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민서 기자] 홍상화 작가의 첫 소설집 '능바우 가는 길'이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로 20년 만에 재탄생해 우리 곁을 찾는다. 

홍 작가는 2년 전 타계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을 기리고자 새 제목과 구성으로 작품을 다시 펴냈다. 사실상 고인에 대한 헌사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되새기는 새로운 다짐을 오롯이 담아냈다.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은 한국의 구체적 역사를 밑그림으로 한 중·단편 8편으로 구성됐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 생겨난 굽이굽이 서러운 사연들,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부조리에 치여 떠밀리고 짓밟힌 사람들의 원통한 사연들 그리고 생이별, 죽음, 불구, 배신, 분노, 피해의식, 죄의식 등이 뒤범벅된 아수라 지옥의 풍경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어둠과 그늘을 면밀히 짚어내면서도 드러난 상처와 아픔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껴안고 아파하고 극복하며 치유의 본질을 되새긴다.

작품은 전쟁, 욕정, 열정, 사랑, 기적을 주제로 뜨겁고 신산한 인생의 무늬를 만들어 보여주는 '인생의 무늬'로 시작해 '능바우 가는 길'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피란지였던 능바우에서의 시간에서 50년 세월이 지나, 이제 소설가로서 명망을 얻은 주인공이 멀고먼 킬리만자로까지 날아갔다가 결국 능바우로 귀환하는 서사 구조가 분단의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세월 속에 갇힌 사람들'과 '어머니', '유언', '외숙모' 모두 분단의 현실과 아픔을 소환한 작품들이다.

   
▲ 홍상화 작가의 신작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 표지. /사진=한국문학사


다른 한 축인 '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과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서사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문제를 화두로 한다. '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은 한국에서 실패한 삶을 살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미국으로 간 두 남성의 이야기로, 냉혹한 삶의 법칙을 그려내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하나의 힘으로서의 우정을 보여준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은 실패한 사업가의 삶을 통해 처절한 한국의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모든 희망의 근원으로서 가족애를 드러낸다. 

작가는 상처 입고 부서진 사람들의 서럽고 원통한 사연을 무겁게 끌어올려 이야기하면서도 '함께 아파하기'라는 생명의 지혜로 그 모든 상처의 시간을 치유하고자 한다. 상처받은 자만이 진정으로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다는 통찰력을 갖춘, 진정한 치유 작가로서의 문학적 성취가 유감없이 발휘된 치유의 소설들이다. 

한편, 홍상화 작가는 1940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기업 활동을 하다 1988년 장편소설 '정보원'을 펴내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거품시대', '불감시대', '사람의 멍에', '범섬 앞바다', '디스토피아', '30-50 클럽', '전쟁을 이긴 두 여인', '우리들의 두 여인', '동백꽃' 등을 펴냈다. 380쪽, 한국문학사, 1만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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