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 거꾸로 읽기
   
▲ 이원우 기자

지록위마(指鹿爲馬)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진실과 거짓이 마구잡이로 호도된 상황을 지칭하는 이 네 글자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 출처는 교수신문. 경성대 중국통상학과 곽복선 교수는 “올해는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라고 말했다.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구사회 교수는 “세월호 참사, 정윤회의 국정개입 사건 등을 보면 정부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그간 교수신문의 좌편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솔직히 ‘지록위마’에 대한 저 코멘트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먼저 튀어나왔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비난은 이르다. 사자성어의 장점이 뭐겠는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아닌가?

좋은 면을 보기로 했다.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올해만큼은 교수들께서 참으로 통찰력 있는 네 글자를 고르셨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청마(靑馬)의 해였던 2014년엔 유난히 사슴이 말로,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문창극은 정말로 일제강점기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했던가? 이인호는 정말로 김구의 업적을 완전히 부정했던가? 세월호 참사는 정말로 박근혜의 탓이었던가…?

청와대 수석 김상률 문제가 심각한 ‘진짜’ 이유

거짓이 진실로 날조되기만 했던 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분명한 진실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그늘 속을 맴도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가 바로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유임(留任)이다. 단언컨대 김상률은 지금 진실과 양심의 가치를 짓밟고 교문수석의 자리에 남아 있다. 자유와 보수의 가치를 믿는 기자의 하나로서 나는 김상률 문제가 합당한 결착을 맺을 때까지 손가락이 닳도록 같은 지적을 반복할 생각이다.

김상률이 북핵 옹호 발언을 했다는 얘기는 매우 심각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사실 아니다. 그는 분명 ‘차이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북핵(北核)은 약소국 생존을 위한 비장의 무기”라는 망언을 했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다. 북핵에 대한 관점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가 현대사회의 결혼과 가족제도에 대해 매우 급진적인 폐지론을 펴고 있다는 지점에 존재한다(“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조장하는 식민적인 노예 제도… 발전적인 해체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유민주주의와 건전한 보수주의의 가치를 체득하고 있어야 할 마지막 위정자가 바로 교육문화수석이다. 문화가 교육을 지배하고 교육이 미래를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철 지난 좌파 영문학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학자를 미친 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념싸움의 최전선에 배치해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문창극은 안 되는데 김상률은 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청와대는 알려주시길 바란다. 문창극은 명함도 못 내밀 망언들을 내뱉은 것으로 확인된 그가 청와대에서 교육문화수석을 해도 될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다른 건 몰라도 교육문화수석만큼은 곤란한 인물이 김상률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말’의 얼굴을 하고서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문화수석이 아닌 사람을 교육문화수석이라고 말하고 있는, 지록위마다.

‘우수하지 않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들

김상률이 하필이면 교육문화수석이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사슴이 말로 둔갑하는 희한한 상황은 문화 분야에서 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잔재인지도 모르겠지만 문화 분야는 ‘갖다 붙이면’ 뭐든지 답이 되는 희한한 특성을 갖고 있다.

2013년의 ‘우수교양도서 사건’은 이 분야의 갖다 붙이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체 게바라의 삶을 미화하는 동화책,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는 아동도서, 처음부터 끝까지 반미(反美)로 점철된 동화책들이 정부 공인 ‘우수교양도서’ 도장을 받고 전국 각지의 도서관과 서점으로 흩뿌려졌다. 우수하지 않은 것을 우수하다고 말하는 지록위마다.

미래한국에서 일하던 당시 이 문제를 단독으로 보도한 것은 예상보다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은 이념 대립이 극대화된 한국 사회에서 균형 있는 도서 선정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뒤 우수교양도서는 ‘세종도서’로 이름을 바꿨다. 논란이 있었던 만큼 2014년엔 어떤 도서가 선정되는지 유심히 지켜볼 사람들도 많아졌을 터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년처럼 노골적으로 왼쪽으로 편향된 도서들이 다수 포함된 것 같지는 않다. 한국경제신문 오형규 논설위원의 ‘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의 경우 한때 만나는 사람에게 전부 추천을 했던 좋은 책이다. ‘공병호의 인생사전’도 비슷한 관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들이 설령 기계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선정된 결과물이라 한들 그나마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데 최소한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돼야 할 문제들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세종도서는 두 분야로 나뉘어 발표됐다. 인문‧사회과학‧기술과학‧예술‧역사 등으로 나뉘어 선정된 교양부문이 410종, 시‧소설‧수필‧평론‧희곡‧아동청소년 등으로 나뉘어 선정된 문학나눔 부문이 무려 599종이다. 도합 1009권의 우수도서들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매달 ‘읽을 만한 책’이라는 이름으로 성인용‧청소년용 추천도서를 약 20권씩 발표한다. 1년이면 240권이다. 결국 진흥원이 한 해 동안 추천하는 책만 합쳐도 1240권 정도가 된다는 말이다.

