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 해임하고 새 팀 꾸려야…수요 억제 일변도 정책 시장 역행 부작용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주거문제로 고통을 겪으시는 국민 여러분께 정말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이 대표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가슴이 아프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고 몸을 낮췄다.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변화의 속도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23번이나 쏟아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총체적 실패'였다는 냉혹한 평가를 수용했다.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일찍 실수를 인정하고 합리주의와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정책을 폈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로 부동산 시장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판단조차 서지 않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투기를 잡겠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초고강도 규제를 가했지만 다주택자 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속도로 늘어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기준 주택소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2채 이상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는 228만4000명으로 전체 주택 소유자의 15.9%를 차지했다. 

다주택자 수는 2017년 211만9000명(15.5%)에서 2년 만에 16만5000명 증가해 사상 최대가 됐다. 공시지가를 올리고 세금폭탄을 퍼부어 주택 보유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서울에서 시작된 아파트값 폭등세는 전국으로 확산됐고, 실수요자나 없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을 더 산 것이다. 

지난 7월말 임대차3법 개정 이후에는 전·월세 시장까지 이상급등 현상을 보였다. 과도한 세입자 보장의 후유증으로 전세 품귀사태가 일어나고 전셋값 급등이 다시 집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 풍선효과가 전국을 돌고 돌아 이미 최고 수준으로 오른 수도권 인기 지역 아파트 값을 다시 끌어올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로 부동산 시장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판단조차 서지 않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강력한 수요 억제책은 일부 지역의 집값 폭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칫 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이르면 19일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낙연 대표는 "LH(한국주택도시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오피스텔과 상가 주택을 매입해 전월세로 내놓거나 호텔방을 주거용으로 바꿔 전월세로 내놓는 내용이 포함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상가·사무실 등 다른 목적으로 쓰이던 건물을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해 공급하고, 경기 위축에 따라 매물로 나온 호텔 객실을 개조해 주거용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충격적인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시중에서는 오죽했으면 호텔방을 주거용으로 바꿔 전월세로 바꾸는 걸 대책이라고 내놓느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상가 주택, 호텔방에 대한 전세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이 모든 후유증이 충분히 예견됐다는 점이다. 야당은 물론 수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이 공급대책 없는 징벌적 수요 억제 정책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해 국민의 주거 복지 수준을 현격히 저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유세를 올리면 거래세를 내려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입자를 지나치게 보호하면 전셋값이 오르고, 결국은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문재인 정부는 아파트 보유자들을 적폐로 몰아 혁명하듯 무리한 부동산 정책을 고집했고 결국은 작금의 통제불능 상태를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 내수 경기 침체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지방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부동산 개발사업에 돈이 물린 금융기관들도 많았다. 부동산 값이 급락하는 경착륙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타개를 위해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풀고 금융권 대출을 확대했고, 그것이 효과를 보았다. 

미분양 아파트가 사라지고 부동산 개발 사업에 묶인 금융기관도 발을 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 강남 재개발 아파트를 필두로 집값이 폭등하는 과열 현상이 빚어졌다. 뒤를 이은 문재인 정부는 공급을 확대하면서 단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해 과열을 식힐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전쟁을 벌이듯 무리한 부동산 정책을 남발해 스스로 곤란을 자초했다.

전국의 집값과 전월세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등하는 이 충격적 혼돈의 직접적 책임은 자기 집값도 모르면서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을 남발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전세난이 조만간 풀릴 것이라고 우기는 이호승 경제수석, 국민이 아우성을 치는 데도 침묵하는 김상조 정책수석에게 있다.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책임도 막중하다. 물론 최종적인 책임자가 문재인 대통령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다. 우선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 판단력을 흐리게 한 실무 책임자들을 문책해야 한다. 김현미 장관, 이호승 경제수석, 김상조 정책수석,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을 모두 해임하고 실력과 비전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주택시장의 생태계를 무너뜨린 정책들은 폐기하고 공공주택 공급과 민간시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지난 7월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임대차 3법을 폐기하는 등 과감한 수정을 해야 한다. 국민은 주거, 교육 환경이 좋은 곳에 지은 새 아파트를 원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풀고 택지를 공급해 살기 좋은 인기 지역의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한편 전월세 보증금 대출, 주택담보대출을 더 확대해 부자들 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집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력한 수요 억제책은 일부 지역의 집값 폭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는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무한정 규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직된 정책은 집값이 폭등한 뒤 인기 지역의 집값은 별로 내리지 않고, 비인기 지역의 집값은 폭락하는 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시장의 무서움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합리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질서 있는 후퇴를 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 때문일 것이라는 시중의 경고를 명심하기 바란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