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민서 기자] 트로트 열풍이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성인가요란 편견 속에 비주류 취급 받던 것도 어느덧 옛말이다. 엄마만 듣는 줄 알았는데, 이젠 딸도 듣는다. 21세기를 관통한 20세기 감성, 그 핵심은 '리모컨 권력'에 있다. 

   
▲ '미스터트롯' 콘서트 현장. /사진=쇼플레이 제공


◆"채널 고정, 본방 사수"

올해 가장 화제성이 높았던 예능프로그램은 단연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이다. 지난 10년 간 좀처럼 달성하기 어려웠던 꿈의 시청률 30%대를 돌파하며 단숨에 '국민 예능' 반열에 올랐다. 30%대 시청률은 2011년 KBS 2TV '1박 2일' 이후 9년 만이다. 게다가 결승 무대가 펼쳐진 3월 12일 방송분은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하기도 했다.(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 

'미스터트롯'의 성공 요인은 다양하다. 주 시청층이 5060 세대인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이 타깃을 겨냥한 트로트 장르에 오디션 포맷을 적용해 젊은 세대까지 사로잡았다. 여기에 앞선 시즌인 '미스트롯'의 흥행 열기는 '미스터트롯'의 초반 화제성을 높이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코로나19는 '미스터트롯'에 호재로 작용했다. 코로나 공포가 극심하던 연초부터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 창궐 이후까지의 의도치 않은(?) 편성 전략이 주효했다. 실제, '미스터트롯'은 한국갤럽이 선정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2020년 2월~11월) 1위에 올랐다. 

곤두박질 치던 TV 위상이 코로나로 인해 다시금 주목 받고, 리모컨을 쥔 중장년층이 시청률의 힘을 재확인 시키면서 트로트는 가요계 너머 TV 판도까지 뒤바꿨다. 

   
▲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 /사진=포켓돌스튜디오 제공


◆엄마는 '문투', 아빠는 '스트리밍'

트로트의 부활이 갑작스럽진 않다. 장윤정이 '어머나'로 트로트 대중화의 새 장을 열었고, 홍진영이 배턴을 받아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중장년층이 오디션 포맷에 몰입하면서 트로트 가수도, 그의 팬덤도 '아이돌화(化)' 됐다. 쉽게 말하자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문자 투표를 하고, 음원 차트 순위를 높이고자 스트리밍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스트롯'이 배출한 차세대 트로트 퀸 송가인이 그 첫 번째 타자였다. 송가인의 팬덤 '어게인(AGAIN)'은 아이돌들이 주로 하는 고유 색 설정을 시작으로 최근 주류로 떠오른 기부 활동까지 젊은층 못지 않은 화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세는 '미스터트롯' TOP7 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임영웅은 발표하는 신곡마다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새로운 음원강자로 떠올랐고, 유튜브 구독자수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김호중 역시 탄탄한 팬층을 확보해 군 공백기에도 여전한 인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가 올해 발매한 앨범 '우리가(家)'와 '더 클래식 앨범(THE CLASSIC ALBUM)' 2종은 각각 초동(발매 후 일주일간 판매 집계) 판매량 50만 장을 넘어섰다.(한터차트 기준) 팬카페 회원수는 10만 명을 돌파한 상태다. 

그런가하면 '미스터트롯' 전국 투어 콘서트는 '가황' 나훈아 콘서트 티켓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했다. 인기 많은 아티스트의 공연이 매진되는 일은 흔하지만, 중장년층이 단체로 가수 얼굴이 새겨진 물품이나 옷, 응원봉 등을 갖추는 모습은 흔치 않다. 이제 음악 방송 프로그램 출근길에 정동원 현수막을 든 어머니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 '2020 MMA'에서 수상 소감 중인 임영웅. /사진=카카오 제공


◆젊어진 트로트, 시상식 구색맞추기 '안녕' 

트로트는 시상식에서 보기 힘든 장르였다. 지상파 가요 시상식에서도 트로트 무대는 구색맞추기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젊은층의 성전 같던 각종 가요 시상식에서 트로트는 빠질 수 없는 장르로 떠올랐다. 트로트가 중장년층을 넘어 MZ세대(20대 밀레니얼 세대와 10대 Z세대)까지 사로잡았단 것을 의미한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으로 종합편성채널 시청률 새 역사를 쓴 TV조선은 자체 시상식 '2020 트롯 어워즈'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트로트 100년사에서 트로트 만을 겨냥한 시상식은 처음이다. 

타 시상식에서도 트로트 인기는 뜨겁다. '미스터트롯' 진(眞) 임영웅은 각종 시상식의 대표 가수로 소개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임영웅은 '2020 아시안 뮤직 어워즈(Asian Music Awards)'와 '2020 멜론 뮤직 어워즈'(2020 MMA) 3관왕, '2020 더팩트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에 올랐다. 그는 31일 열리는 MBC '가요대제전'과 내년 1월 9~10일 개최되는 '35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도 참석한다. 

'미스터트롯' 영탁, '미스트롯' 송가인, '트로트의 민족' TOP4 안성준, 김소연, 김재롱, 더블레스 등 또 다른 차세대 트로트 스타들도 시상식 무대를 확정하고 바쁜 연말을 보낸다. 

'미스트롯'이 열고 '미스터트롯'으로 절정을 맞은 트로트 열풍은 TV 시청자의 애정을 자양분 삼아 2년째 식지 않고 있다. 최근 온라인을 달군 비의 '깡' 열풍이 일찍 사그라든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는 차세대 트로트 가수의 발굴, 젊은층 유입을 통한 다양한 변주, 그리고 우후죽순 쏟아지는 수많은 트로트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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