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볼을 치지만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 치는 ‘No Ball Method’ 훈련법 효과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의 골프탐험(34)- ‘댓잎 위의 눈이 미끄러지듯’ 골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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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스포츠 중에 골프와 가장 근사한 것이 궁도가 아닐까. 활을 쏘기 전에 내 몸과 활, 시위, 화살이 일체가 되는 정신집중의 과정을 거쳐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활을 쏘는 단계는 여러 모로 골프에서의 어드레스, 집중, 빈 마음상태에서의 스윙 등과 너무도 닮았다.
최근 ‘마음을 쏘다, 활’이란 책을 접하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철학자인 오이겐 헤리겔(1884-1955)이 1920년대 일본의 한 대학에 객원교수로 체류하는 동안 일본 궁도의 명인 아와 겐조(阿波硏造, 1880-1939)로부터 궁술을 배우면서 궁도를 통해 선의 세계와 만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담백하게 전하는 내용이다. 책이 나온 지는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새 책으로 유통되는 것을 보면 상당한 독자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오이겐 헤리겔이 궁도를 배우면서 아와 겐조와 대화를 나누며 서양인으로서 궁도를 통해 선의 세계를 대면하는 경이와 깨달음을 잘 전해준다.
이 책에서 이런 과정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활의 발사가 ‘댓잎 위에 쌓인 눈이 미끄러지듯’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 제자가 활시위를 최대한 당긴 후 발사하기까지 버티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자 스승은 이렇게 가르친다.
“당신이 진정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나무 잎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점점 더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러다가 일순간 대나무 잎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도 눈이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발사가 저절로 이루질 때까지 최대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러 있으세요. 최대로 활이 당겨지고 저절로 발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사는 사수가 의도하기도 전에, 마치 대나무 잎에 쌓인 눈이 미끄러지듯 시위를 떠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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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Ball Method’란 훈련법은 실제로 볼을 치지만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 빈 스윙을 한다는 느낌으로 샷을 날리는 훈련이다. 이 훈련법은 몸에 익히기만 하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자신도 놀라게 하는 결과를 보장해준다. /삽화=방민준 |
이런 가르침도 준다.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활시위가 엄지손가락을 순간적으로 베어버린 듯이 되어야 합니다.”
일정 수준에 이른 골퍼, 특히 골프의 정신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골퍼라면 궁도 명인의 이 가르침을 무념무상의 샷을 위한 고도의 지침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골프의 고수들은 결코 샷에 집착하지 않는다. 샷을 하기까지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통찰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며 이어 고도의 집중을 통해 몸과 클럽이 저절로 샷을 만들어내도록 맡긴다. 내가 골프채를 잡은 이후 간단없이 매달렸고 지금도 씨름하고 있는 ‘숨 쉬듯, 걸음 걷듯 골프하기’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마추어들이 어드레스에서부터 백스윙, 톱, 다운스윙, 팔로우의 과정을 세분화해 한 동작 한 동작을 체크하려다 잡념에 휘둘려 샷을 망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는 마치 다족류의 벌레가 어떤 순서로 다리를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게 되면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논리와 같다.
다족류가 아무 생각 없이 그 수많은 다리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여 이동하듯 골프 스윙도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모든 연결된 동작들이 제꺽 이뤄져야 한다.
궁도의 스승은 또 이렇게 강조한다.
“진정한 기예는 목적도 의도도 없습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화살을 발사하는 법을 배우는 데 집착하면 할수록 목표를 맞추기는 더 어렵고 또 발사법은 더 배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방해가 됩니다.”
골퍼가 볼을 남보다 더 멀리 보내려고 할 때, 볼을 깃발에 가까이 붙이겠다는 욕심에 집착할 때 미스 샷이 나오고 평소 하던 스윙도 이뤄지지 않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집착이나 욕심, 의도가 강하게 개입될 때 몸은 경직되고, 최대한 이완시켰다 해도 가격하는 순간 몸의 어느 한 곳이 경직되고 꿈틀거리거나 움찔하게 돼있다.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우리 몸의 축이 흔들리고 목표지점을 향해 설정된 어드레스도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미스를 방지하기 위해 ‘No Ball Method’란 훈련법이 태어났다. 실제로 볼을 치지만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 빈 스윙을 한다는 느낌으로 샷을 날리는 훈련이다. 이 훈련법은 몸에 익히기만 하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자신도 놀라게 하는 결과를 보장해준다.
이때의 느낌이 바로 ‘대나무 잎 위의 눈이 미끄러지듯’한 샷이다. 한 라운드에 한두 번이라도 ‘댓잎 위의 눈이 미끄러지듯’ 심리적 육체적 미동도 없이 떨어지는 샷을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가.
그 순간의 황홀함을 어찌 말과 글로 전할 수 있으리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