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릇 노릇 옛말…대학·교수·학생간 조정자이자 미디어 역할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캠퍼스 밖에는 비서가 있고 안에는 조교가 있다. 요즘 십상시다, 문고리 권력이다, 실세 비서다 3인방이다 해서 요란한 이 틈에 세상살이 이치 비슷한 신 조교론을 한 번 다뤄보고자 한다. 조교든 비서든 사람과 사람 사이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중점 체크해야 한다는 게 물론 기본 전제다.

좋은 조교(The Good)는 어떠해야 할까? 대학에서 교수와 학과장을 보좌하는 역할이 조교이다 보니 사람들은 흔히 주종관계를 떠올린다. 교수가 절대 권력이고 조교는 한낱 딸린 부속물쯤 된다는 인식이 아주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있다. 이런 경직된 구도에서는 조교가 오로지 맡은 바 일처리만 잘 하면 된다.

매일 일상사 뒤치다꺼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어진 잡무를 제 때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 조교의 임무는 완수다. 교수 연구실 바닥 빗자루 쓸고 탁자 물걸레질하는 청소하는 궂은 일 잡무도 조교 업무일 수 있다. 하루 종일 퇴근 시간도 없이 5분 비상 대기 하면서 사적인 잔심부름까지 도맡아야 하는 무한책임도 조교 미션일 수도 있다.

어쩌다가는 수십 명 수백 명 되는 학과 학생들과 교수 사이에서 사심이 들어간 민원성 귀띔을 귀 간질이듯 재잘대는 권력형 밀사 역할도 한다? 더 나아가서 조교가 장난질 쳐서 학과 예산 운영 같은 행정에서 마수를 뻗치기도 한다?

모두 모두 지나간 얘기다. 지금은 바야흐로 2014년 연말이다. 지성의 전당 학교 안에서 봉건적 주종관계가 버젓이 남아 교수연구실 문지기 노릇하던 조교 모델은 80~90년대 옛날이야기다. 아침 일찍 연구실 문 열고 쓰레기 비우고 청소하는 직원들은 따로 고용되어 있다. 심부름시키고 개인 몸종이나 무수리처럼 조교를 부려대는 간 큰 교수님들은 설령 잔존한다 해도 인터넷 대명천지에 진짜 멸종 위기다.

   
▲ 조교는 교수와 학생 사이 조정자이기도 하고 중간 미들맨으로서 학생이라는 본체(principal)와 교수와 대학 본부라는 서비스 대리인(agent) 사이를 연결하는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혁신과 창조가 가장 느리다고 하는 대학에서도 조교는 더 이상 잡무 보고 보필하는 속칭 따까리(비서나 부관을 비하하는 속어)가 아니다. 어느덧 모더레이터(moderator)로 조교 본질은 바뀌어 있다. 교수와 학생 사이 조정자이기도 하고 중간 미들맨으로서 학생이라는 본체(principal)와 교수와 대학 본부라는 서비스 대리인(agent) 사이를 연결하는 미디어 역할을 해낸다.

중간에서 매개하고 전달하고 정리, 분석해서 코멘트하는 조교 역할에 무슨 권력 장난질 따위는 의미 없다. 이게 구태를 벗어난 현대화된 조교론인 셈이다. 삼성 비서실로 견준다면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그 이후 미래전략을 고민하는 식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본연의 역할을 완수할 줄 아는 이가 가장 좋은 조교일 수 있다.

지금 대학은 생존해야 하고 변신해야만 하니까. 그 중간 핵심에 있는 조교라는 자리도 아침저녁으로 교수, 학생과 함께 개선 사항을 생각하고 실천할 줄 아는 모더레이터(moderator)라야 한다. 이런 조정자, 사회자 역할이 좋은 조교 모델이라고 보는 이유다.

반대로 나쁜 조교(The Bad)도 엄연히 남아 있다. 이들은 우선 교수 지시를 하달한다. 학생들 요구나 의견은 뭉갠다. 학교 본부 행정 일은 딱 그만큼 주어진 것만 처리한다. 그러면서도 늘 불평에 절어 산다. 생각 자체가 수직적 위계질서 구조에서 맴돌다보니 매사 자신감도 없고 수동적, 소극적인 나날이다. 그런가하면 수시로 후배 동생뻘 되는 학생들을 시키고 말 잘 듣지 않는다고 윽박지른다.

기업 비서실로 친다면 친위대 모형이다. 주로 폭군 스타일 오너나 주군을 모시는 비서들이 으레 호위무사 자처하는 친위대 병정놀이를 하게 마련일 테고. 이런 나쁜 조교나 비서는 집행자(executor) 유형이다. 절대시하는 권력에 붙어 나누고 소통해야 할 메시지를 명령이나 지시로 둔갑시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올려놓아 마구 자르고 늘려 붙이는 망나니 집행자기 되어 온종일 구석구석에서 난동을 부리기 일쑤다.

다음으로 남은 조교 모델은 어리석은 조교(The Ugly)다. 대학에서 보면 학생 티도 못 벗고 엄연한 사회초년생인 조교로서도 또한 자리 잡지 못한 인터스텔라 우주 미아 미생(未生)들이 여전히 많다. 요새 조교는 4대 보험도 받고 회사원처럼 재교육도 활발히 참가하는 어엿한 직장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숙할 때는 학생처럼 고개 푹 숙이고 훌쩍이는 아마추어리즘이 앙금처럼 남곤 한다. 이런 조교들을 볼 때면 교수로서 골목대장하고 애들 장난하자는 건가 하는 헛웃음이 괜스레 나온다. 그러니 어리석은 조교는 바로 자기 껍질을 깨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 남아 유영하는 유치한 아마추어(amateur)라고 할 밖에 없다.

좋은 조교(The Good)로서 모더레이터(moderator), 나쁜 조교(The Bad)로서 집행자(executor) 그리고 어리석은 조교(The Ugly)로서 아마추어(amateur). 그렇다면 우리 시대 재계와 정계 최고 위치에 오른 비서들. 그대들은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가?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