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의 ‘품질 경영’…삼성, 뼈를 깎는 노력으로 ‘월드 베스트’
한국 경제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삼성호'의 방향타를 잡고 혁신을 주도했다. 그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인재·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삼성을 글로벌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의 운명을 바꾼 '초격차 승부사' 이 회장의 발자취를 5회에 걸쳐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한진 기자]전 세계 각지에서 신뢰를 받는 삼성의 가장 큰 힘은 품질 경쟁력이다.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삼성은 세계 1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시장의 믿음을 얻기까지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일등 품질’은 고 이건희 회장이 가장 크게 신경썼던 부분 가운데 하나다. 미국 전자 매장 한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있던 ‘SAMSUNG’ 제품을 글로벌 1등으로 만든 데는 이 회장의 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이건희 회장이 2006년 미국 뉴욕 익스피리언스를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1992년 삼성은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고,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1위라는 타이틀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 회장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밤잠을 설쳤다. 다가올 위기에 대한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93년 오사카 회의에서 “작년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작년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밖에 잠이 안 왔다”며 심각성을 토로했다.

이 회장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93년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파장이 커지면서 질보다 양을 앞세우던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베스트 바이'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을 바라봤다.

삼성 제품이 뛰어난 품질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이 회장에게 불량 세탁기 고발 영상이 전달됐다.

이를 본 이 회장은 그동안 쌓여온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내놓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품질에 대한 이 회장의 집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1995년 3월에 있었던 ‘휴대전화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제품 불량률은 11.8%까지 치솟았다.

   
▲ 이건희 회장이 2011년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참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 적자 내고 고객으로부터 인심 잃고 악평을 받으면서 이런 사업을 왜 하는가“라며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995년 1월 이건희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아울러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15만대, 150여억원 어치의 제품이 수거됐고,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됐다. 자기 손으로 힘들게 만든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임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불량품 화형식은 전 임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가시적 조치와 노력을 통해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이 삼성인들 가슴속에 자리를 잡아갔고, 현장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부실 요인을 찾아 고치는 풍토가 그룹 전체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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