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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각에서 본 임진강. 맨 아래 가로 다리가 '자유의 다리', 왼쪽이 임진강철교, 오른쪽은 폭격으로 끊어진 구 철교와 '독개다리' [사진=미디어펜] |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가 밝았다.
경자년 쥐들과 함께 들어왔을 것 같은 바이러스 병마를 이겨내고, 올해는 소처럼 우직하게 걷고 또 걷기를 다짐하며,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으로 향한다.
한강의 제1 지류인 임진강(臨津江)은 길이 254㎞로,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 산맥에서 발원, 남북 접경지대를 흘러 내려와 한강으로 유입,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그래서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강이다.
원래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라 불렀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 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라고도 했다고 한다.
경기도 연천에서 한탄강(漢灘江) 및 차탄천과 합류,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평야지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 황해로 흘러든다.
임진강에서 특히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명소가 임진각이다.
임진각(臨津閣)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에 있는 안보관광지다. 정식 명칭은 '임진각국민관광지'이나, 보통은 '임진각' 또는 ‘임진각평화누리공원’ 등으로 부른다.
지난 1972년 북한 실향민들을 위해, 당시에 1번 국도를 따라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끝 지점에 임진각이 세워졌다. 군사분계선에서 7km 남쪽에 있는데, 판문점과는 다르게 복잡한 허가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파주시의 대표적 유명 관광지다.
'임진강의 누각'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 대지 6000평, 연건평 2442㎡ 규모의 편의시설로, 옥상에는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 일대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임진각을 찾아가는 길은 파주시 문산(文山)에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경의중앙선(京義中央線) 전철을 타면, 마지막 종착역이 바로 문산역이다.
철길은 임진강역으로, 다시 남한 최북단 도라산(都羅山) 역으로 이어지지만, 임진강역행 전동열차는 평일에 하루 4회, 주말은 8회 뿐이며, 도라산역 가는 열차는 일반 전철이 아닌 ‘DMZ 트레인’ 관광열차다.
어쨌든 좀 멀지만, 문산역에서 분단시대의 아픔을 곱씹으며 두 발로 걸어가기로 했다.
역사를 나와 좌회전, 그 앞을 지나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그리 오래지 않아, 문산천(文山川)의 지류인 동문천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소하천이다.
동문천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면, 왼쪽에 ‘어육도 외식공간’이라는 큰 식당이 있고, 그 옆으로 좁은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가면, 경의중앙선 철로를 밑으로 통과할 수 있는 굴다리가 있다. 길을 찾지 못했다면, 조금 더 가서 삼거리에서 좌회전, 다음 사거리에서 또 좌회전한다.
굴다리 바로 건너 편, 통일공원(統一公園)으로 들어선다.
통일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문산.개성 일대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국군 제1사단이 1973년 조성한 곳이다.
공원 언덕위에는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 ‘한국전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살신성인탑(殺身成仁塔)’ ‘이유종 대령 기념비’ ‘소위 김만술상’ ‘충현탑(忠顯塔)’ ‘임광빈 중령 기념비’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등, 꽤 많은 기념물들이 모여 있다.
이중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육탄10용사 충용탑(肉彈十勇士 忠勇塔)일 터이다.
육탄10용사는 한국전쟁의 전초전 격인 1949년 5월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수류탄과 폭탄을 품에 안고 적진지로 육탄돌격, 장렬히 순국하며 승전을 이끈 10명의 국군용사들이다.
언덕을 내려오니, 맞은편에 특별한 볼거리가 있었다.
북방식 고인돌(支石) 1기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남한에서는 무덤방이 지하에 있는 남방식 고인돌이 대부분인데, 저렇게 잘 빠지고 잘 보전된 북방식 고인돌은 처음이다. 뜻밖의 보물을 만난 기분이다.
그 옆으로 ‘리비교-한미동맹 평화벤치’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비석이 있다. 비석은 일붕(一鵬) 서경보 스님의 글씨를 새겼다.
통일공원을 나와, 다시 경의중앙선 철길을 통과, 동문천을 건넜다. 이젠 동문천을 따라간다.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물길은 곧 문산천과 합류한다. 문산천은 제방 위와 고수부지에 산책로가 잘 조성돼있다. 걷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성탄절(聖誕節)이 이틀 뒤여서, 대형 트리와 장식품들이 반겨준다.
둑길을 계속 걸으면, 다리가 나오는데 건널목이 없다. 오른쪽 삼거리에서 길을 2번 건너, SK 셀프주유소 앞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주유소 옆 공사장을 지나면 둑길이 이어진다.
문득 앞에 철책과 거대한 군사시설이 보인다. 여기부터가 임진강이다.
철책 오른쪽으로 ‘평화누리길’ 표시가 보인다. 평화누리길은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과 경기도가 함께 조성한 남한 최북단 남북 접경지역을 횡단하는 189km의 도보여행길로, 여기는 자전거길이다.
이제부턴 평화누리길 표시만 따라가면 되니, 안심이다. 자유로(自由路)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난다. 왼쪽은 문산대교다.
