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유제의 비극에 황폐화…'모법규준안' 관치 지렛대 역할

제2의 KB금융지주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이하 모범규준)을 제시했다. 이는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이지만 금융감독기관의 경직적인 관리방식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규제, 창구규제로 작용하리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쟁점에 대하여 전문가 진단을 통해 올바른 정책방향을 모색하고자, 한국경제연구원은 4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루비룸에서 주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쟁점과 평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정부진단 평가, 비은행금융사 적용확대의 적절성, 사외이사제도 변경의 실효성 등의 쟁점을 논의했다. 아래 글은 패널로 참석한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1. 논의의 배경

지난 10월 20일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을 발표하였다. 지난 9월에 막을 내린 KB금융 사태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이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이와 같은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법안이 아니고 규준이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과는 무관하므로 입법예고 기간(‘14.11.20∼’14.12.10)을 거쳐 금융위원회 보고 후 ‘14.12.10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 금융위원회는 KB금융 사태를 수습하고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모범규준안을 제시했다. 윤종규 신임 KB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이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의 문제점

금융감독기관은 규제부담은 지지 않고 규제권한은 행사하려 한다. 특히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은 가이드라인이며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여서 이를 따르지 않기에는 피규제기관인 금융회사로서 너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범규준을 이행하지 못 하는 금융회사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소명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기업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제재인 셈이다.

결국 법안이 아니기 때문에 입법화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또한 규제개혁위원회의 신설규제 심사도 받을 필요가 없다. 사실상 규제효과는 가지면서 규제를 위한 공식적인 집행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는 묘수이다.

모범규준(안)의 문제점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은 지나치게 상세한 규제를 통해 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정도를 넘어서 경영자체를 심각하게 어렵게 할 수 있는 문제조항도 있다.

일례로 시장에의 영향이 큰 은행과 은행 지주회사의 경우 사외이사의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시킨 것은 큰 문제이다. 회사의 주요 결정을 논의하는 이사의 임기를 1년으로 줄인다는 것은 사외이사가 중요하다며 개혁안을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사외이사의 중요성을 정작 폄하하고 있다는 간접적 증거가 된다.

또한 CEO 후보군을 관리하고 CEO승계 업무를 상시화하고, CEO 추천·선임 절차를 조속히 완료하기 위하여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한다고 하였으나 CEO 후보군을 사전적으로 정부가 통제함으로써 관치금융을 더욱 공고화할 수 있는 장치로 충분히 악용될 수 있다.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평가를 도입하는 것도 정부가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여러 외곽 단체와 연구기관을 동원해서 사외이사에 압력을 가하고 정부방침에 반대하는 사외이사를 배제함으로써 관치금융을 더욱 강화시킬 수 방법으로 충분히 악용될 수 있다.

   
▲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에 대한 한국경제연구원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쟁점과 평가> 세미나 요지

3. 문제의 본질은 관치금융으로 위축된 금융의 경영 자율성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인식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금융의 문제점은 규제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지나친 규제로 금융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규제가 모자라다며 또 다른 실질적 규제를 규제가 아닌 것처럼 제기하는 것은 심각한 상황판단의 오류이다.

우리나라 금융은 이른바 ‘반(反)공유재의 비극(Tragedy of the Anti-Commons)'으로 황폐화되어 있다. ’반공유재의 비극‘은 재산권이 너무 많은 주체에 조금씩 분포되어 있어 재산권 행사에 대한 의견일치를 보기 어려우므로 자원이 적정이하로 활용되는 문제점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 등 주요 금융기업은 실질적인 주인이 없도록 규제하고 있어서 ‘주인 없는 경영’을 유도하고 그 틈을 타서 정부가 경영에 개입하며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결과 실제로 금융산업의 의미 있는 자원의 활용이 어려우며 경쟁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권은 심각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경영개입이 컸던 은행들은 통폐합되었고 오히려 후발주자로 정부의 경영개입을 적게 받았던 순수 민간은행인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조흥은행과 외환은행을 인수하여 강자로 떠올랐다.

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은 주지 않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투입규제’의 문제점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이 금융산업과 공공부문이다. 우리 경제는 전근대적인 ‘투입’ 규제를 줄이고 ‘산출’에 대한 자율적 평가가 시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