 본받을 점은 바로 이처럼 국회의원들과 민회의원들이 국민의 부담인 세입세출분야에 철저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도 이러한 정신을 본받는다면, 국회의장도 세율 및 공제 내역의 증감이 있는 법안을 예산 부수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얼렁뚱땅 끼워넣기 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예산과는 별개로 심도깊은 논의를 하여야 한다.

구체적 문제들

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있는 법안들이 몇몇 개 있다.

담배세 인상도 이렇게 황급히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 서민들이 애용하는 기호품에 세금을 과하게 매기게 되면, 서민부담이 될 뿐 아니라,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세금을 거두려고 하는 것으로 비쳐져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또 기왕에 문제시 되어왔던 기업체의 사내 유보에 관한 과세를 ‘기업소득 환류세제’란 이름으로 강행하는 것은 시설물에 투자된 유형의 사내 유보에 과세하려고 할 수 있어서도 문제지만, 유사시 쓰려고 비축해놓은 돈을 단지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2중과세여서 문제다.

사내유보는 실은 은행에 저축되어 있는 것으로 이미 국민들이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빌려 쓰고 있어서, ‘항아리에 파묻어놓은 돈’처럼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돈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이자소득세라면 모르되(이자소득세는 이미 부과되고 있다), 회사 저축액 원본 그 자체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은 시장경제의 전제인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사실상의 몰수 행위다.

'조세특례제한법'에도 비과세저축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여야가 이미 합의한 신용카드 사용 소득공제 일몰 연장안, 영농자녀 증여농지에 대한 증여세 감면, 노인·장애인 등 생계형 저축에 대한 비과세 일몰 연장 등은 담지 않고 있는 문제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있는 법안들은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 본회의 예산 표결시, 철회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별개로 충분히 심도 있는 토론과 심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기한내 예산 심사 결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하는 것이기에, 예산부수법안 끼워넣기로 그 역사적 의의를 퇴색시키지 말아야 한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