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공모에 신청한 서울의 한 고교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혀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요청하고 나섰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을 거부한 주된 이유는 학력 저하 우려다.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가 상당한 학력 신장을 이뤄냈다"며 "학력저하는 근거 없는 오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은 오히려 학력 신장 주장이다.
4일 서울 중산고가 혁신학교 지정 철회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공문을 받은 시교육청은 예의 이중잣대를 발휘했다. 처음에는 근거가 없다고 반려했다가 근거를 보완해 오니까 설득 노력이 없다고 다시 거부했다. 자사고 지정 취소는 학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차례 평가를 해 끝끝내 추진했고, 십수억 원의 예산 지원까지 내걸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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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
예산이 부족해 누리과정도 못하겠다는 시교육청 입장에서는 거액의 지원금을 주는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반기고, 일반학교보다 훨씬 적은 예산을 덜 받는 자사고 지정을 반겨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시교육청이 이처럼 중산고의 신청 철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신학교가 하나 줄어서 ‘교육감님’ 정책에 흠집이 나기 때문일까? 그런 흠집이라면 이미 공모 목표인 55개교를 한참 채우지 못했을 때 났다.
그보다는 ‘학부모’들이 ‘학력 저하’ 우려 때문에 철회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부모 만족도도 높다”, “학력이 저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숨기고 싶었던 혁신학교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상징적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보교육감과 정치인들은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를 숨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처음 학력저하 논란이 일자 제기한 주장이 낙후된 지역에 혁신학교를 선정해 우수학생들이 없어 성적이 낮다는 것이었다. 소위 ‘선발 효과’론이다. 지금도 이 주장은 자사고의 우수한 성적을 비판할 때 이용된다.
그러나 학생의 기존 성취도 점수가 유사한 학교들이 달성할 것으로 예측되는 성취도 점수를 산출해 선발 효과를 제거하고 학교의 교육력에 의한 학력 향상을 측정하는 학교 항상도 수치를 보더라도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는 뚜렷했다.
지금도 서울 혁신고의 학교향상도 평균은 -2.95다. 학교 향상도가 음수(-)이면 성취도 하락을 의미한다. 반면 선발 효과 때문에 성적이 좋다고 진보교육감들이 주장하는 서울 자사고의 학교향상도는 양수(+)인 0.9다.
학교향상도에 대한 증거들이 제기되자 경기도교육청은 한 혁신학교 연수에서 학교향상도가 우수학생 선발을 반영했기 때문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오히려 기초미달 비율 감소야말로 학생 선발 효과를 배제하지 못해 학생선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수치다. 사실과 반대되는 주장을 연수 자료에 버젓이 게재하고 일부 언론을 통해 홍보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 기초미달 비율 감소를 본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기초학력’이라고 하면 50점이나 60점을 생각하기 쉽지만 성취도 평가에서 말하는 기초학력 미달은 20점 미만이다. 학부모들이 자녀가 20점만 넘기게 하려고 학교를 보낼 리가 없는데 20점 미만 학생이 0.몇% 더 줄었다고 해서 학력이 향상됐다는 논리를 받아들일 학부모가 있을까.
그마저도 서울의 경우 통계는 처참하다. 서울형 혁신학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9.7%다. 전국 평균(4.2%)의 두 배가 넘는다. 서울 A고는 기초미달 비율이 26.73%다. 20점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네 명 중 한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학업성취도 평가 점수만으로 얘기가 안 되니까 스타 혁신학교를 키우려는 노력도 있었다. 대표적인 학교가 경기도 B고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비평준화 지역 기피학교에서 125명 중 116명을 모두 대학에 진학시켰다"며 ‘기적’이라고 홍보했다.
그런데 이 학교는 개교 때부터 혁신학교였으니 사실 혁신학교 지정으로 진학률이 높아진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시 지정 2년이 넘은 경기도 혁신 중·고교를 통틀어 전 과목 모두 학교향상도 최하위를 기록한 학교다. 어떤 대학에 진학시켜 진학률을 만들어냈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이런 사실이 알려진 후 B고 홍보를 슬그머니 멈췄다. 요즘은 C고를 기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C고 역시 기초미달 비율은 5.7%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 보통이상 학력 비율(50점 이상)은 77.4%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 그나마 학교 향상도는 0.47이다. 그러나 이 정도가 기적이라면 서울시교육청이 지정취소를 강행한 향상도 2.6의 자사고 세화고는 뭐라 불러야 할까.
서울시교육청은 오늘(16일)도 한겨레신문을 통해 혁신학교가 학력 신장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통계는 여전히 서울형 혁신학교에서 50점을 넘지 못하는 학생이 전국 평균보다 17% 포인트나 많고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고교 2년 동안 학력이 중3 때보다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박남규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