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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담 아나운서 |
과자 시장에 열풍이 불고 있다. 어딜 가나 이 얘기다. 사고는 해태가 쳤다. 새우깡이 수십 년 지켜온 '국민과자’ 타이틀까지 넘본다는 그 이름, 바로 허니버터칩이다. 상상의 해태(海苔)가 환상의 과자를 낳은 걸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이 1500원짜리 과자는 가는 곳마다 매진 사례를 부르고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다. 실존하는 과자가 맞긴 하냐는 '음모론’까지 떠돈다.
의심할 만도 하다. 구하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일련의 상황은 경제학원론과는 조금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수요량이 폭발하면 가격이 오름으로써 새로운 균형점이 만들어진다고 원론은 가르치지만 현실엔 시차가 있다. 공장 증설은 'No’로 판단 내린 해태가 만약 지금의 수요폭발에 가격 인상으로 대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신종 마케팅’이다.
지난 달 SNS를 달궜던 게 '허니버터칩 인증샷’이었다면, 최근에는 허니버터칩이 낳은 신종 '마케팅’의 진풍경이 실시간 업데이트 되고 있다. 없어서 못 판다는 허니버터칩을 다른 상품들과 묶어서 판매하는 이른바 '인질 마케팅’이 등장한 것이다. 상술이라는 비판에도 이 전략은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스케일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 중이다.
몇몇 편의점에서 안 팔리는 과자들을 허니버터칩과 묶어 판 게 시작이었다. 이제는 허니버터칩 한 봉지에 쌀 한 포대를 끼워 파는 곳도 나왔다. 과자 한 봉지 먹겠다고 쌀 한 포대를 이고 돌아오는 길엔 내가 이 과자를 산건지 이 과자가 날 산건지 헷갈리지 않을까. 좀 부자연스러운 풍경인 건 맞다.
결국 현재 허니버터칩의 '시장가’는 1500원이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인질 구출작전에 투자된 비용의 총합이야말로 허니버터칩의 가격이다. 명목가격은 그대로지만 실질적으로는 가격이 오른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재화의 경우 수요 증가에 따른 비용 상승을 제품 가격으로 지불하게 된다. 하지만 유동성이 떨어지는, 즉 가격을 함부로 올리기 어려운 재화의 경우에는 이렇게 다른 방식의 가격 증가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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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니버터칩 /뉴시스 |
이 '시장의 탐욕’을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전례 없는 인질마케팅 논란에 단속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기상품을 비인기상품과 같이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끼워 팔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인질 마케팅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건 공정위의 몫이다. 문제는 단속의 의미와 실효성이다. 허니버터칩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가 계속되는 한 비슷한 마케팅은 어떤 형태로든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당장 가격을 올릴 게 아니라면 그런 마케팅이라도 등장하는 것이 시간과 재화를 제한받는 소비자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허니버터칩은 이미 중고 거래 사이트, 경매 사이트 등에도 등장했다. 단속에 나서겠다는 공정위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퀴퀴한 뒷골목에서 돌돌말린 지폐 뭉치와 허니버터칩이 은밀하게 거래되는 장면이라도 보고 싶은 걸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바람이 있는 곳엔 반드시 파도가 일렁인다. 달콤한 꿀과 고소한 버터를 바르고 등장한 이 깜찍한 '신상’은 감자칩이 언제나 짭쪼름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냈다. 그리고 선택의 폭을 넓혔다. '혁신’과 '차별화’라는 기업가 정신이 발휘된 것이다. 공정위, 혹은 그 누구도 이 바람을 막을 수 없다.
허니버터칩의 매출은 출시 3개월 여 만에 동종 1위 제품과 맞먹을 수준으로 성장했다. 사실 본게임은 지금부터다. 이제 경쟁업체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신제품 개발에 나설 것이다. '제2의 허니버터칩’ 자리를 두고 벌어질 치열한 경쟁으로 가장 큰 수혜를 누리게 될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다.
여자들은 자기 옆으로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분이라도 한 번 더 찍어 바른다. 프랑스산 고메버터칠을 하고 나타난 이 특별한 감자칩이 다른 과자에겐 또 어떤 칠을 하게 할까? 즐거운 상상이다. 쌀쌀한 겨울, 과자시장에 불어 든 이 열풍(烈風)이 소비자에게 득이 될 따스한 열풍(熱風)이 되리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정소담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