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들 자락, 하나가 된 불교와 유교문화
   
▲ 도봉산 주봉들을 배경으로 두른 망월사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한북정맥(漢北正脈)은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평강군 추가령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나와, 서남쪽으로 뻗어 한강과 임진강의 하구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으로,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다.

북한지역 백암산, 양쌍령을 지나 남한 땅에 들어서 적근산, 대성산, 수피령,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 현등산 및 죽엽산을 거쳐 마침내 도봉산(道峰山)에 이른다.

다 알다시피 도봉산은 북한산국립공원의 일부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그 맞은편 중랑천 너머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듯한 기세로 솟아 있는 산은 수락산(水落山)으로, 도봉산 직전에서 한 지맥이 동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첫 번째 고봉에 해당한다. 이 두 산과 북한산, 관악산을 사람들은 서울의 ‘4대 명산으로 친다.

라이벌이라면 라이벌, 친구라면 친구라 할 도봉과 수락은 경기도 의정부시의 동서 양대 기둥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인 의정부(議政府)의 관청 명칭이 도시 이름으로 된 것도 재미있다.

아들 태종 이방원과 대립, 함흥에서 머물던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환궁하다가 지금의 의정부시 호원동 전좌(殿座)마을에서 잠시 머물게 됐는데, 그때 조정 대신들이 이곳까지 와서 정사를 논의하는 한편 태상왕 이성계의 윤허를 받았다고 하여, 이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아무튼, 의정부를 대표하는 두 산기슭에 있는 망월사와 석림사를 이어 걸어보기로 했다.

   
▲ 노강서원 [사진=미디어펜]

망월사(望月寺)는 의정부와 도봉산의 수많은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절로 여겨지며, 신라 때인 639(선덕여왕 8)에 해호화상(海浩和尙)이 왕실의 융성을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절 이름은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고려에 귀부하기를 거부하고, 한 때 은거했다는 전설도 있다.

수도권전철 1호선 망월사역에서 이 절을 거쳐 오르는 계곡 코스가 원도봉(原道峰)이니, ‘원래 도봉산이란 뜻이고, 망월사계곡이라고도 한다.

망월사역 3번 출구에서 우측으로, 신한대 캠퍼스를 끼고 맞은편 길로 올라간다.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미가사란 작은 절이 있다. 길 가에 나앉은 배불뚝이황금빛 달마상이 익살스럽다. 조금 더 가니, 오른쪽에 대원사 입구도 보인다.

계곡 우측 멀지 않은 곳에는 영산법화사와 원효사도 있다.

원효사(元孝寺)는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시대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사찰로 전해진다. 사찰에는 원효대사의 동상이 있고, 한글로 필사된 불교경전인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96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보관되어 있다.

그래도 오늘의 목표는 원효사가 아니라 망월사다.

북한산국립공원도봉사무소자원봉사센터를 지나, 원효사 방향 도로가 아닌 왼쪽 계곡길로 오른다. 왼쪽 흰 너럭바위 밑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에메랄드 빛 소()가 반갑다.

쉬어가기 좋은 넓직한 공터에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쓰여진 목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나무기둥들을 일렬로 박아놓고 ‘1015cm’ ‘2020cm’ ‘3021cm’ 이런 식으로 팻말들을 달아놓아, 사람들이 통과하면서 자신의 몸매를 가늠해보도록 만든 것이다.

이 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산악인 엄홍길(嚴弘吉)이다.

엄홍길씨는 1960914일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3살 때 의정부시 호원동 소재 원도봉산 망월사계곡으로 이사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도봉산을 벗 삼아 지낸 그는 중학교시절부터 도봉산 두꺼비바위에서 암벽타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부시 홍보대사이기도 한 엄씨의 집터가 계곡 등산로 바로 옆에 있다. 그는 여기서 40살까지 37년을 살았다. 세계 최고 에베레스트를 포함,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하나씩 오르면서...

숲 사이로 능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건만,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계곡엔 물이 없다.

극락교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등산로 옆 큰 바위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새겨져 있고, 그 위 바위엔 안국(安國)이라 새겼다. 아미타불에 귀의하면 나라가 편안하다는 것일까? 바로 왼쪽 단풍나무가 참 붉다.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오르고, 또 오른다. 숨이 턱에 닿고 나서야, 망월사 범종각에 도착했다.

