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동기부여 주지 못하는 정치권, 한국경제 정체의 원인
한국제도·경제학회(이하 학회)는 지난달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를 주제로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는 추계학술대회를 통해 한국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한국경제를 개선하고 선진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아래 글은 좌승희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신제도경제학과 한국경제학계의 과제' 발제문이다. 미디어펜은 발제문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신제도경제학과 한국경제학계의 과제(5)

   
▲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발전원리는 무얼까. 이하에서는 경제적 차별화 개념에 기초한 경제적발전관을 약술하고자 한다.

시장의 기능에 대한 재해석

시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란 바로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예쁘게 구는, 즉 우리의 구미에 맞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더 많은 구매력(돈)으로 투표함으로써 우수한 경제주체들에게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장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인 셈이다. 필자는 이를 일컬어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 기능이라 명명하였다.

자유로운 시장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을 무기삼아 우리 모두를 부의 창출경쟁에 나서게 유인하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가 번영을 가져오는 이유가 바로 시장의 원초적 기능인 경제적 차별화와 이를 통한 불평등 조장기능을 잠재적으로 더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소위 재산권의 보장이 번영의 길이라 하는데 이 또한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증폭시켜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러한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시장은 경제적 번영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인 셈이다.

불평등에 대한 해석

경제적 불평등은 우리의 삶의, 혹은 시장의 모순이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자생적 질서이며 이 힘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역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심지어 살맛나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좋든 싫든, 경제적 불평등이 없는 사회는 경제적 하향평준화로 가는 죽음의 사회이며, 경제적 자유야 말로 경제적 불평등 위협을 강화함으로써 모두를 번영의 길로 이끄는 수단임을 직시해야 한다. ‘자유의 패러다임’과 ‘불평등의 패러다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 11월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제도·경제학회의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의 전경 

경제발전과정

경제발전과정은 경제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이다. 농경사회에서처럼 마차를 더 많이 만드는 자원배분의 문제를 넘어 마차에서 기차,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경제의 창발과정이다.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흥하는 이웃의 성공노하우를 복제, 무임승차하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흥하는 이웃으로 변신하는 문화진화과정이다. 그래서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 앞 선자의 노하우가 흘러내려야 시너지가 창출되고 모두가 발전한다.

차별화의 중요성

경제발전을 향한 동기부여의 기본전제는 성과와 보상의 일치이다.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별화가 발전을 향한 동기부여와 성공경쟁의 추동력이다. 따라서 시장의,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별화기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시장은 불평등의 위협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고 발전을 추동한다. 시장의 (보상)차별화기능이 불평등과 발전의 원천이다.

발전 친화적 불평등

그렇기 때문에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차별화된 보상시스템에 부응하는 발전 친화적 불평등수준이 존재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그래서 성장과 발전의 필요조건이다

발전 친화적 불평등수준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적 전통, 이념, 가치관 등, 그 사회의 경제적 평등관을 결정하는 다양한 비공식적 제도에 크게 의존한다. 역사적 전통이나 가치관이 평등이념을 선호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발전 친화적 불평등수준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 성과의 차이에 따라 보상을 차등하여 일정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을 유지하는 사회는 발전을 유도할 수 있지만, 성과의 차이에 관계없이 평등한 혹은 자의적인 보상체제를 강요하는 사회는 필히 몰락한다. 사진은 토마 피케티의 강연 장면. 

무임승차와 시장의 차별화기능실패

그러나 시장은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성과와 보상의 일치작업, 즉 발전 친화적 불평등상태를 만들어 내는 경제적 차별화에 실패한다. 이는 발전이 남의 성공노하우에 대한 복제, 무임승차를 수반하는 특이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보의 불완전성과 그로인한 거래비용 때문에 무임승차당하는 흥하는 이웃에 대한 정확한 성과평가와 보상, 즉 완벽한 경제적 차별화에 실패한다. 물론 거래비용은 시장거래가 거래조건에 대한 쌍방 간의 수평적, 자발적 합의를 전제로 하며 합의에 수반하는 협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발생하지만, 그 근본은 정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은 애초부터 흥하는 이웃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흥하는 이웃이 그렇지 않은 이웃을 무임승차, 즉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흥하는 이웃의 착취 때문에 내가 망한다고 설파한 칼 마르크스는 시장과 세상의 이치를 거꾸로 본 것이다. 그래서 무임승차당하는 흥하는 이웃은 많이 생기지 않으며, 발전은 아무 때나, 아무나, 아무 경제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장만으로 경제발전을 일으키기는 역부족이다.

