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도서정가제 등 무리한 시장개입, 혁파해야 할 진짜 적폐

“조용히 해!!!”, 시끄러운 주위가 거슬려 크게 외치면, “너나 조용히 해”, “깜짝 놀랐잖아”, “네가 더 시끄럽잖아” 란 말을 듣기 일쑤다. 유명한 러셀의 역설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러셀은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 말이 참말일까 거짓말일까”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든 모순이 되어 버리는 예로 이런 재미있는 논리적 모순을 설명했다. 참말이라 하면 거짓말을 한 것이 되어버리고, 거짓말이라 하면 참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주위보다 더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조용하라며 더 크게 고함을 지르는 것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규제개혁은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한 국정과제 중 하나이다. 대통령은 틈만 나면 불합리한 규제는 손톱 밑 가시만큼 성가시고, 암덩어리 만큼 고질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3월20일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국민들은 59%의 국정지지도를 표명해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에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 지난 10월 8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컨슈머워치의 '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위한 소비자 1만명 서명운동' 에서 시민들이 단통법 폐지에 찬성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정부부처에는 과거의 소극성을 버리고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그 성과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손수 챙기겠다고도 했다. 규제비용총량제의 도입, 규제개혁 신문고의 활성화가 이루어졌고 과학적 규제분석을 위한 규제연구센터도 수립되었다. 정부가 드디어 규제개혁을 제대로 이해한 듯 보였다. 불합리한 규제개선을 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예는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이 방향성을 상실하고 자기모순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침몰 이후부터이다. 세월호 침몰이 안전규제의 미비, 지나친 규제개혁의 부작용이라는 여론과 정치권의 몰이해에 휘둘리면서 규제이론 어디에도 없는 착한규제와 나쁜 규제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 결과 안전, 국민의 생명을 위한 고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규제는 개혁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규제목적이 숭고하면 규제설계는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는 비이성적 논리가 상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규제개혁이 규제도입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규제설계에 있다는 사실은 잊혀진지 오래인 것 같다.

어떤 규제가 있어 편익보다 비용이 많이 드니 고쳐보자는 제안에 그런 규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동문서답이 정부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좀 더 나은 규제를 만들어 보자는 주장에 목적이 숭고하니 손도 대지 말자는 것이다.

정부가 도입한 규제 중 목적으로 볼 때, 필요 없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재래시장도 살려야 하고, 노동권도 보장해야 한다. 아동의 학습권도 보호해야 하고, 작업장의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 이런 논리라면 정부규제는 필요하니 개선하지 말자는 주장까지 이름직하다.

규제개혁은 재래시장도 살리고, 노동권도 보장하며, 아동의 학습권도 보장하고 작업장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보다 사회적 비용이 적은 대안을 설계해 보자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이동통신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에관한법률(이하 단통법) 도입과 도서정가제 확대 적용에 이르러서는 정부가 도대체 규제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규제개혁을 앞장서 해 보겠다던 정부가 거의 모든 국민에 더 많은 비용을 유발시키는 규제를 용감히 도입하고 있다. 개선대상으로 치면 0순위에 올라야 할 규제가 도입되었고 사회적 혼란은 극심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규제도입에 조급한 정부가 정상적인 정부 내 규제심사절차를 우회하기 위해 법안을 국회의원에 전달하여 입법을 부탁하는 소위 청부입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이를 받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동통신 가격규제로 보조금 경쟁을 하는 기형적 시장을 형성시킨 정부가, 그마나 보조금 경쟁까지 제한하고 나서자 시장에서 단말기 가격은 일제히 올랐고 소비자는 비싸진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았다. 비싸진 단말기를 사야하는 구매자도 손해고, 단말기 값이 올라 판매대수가 1/3로 떨어진 제조사도 손해를 봤다. 정부가 규제도입으로 제시한 통신비용의 절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도서정가제 시행은 소비자 권익 증진 및 착한 가격 정착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소비자 사이에서는 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해 결국 책값만 올라 가계부담이 늘고,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규제개혁이 이런 러셀의 역설에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규제개혁을 모르고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쪽에선 아직도 규제개혁을 외치고, 다른 쪽에선 개선대상의 규제를 만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개혁에는 정부의 역할과 범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피규제자의 유인 구조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그래야 세월호 침몰이 선박 운행 연수를 늘린 규제개혁이 아닌, 연안여객에 대한 가격규제로 수익창출 기회를 막아버리고 선박검사 기관의 독점성을 보장하는 규제로 선박검사의 수준을 떨어뜨린 데 있음을 알게 된다.

수익창출이 안 되니 과적에 평형 수까지 빼는 일을 관행적으로 하고, 선박검사 권은 어차피 법으로 보장되니 굳이 열심히 선박안전검사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세월호 관련 책임자 개개인의 비정상적인 기업운영은 당연히 처벌되어야 할 것이지만, 세월호 침몰과 같은 사건이 이후에도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강화가 아닌 규제개혁이 필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러셀의 역설이 작동하지 않게 하려면 시끄럽다는 이유로 더 시끄럽게 소리치지는 말아야 한다. 사회문제를 고친다며 더 큰 문제를 만드는 정부가 정당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스스로 민간에 대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규제로 민간에 개입하려면 그것이 민간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한다는 명확하고 실증적인 분석이 있어야 한다.

단말기를 구매하는 사람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가격차별의 결과임을 이해하기도 해야 한다. 특히 이런 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규제를 통한 정부개입의 영역과 범위는 생각보다 줄어든다. 문제는 실천이다.

누가 사회 문제라 하면 그것을 고쳐보려고 금방 손이 근질근질 해지는 정부의 이제까지의 습관이야 말로 대통령이 그렇게도 혁파해야 한다고 외치는 우리사회의 적폐가 아닐까? /이혁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