정부가 앞장서 지식과 정보의 오염을 부채질하는 셈

추천하는 사람도 추천 받는 사람도 감당이 안 될 것임에 틀림없는 분량이다. 단언컨대 이 책들을 다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하버드 도서관의 책을 전부 읽었다는 박원순 시장밖에 없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우수도서가 넘쳐나는 다독가들의 천국이 되었던가? 이것 또한 우수하지 않은 책까지 우수하다고 말하는 신(新) 유형의 지록위마 아닌가?

지난 4월 발표된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2인 이상 가계가 책을 사는 데 지출하는 비용은 월평균 1만8690원이다. 이 기록은 11년째 매년 최저치를 갱신되고 있다. 심지어 이 금액 안에는 학생들의 참고서와 취업 준비생들의 수험서가 포함돼 있다. 어딜 봐도 독서 강국이라고 볼 수는 없는 처참한 풍경이다.

아마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난맥상을 ‘돈 풀기’로 타개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종도서로 선정되면 종당 1,000만원 이내로 해당도서가 구입돼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사회복지시설 등 3,900여 곳에 배포된다. 책 읽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에 반해 도서관 시스템은 과분할 정도로 잘돼 있는 나라가 또한 대한민국이다. 누가 읽든 안 읽든 정부는 우수도서라는 이름으로 쓰러져 가는 출판사들을 위한 긴급수혈을 해준다.

그것이 정말로 출판 산업을 위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문제는 이렇게 수많은 도서들을 혈세로 지원하고 있으면서도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민국의 중심가치인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놀랍도록 무심하다는 사실이다.

아직 정밀분석을 해본 건 아니지만 반(反) 시장의 가치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세종도서들이 벌써부터 눈에 띈다. 대표적인 책이 바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다. 일견 자본주의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을 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의 귀결은 결국 복지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결착되고 만다. 이 책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시장도 정부도 아닌 국민이 주인이다’로 되어 있다. 시장 안에는 국민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는 전형적인 지록위마다.

공영방송 EBS는 정말로 이 내용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방송을 제작한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정말로 이 내용이 대한민국의 가치와 부합한다고 생각해서 세종도서로 선정한 것인가? 돌이켜 보면 문창극의 과거 발언을 날조해 보도한 곳도 공영방송 KBS였다.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새누리당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국민들이 언론 다음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정당(政黨)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할 것으로 기대할 만한 정당은 ‘우파’ 정당으로 알려진 새누리당이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바로 이 새누리당이 격렬한 이념싸움의 전장에 나설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한 당직자는 새누리당에 대해 “영혼이 없다”고 일갈했다. 속이 다 후련해지는 한 마디였지만 이 한 문장을 기사로 쓰지는 말아달라고 수습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이제 지난 12월 초순 새누리당의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구)이 ‘문화’의 이름으로 어떻게 시장원리를 유린했는지 보자.

김 의원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수정안’의 대표 발의자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종래 2014년까지였던 영화상영관입장권 부과금 징수기한을 2021년까지로 연장하는 것이었다.

‘입장권 부과금’이란 관객이 낸 영화티켓 값에 자동으로 포함되는 영화발전기금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스크린쿼터 축소에 격렬히 반대하는 영화계를 달래기 위해 고안한 제도다. 도입될 때만 해도 ‘이 제도는 한시적인 것’이라고 참여정부는 말했다. 그렇게 지난 6년간 한국 영화계에는 총 2132억 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참여정부조차 2014년까지만 유지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제도의 바통을 이은 것이 바로 새누리당의 김세연 의원이다. 뭐든지 좋아 보이기만 하면 이념적 고민 없이 설레발을 치는 새누리의 수준을 그대로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이런 정당과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논하고 시장경제의 가치를 토론할 수 있을까? 보수를 모르는 정당이 보수인 척 하고 있는 지록위마가 여기에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른 국회의원 5인의 의원직 상실로 2015년 4월29일에는 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이 선거를 제외하면 2015년에는 큰 선거가 없다. 바꿔 말하면 정치적 이해타산 없이 원칙과 정론에 천착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바로 2015년이라는 의미다.

지록위마의 한 해가 가고 있는 지금, 문화 분야에는 그 어느 때보다 올곧은 이념에 기초한 시선들이 절실하다. 황선‧신은미의 종북형 토크콘서트까지 ‘문화’의 이름으로 용인되는 이 시대, 지록위마가 아닌 ‘광야를 내달리는 초인의 말’을 타고 달리는 이념전사들이 좀 더 많이 활약하는 2015년이었으면 한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 본 칼럼은 굿소사이어티(http://www.goodsociety.kr)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