주식회사제도

자본주의 경제는 주식회사라는 사회적 기술을 발명했다. 주식회사라는 기업제도는 전통 농경사회의 가내기업에서 자본베이스를 무한대로 확대하여 창발한 복잡계로서, 수직적 명령체계를 이용하여 거래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조직원들에 대한 성과측정과 보상의 일치 작업에 전문화된 조직이다.

주식회사제도는 잠재적으로 거래비용이 너무 높아 시장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영역을 개척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시장의 영역을 확대시키는 시장의 창출자이다. 주식회사라는 기업의 성장, 발전 없이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불가능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무임승차와 기업의 하향평준화

그러나 기업이라는 조직도 바로 경제의 일원으로서 문화진화현상으로서의 발전의 무임승차현상에 노출된다. 흥하는 기업은 다른 모든 기업에 의한, 흥하는 문화유전자, 즉 성공노하우의 무임승차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흥하는 기업은 그래서 쉽게 생기지 않는다. 시장의 차별화기능 만으로 세계적 기업(world class corporation)을 일으켜 내기는 어렵다.

소니와 노키아의 몰락과 삼성의 무임승차를 통한 추월, 애플과 삼성의 치열한 지적재산권 다툼, 도요다의 도요다 생산방식에 의한 성장과 추격자들의 무임승차에 따른 어려움 등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세계최고의 기업들은 다른 모든 유사업종기업들의 무임승차를 피할 길이 없으며 그래서 ‘일등기업은 영원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 11월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제도·경제학회의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에서 발표하고 있는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미디어펜 회장 

정부의 경제적 차별화기능

따라서 정부가 스스로 도와 흥하는 이웃들을 우대하여 시장의 차별화기능실패를 보정하여야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정부의 경제적 차별화기능이라 할 수 있다.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등제도, 즉 차별적 인센티브제도의 도입을 통해 시장이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성과와 보상의 일치를 실현함으로써, 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의 성공요인도 바로 기업들의 시장성과에 따라 차별적 지원제도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차별화원리에 역행하여 (예컨대 재분배정책등을 통해) 불평등의 수준을 더 낮추면, 경제발전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회전체가 성과에 비해 항상 미흡한 보상체제하에 있게 되면 동기도 경쟁도 성장도 발전도 없는 평등하지만 정체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발전 친화적 불평등수준이하로 불평등을 낮추면 바로 그 사회의 동기부여장치는 약화되고 사회전체의 사보타지가 일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은 생산성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보상에 따라 생산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경제평등주의

불평등을 적정 수준 아래로 낮추는 경제평등주의 정책은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정부는 공식적 제도를 항상 흥하는 이웃, 즉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정착시켜 발전 친화적 불평등수준을 복원하여야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

민주정치와 경제발전

오늘날 민주정치 하에서 정부의 지원정책이나 경제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은 의회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이해하고 국민들이 자신의 노력과 성과에 맞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경제사회적 분위기와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만일 역으로 정치가 나서 경제적 차별화원리에 역행하는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내면 국민들은 동기부여가 안 되어 너도나도 일안하기, 즉 사보타지에 몰입하고 경제는 정체의 길로 가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민주화된 많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 겪고 있는 장기성장정체현상도 많은 경우 일인일표의 민주주의의 부작용인 평등민주주의 하에서 등장하는 경제평등주의정책 체제가 그 원인임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경제발전의 전제 조건

경제발전은 시장과, 기업, 정부, 정치가 모두 우수한 기업과 경제인, 근로자들을 무임승차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차별적으로 더 대접하고 그 공을 인정함으로써 만 가능해진다. 경제발전의 큰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원리는, “‘경제적 차별화’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인 반면 ‘경제평등주의’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둘째로 정치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정치의 경제화’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인 반면 ‘경제의 정치화’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여기서 ‘경제적 차별화’는 경제적으로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경제평등주의’는 경제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치의 경제화’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실천을, ‘경제의 정치화’는 정치적 고려 하에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미디어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