감탄사가 절로 난다. 가파른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절집들 너머로, 자운봉(紫雲峰)을 비롯한 도봉산 정상부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사패산과 연결된 포대능선도 멀지않다.

망월사의 문화재로는 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22)와 천봉 태흘 스님의 부도(경기도 문화재자료 66), 1793년에 세운 태흘의 천봉탑(天峰塔)1796년 수관거사가 명()한 천봉선사탑비(경기문화재자료 67)가 있다.

이 절의 현판은 조선에 주둔한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袁世凱)1891년 쓴 것이라 한다.

온 길을 되짚어 하산, 망월사역 반대편 수락산으로 향했다.

망월사역을 통과, 1번 출구를 나선다. 큰 도로를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 계속 직진하면, 중랑천이 나온다.

중랑천(中浪川) 뚝방길은 벚나무들로 터널을 이뤘다. 봄철엔 장관일 듯하다. 의정부시가 조성한 둘레길 코스인 소풍길의 일부기도 하다. 이 길과 천변 산책로에는 평일 한낮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즐기고 있다.

그들 속에 섞여, 남쪽으로 걷는다. 물길 건너 수락산이 반갑다 손짓한다.

지도상으로는 하천을 건너는 다리가 꽤 멀다. 적지 아니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작은 징검다리가 나타났다. 냉큼 다리를 건넜다.

천변에 갈대와 물억새가 가을이 깊어간다고 말해준다. 사람 한명 겨우 지날 수 있는 소로 옆에 억새 숲이 무성하다. 넓은 곳에는 코스모스와 황화(黃化) 코스모스 꽃밭이 볼 만하다.

둑 위로 삼거리가 보인다. 여기서 천변을 나와, 반대편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7호선 장암역(長岩驛)은 도봉차량사업소에 둘러싸여 있다.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도로를 따라 빙 둘러 돌아가야 한다. 견고한 철 구조물 담장 사이로 휴식 중인 전동차들이 보인다. 단조로운 아스팔트 도로변을 걷다 만나는 화원과 주유소 앞 바람개비가 위안이 된다.

장암역 1번 출구 맞은편 도로를 건너면, 수락산 등산로 입구다.

낡은 주택과 상가가 뒤섞인 동네를 지나면, 석림사(石林寺) 가는 계곡길이 나온다. ‘수락산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계곡은 물이 말랐다. 나무들은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계곡 왼쪽에 범상치 않은 한옥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朴世堂) 사랑채다.

석림사계곡은 박세당 타운이기도 하다. 박세당 선생은 166810여 년의 관료생활을 접고 이 곳으로 물러나, 실학(實學) 등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박 선생 및 둘째아들 박태보(朴泰輔)와 관련된 유적들이 이 계곡에 몰려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세조로 즉위하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이곳 석림사계곡에 은거했다고 한다.

김시습을 존경하던 박세당은 여기에 매월당을 기리는 사당 청절사를 세웠는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 노강서원(鷺江書院)이 들어섰다. 노강서원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 폐위를 반대하다 죽은 박태보를 기리는 서원으로, 원래 노량진에 있다가 불탄 후 1968년 이 곳에 재건됐다.

또 석림사는 원래 박세당 집안의 원찰이었고 궤산정, 청풍정 등 박 선생이 거닐던 정자 터, 선생의 사계유거취승대친필 각자가 남아있는 석천동(石泉洞) 바위 등도 있다.

계곡을 끼고 오르다보면, 길 오른쪽에 기둥을 받치고 있던 주춧돌 몇 개가 보인다. 바로 청풍정(淸風亭) 터다.

그 위 좌측에는 노강서원(경기도기념물 제41)의 홍살문이 위풍당당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석림사가 보인다.

망월사와 같은 봉선사의 말사로 1671(조선 현종 12) 석현과 그의 제자 치흠이 창건한 반남 박씨 집안의 재궁절로 석림암(石林庵)이라고 불렀고, 숙종 때 박태보가 중창했으며,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60년부터 비구니 상인이 중건, 오늘에 이른다.

과거 불교문화와 유교문화의 공존 방식을 보여주는 곳이다. 일주문 현판이 한글이고, 파란 기와를 얹은 극락전에도 큰법당이란 한글 현판을 달아놓았다. 하지만 범종각 현판은 한자다.

석림사 옆 계곡에 물이 없어, 바로 돌아 장암역으로 나왔다. 맞은편 도봉산이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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