왼쪽 철책 너머에 자유로, 그리고 임진강이다. 길 오른쪽에도 군 초소들이 있다.
갑자기 강변길이 끊어지고, 평화누리길은 오른쪽 벌판으로 이어진다. 다시 자유로와 만난다. 자유로와 누리길이 나란히 뻗어있다.
작은 네거리에 이르자, 굴다리 건너편에 황희(黃喜) 정승 유적지 안내판이 보인다.
이 곳에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자 청백리의 귀감인 황희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 만년에 여생을 보낸 정자 반구정, 선생의 현손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황맹현의 부조묘, 황희 선생의 동상과 방촌기념관, 그리고 문중인 장수황씨의 재실인 소명재(昭明齋) 등이 있다.
특히 반구정(伴鷗亭)은 임진강에 내려다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있는 정자로,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여기는 또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반구정길은 임진강을 따라, 율곡습지공원(栗谷濕地公園)으로 이어진다.
반구정길을 계속 걸었다.
이제 다리도 아프기 시작하고, 배도 고프다. 마침 고갯길 마루에 쉼터가 있다. 발 아래 자유로가 지나고, 멀리 임진강도 잘 보이는 전망대다. 처음 만나는 쉼터에서 점심도시락을 꺼낸다.
다시 길을 따라간다. 이제 임진각이 머지않았다.
작은 소하천을 건너니, 눈앞에 임진강역이다. 하지만 길이 없어, 누리길로 돌아가야 한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 평화누리길과 이별하고, 임진강역을 지난다. 열차가 오려면 3시간은 지나야 한다. 역사 옆에는 휴전선(休戰線) 시비가 있는데, 동그란 모양이다. 박봉수 선생의 시와 신영복 선생 글씨를 새겼다. 그 앞 목이 달아난 문인석이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듯하다.
드디어 임진각이다.
입구엔 ‘미얀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기념탐’이 우뚝 솟았다. 그 옆에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이 있고, 그 너머 소공원인 ‘통일공원’엔 ‘임진강지구 전적비’ ‘파주시 6.25 참전비’ ‘미 제2사단 6.25 참전비’ 등 여러 기념비와 기념물들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美國大統領) 동상이다.
트루먼은 미국의 33대 대통령이었다. 1945년 대통령에 취임, 제2차 세계대전을 최종 승리로 이끌고,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참전을 결정한 주인공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새겨진 경의선 철도중단점(鐵道中斷點) 비석, 그 옆 철길에 세워진 낡은 증기기관차, 옛 임진역 재현 매점이 굳게 닫힌 모습이 안쓰럽다.
임진각 옥상 전망대에 올랐다. 임진강과 주변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된다. ‘자유의 다리’, 임진강 철교 상행선과 다리 기둥만 남아있는 철교 하행선, 일부만 복원된 ‘독개다리’가 모여 있다.
최근 새로 생긴, 임진강을 건너며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곤돌라들이 오간다.
망배단(望拜壇)은 임진각의 상징이며, 실향민들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매년 명절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제사나 차례를 지내고 있다.
그 옆 망향(望鄕)의 노래비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녔다.
박건호 작사, 남국인 작곡, 설운도 노래의 ‘잃어버린 30년’은 1983년 무려 138일에 걸쳐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KBS 이산가족(離散家族) 찾기 생방송의 배경음악으로,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 옆 녹슨 철로 곁에는 위안부 소녀상 2기가 있다.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이다.
그 앞 철조망에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수많은 리본들이 달려 절박한 민족의 소망을 말해주고, 옛 장단역 근처에 버려졌던 부서진 증기기관차(蒸氣機關車. 등록문화재 제78호)와 열차의 잔해는 전쟁의 참상을 대변한다.
임진강 독개다리는 폭격으로 파괴된 교량을 활용, 전쟁 전 철교와 객차의 형태를 재현한 관광형 인도교다.
자유의 다리 끝 철책은 대형 태극기(太極旗)들과 한반도기, 리본 등으로 온통 뒤덮였다.
독개다리 오른쪽에는 ‘망향’ 시비, 지하벙커를 재활용한 전시관, 제야의 종 타종 영상에 등장하는 ‘평화의 종’과 세계의 전장에서 모은 돌들로 조성한 비석인 ‘평화의 돌’ 등이 있다.
나오는 길 옆‘ 평화열차’와 놀이공원인 ‘평화랜드’는 적막하기만 하다.
평화랜드 너머, ‘평화누리공원’은 2005년 세계평화축전(世界平和祝典)을 계기로 면적 약 99만㎡의 넓은 잔디언덕에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희망,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자는 취지에서 조성한 공원이다.
‘평화의 발’ 조형물, 과거 우리 영공을 수호하던 ‘팬텀’ 전투기, 거인 모양의 조형물들,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3000여 개의 바람개비 등이 볼 만하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임진강역 열차시간에 맞춰, 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환승 없이 서울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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