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개봉한 영화 프레데터를 보면 주인공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외계인 프레데터를 처치하면서 마지막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넌 정체가 뭐냐?” 이 질문에 프레데터는 알듯 모를 듯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팔목에 차고 있던 자폭장치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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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18일 서울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홍보관에서 열린 '봉제의류 제조업체' 제일모직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뉴시스 |
최근 증시에 입성한 제일모직을 두고 투자자는 물론 증권가에서도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패션·식음료·건설·레저 등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제일모직은 ‘봉제의류 제조업체’로 유가증권시장에 신규 상장됐다. 제일모직은 의류제조업체로 분류돼 섬유의복 업종지수에 포함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제일모직의 업종명은 ‘남자용 정장제조업’으로 나온다.
제일모직은 1954년 고 이병철 창업주가 설립한 삼성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대표 남성복 브랜드인 ‘갤럭시’와 캐쥬얼브랜드 ‘빈폴’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화학제품과 정보통신 소재, 멤브레인 등 다양한 신수종사업에 진출했다.
결국 2013년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로 매각했고 올 7월 삼성SDI로 흡수합병되면서 법인 자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같은 달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제일모직의 명맥은 이어지게 됐다. 이처럼 삼성에버랜드와 기존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합병된 회사인 만큼 삼성에버랜드가 영위하던 리조트·건설사업부문과 패션사업부문이 결합된 회사로 보는 게 정확하다. 에버랜드와 케리비안 베이도 제일모직이 하는 사업이다.
공시에서 친절히 소개하고 있는 제일모직의 사업 구성은 ▲건축, 토목, 조경 및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사업을 영위하는 건설사업부문 ▲전문급식 및 식자재유통업을 영위하는 급식·식자재유통 사업부문(삼성웰스토리) ▲테마파크와 골프장을 운영하는 레져사업부문 ▲패션제품의 제조와 판매업을 영위하는 패션사업부문 등이다.
왜 제일모직은 봉제의류 제조업체로 상장한 것일까. 매출비중이 패션부문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패션부문 매출이 높은 것은 아니다. 제일모직의 올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은 3조6149억원, 영업이익은 1352억원이었다. 사업 부문별 매출 비중은 패션(35.9%), FC(32%), 건설(23%), 레저(9.1%) 순으로 나타났다.
유준수 한국거래소 상장심사팀장은 “상장규정 상 가장 매출이 높은 걸로 업종을 정해야 해 제일모직이 봉제의류 제조업체로 상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공시에 나오는 업종이 거래소 업종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금감원 관계자는 “통계청 표준산업 분류표 업종 코드를 통해 제일모직이 직접 입력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편, 증권가에서도 제일모직의 정체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SDI·물산→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 계열사다. 사실상 현재도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나 다름없다. 이에 현대증권 등에서는 지주회사 담당 연구원이 제일모직을 담당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복합기업 담당 한병화 연구원이 제일모직 보고서를 쓴다. KTB투자증권은 은행·지주 담당자가, LIG투자증권은 조선·기계 담당 연구원이 보고서를 내놓는 등 정작 섬유의복 업종 담당자가 제일모직 보고서를 내는 사례는 없어 더욱 제일모직의 정체가 애매해지고 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