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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조선시대에는 공무원이 최고였다. 과거제가 정착하고 발달한 조선에서는 과거에 합격해 공무원 자리에 앉는 것은 말 그대로 동네와 가문의 영광이었다. 역으로 양반이지만 과거에 몇 대째 붙지 못한 집안은 양반 대접을 못 받았다.
그런데 양반 계급, 공무원이 최고였던 사농공상의 나라 조선은 패망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반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가 등장했다. 대한민국은 건국된 지 66년이 된 나라다.
오늘의 주인공인 공무원은 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위해 사역하고 근무하는 자리이다. 공직자윤리법을 준수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안녕을 보장해야 하는 입장이다. 수천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으며 국가 공무를 수행하는 관리들이다.
재미난 것은 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공무원이 대세라는 점이다.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를 봐도 알 수 있다. 부자가문 자식은 예외이지만, 판사 검사 등 법원 공무원을 정점으로 사무관 등의 행정부 공무원이 최상등급의 뒤를 잇고 있다.
한국에서의 공무원 열풍의 근본 원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정성에 기인한다. 공무원이란 특수성과 안정성으로 인해 가장 말단인 9급 공무원에 합격만 해도, 내노라하는 대기업 근무 이상으로 조기퇴직에 대한 걱정이 없다. 물론 제약도 있다. 노동3권 중 두 가지만 인정(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만 인정, 단체행동권은 불인정)되며, 정당 가입 금지 등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공무원도 많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공무원은 161만 명이며, 그 중 119만 명이 정부소속 공무원이다. 정부소속 공무원은 국가 및 지방공무원(98만 명)과 직업군인(군무원 포함, 21만 명)으로 나뉜다. 사회보장기금 및 기타 비영리 공공기관에는 9만 명이 속해있으며, 나머지 33만 명은 비정규직 공무원이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6.5%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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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특위와 국민 대타협기구를 연내 구성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야당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요사이 계속해서 정계의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공무원연금개혁이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 등이 궐기하여 여당이 제안한 공무원연금개혁안에 대하여 결사반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특위, 소위 공무원연금 대타협기구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옥신각신하고 있다. 물론 야당은 여당의 공무원연금개혁안에 반대하여 공노총 공투본 등 공무원의 편을 들고 있다.
지난 11월 안전행정부가 전국을 돌며 진행했던 공무원연금개혁 국민포럼은 공무원노조의 집단행동으로 잇따라 무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 50여개 단체가 공무원 44만5208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연금 개정안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99%(98.64%)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고위공무원들도 연금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는 고위급이 솔선수범한다는 차원에서 장·차관급을 대상으로 연금개혁 동참 결의안에 서명을 받았고, 이후 안전행정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단 2213명에게 서명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상당수 부처와 기관에서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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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12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하여 부내 직원대상으로 자유토론 형식의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공노총 공투본 등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하나다. “우리의 연금을 건들지 말라”, “열악한 급여 대우를 받으며 성실히 일해 온 우리들의 연금을 빼앗지 말라”, “우리의 연금을 깨기보다는 비교대상이 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처우를 상향시켜 복원하라”고 외친다.
이처럼 공무원들은 국민연금의 상향화를 거론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사실 더 큰 문제다. 노태우정부 1988년에 도입한 국민연금은 지금의 추세로 가면, 2044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에는 기금이 고갈되는 등 파국이 예정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2012년 이미 가입자 수 2000만 명을 넘어섰다(2032만 9060명).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이 속해있으며, 공무원연금 가입자 128만 명의 16배에 달한다. 공노총 공투본으로 대변되는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국민연금으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꼴을 더욱 빨리 보고 싶다고 외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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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세종지역 공무원 노동조합이 공적연금강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12월 13일 오후 대전 서대전공원에서 열려 조합원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일각에서는 국가고시에 합격한 공무원이 임용되면서 연금 및 정년에 관한 일종의 노동계약을 정부와 맺은 것이니, 정부는 계약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도산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하다. 적자가 지속되는 기업들은 자본금을 다 쓰고 나면 도산한다. 66년간의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수백 수천만의 기업들이 도산하고 없어졌다.
공무원들이 착각하는 점은 하나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비근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면 정부도 디폴트될 수 있다. 정부 재정 및 사무 관리를 맡아 국민을 위한 공무에 불철주야 애쓰시는 공무원 양반들께서 이 점을 망각하면 안 된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사람을 정년까지 자를 수 없으면 세금 낭비를 줄이면서 인건비를 삭감해야 한다. 2000만명 가입자를 둔 국민연금은 2007년에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연금 급여 수준을 소득대체율 60%에서 40%로 낮추었다. 공무원은 국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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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개혁 국민운동본부,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연내 공무원연금 개혁안 통과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국민들 대다수가 자신보다 더 많은 연금을 타가는 공무원들의 공무원연금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낸다. 현재 공무원연금 적자보전을 위해 2014년 2조5000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고 2020년에는 6조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금은 사농공상 조선의 시대가 아니다. 공무원은 일자리의 높은 안정성에 준할 만큼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을 보장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수천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지만 세금 낭비와 무책임한 관리에 일삼는 일부 그릇된 공무원들은 별개이다. 양심을 지니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공무원들이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