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대 생인 어머니께 영화 <국제시장>을 보러 가시지 않겠냐고 여쭈어보았다. 어머니 왈, "글쎄... 그 시절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 시절 그린 영화 보러 가고 싶진 않아. 너랑 네 아버지와 함께 즐거운 영화 관람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눈물 흘리고 싶지 않거든."
지인의 어머니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시고 난 뒤 밤새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옛 시절 힘든 시절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렇다. 이것이 당시 그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의 마음이다. 53년생 한 어르신은 그 시절에 대해 우리가 살아온 시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는 소소하게 재미난 장면들도 많지만 담담하게 그 시절 그 시대 아버지의 시간을 그린다.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지만 삼사십년 전 당시에는 젊음과 혈기로 세상의 온갖 파고와 부딪혔던 당시의 젊은이들이 나온다. 웃고 울며 함께, 또는 혼자 살아가면서 가족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희생하며 애썼던 ‘흔남흔녀’ 들의 삶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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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시장 정보소개 페이지. /사진=네이버 영화 페이지에서 캡처 |
12월 25일을 기준으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전국의 누적관객은 286만명에 육박한다. 예매율 및 관객수에 있어서 올해 연말의 최고 히트영화이다. 관람객 네티즌들의 평점 또한 높다(9.2점). 그런데 국제시장을 바라보는 영화평론가들의 한마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평론가들의 평균 평점은 10점 만점에 5.8점이다.
“산업화 세대의 정치적 반동성을 탈색한 채 부르는 헌창.”
“아버지 세대에게 주는 위로 혹은 면죄부. 집단 정서를 건드리는 신파 코드는 공감을 부르기보단 호소에 가까운 방식.”
“어딘가 익숙한 넋두리. 이만큼 살게 된 게 누구 덕분인 줄 아냐는 언젠가 들어본 넋두리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 기성세대에게는 절절한 헌사겠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영 불편한 자리가 될 수도.”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평론가들의 관람 평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국제시장은 산업화 세대의 정치적 반동성을 표현한 영화”라는 것이다. 이를 한 평론가는 면죄부라고도 표현한다. 평론가들은 젊은 세대에게 불편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영화 국제시장이 공감 보다는 호소에 기대고 있다며 일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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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20년 30년,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배고픈 것을 걱정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배부른 시절을 지나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다. 2014년 지금 이 순간에 영화를 평론하는 분들은 ‘비만걱정시대’에 사는 분들이라 배가 부르신가 보다. 배가 부르다 못해 배배 꼬였다. 관객들의 일반적인 평과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일부 영화평론가들은 본인의 심성이 얼마나 꼬이고 비뚤어져 있나 알고 있을까.
영화 국제시장은 세대유전을 그린다. 부모세대에 대한 인정과 고마움을 우회해서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한다. 배고픈 그 시절을 살아봤냐고 젊은 세대를 힐난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화 세대의 정당성을 외치긴 커녕, 지난 수십 년간 이어졌던 어머니들의 마음과 아버지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영화 국제시장이 반동이라는 그 말을 소위 '영화평론가'라는 작자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별 것 아닌 소소한 영화에 손가락질을 일삼는 당신들이야말로 반동이라고.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