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정의용 외교장관’ 발탁, 남북미 대화재개 의지 드러내
미 전문가들 “북, 외교를 핵전략 실현 전술로 이용” 등 목소리
정성장 “성급하게 중재 역할 시도하면 실패로 끝날 가능성 높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외교부 장관을 전격 교체,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내정했다. 정 내정자는 앞서 문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고,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2018년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인사는 1년여 남은 임기 동안 마지막으로 ‘한반도 운전대’에 올라 남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그동안 동맹국 정상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던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 출범에 맞춰 문 대통령의 상황 오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시드니 사일러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은 22일(현지시간) 북한이 외교를 핵전략을 실현할 전술로 이용해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그는 이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화상 간담회에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도발 행위의 시기를 거친 뒤 핵 프로그램 개발 시간을 벌고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외교적 관여로 전환하는 시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근본은 정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핵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다. 북한 핵 프로그램이 북미 간의 문제라는 한국 내 어떤 망상도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의 새로운 전술 핵무기가 한국에도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미국의소리 방송에서도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문재인정부의 대북 인식과 접근법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들은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통해 이전의 선언과 합의를 철저히 이행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는 남북이 핵무기 시험, 생산, 보유, 사용 등을 하지 않는다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포함된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랠프 코사 태평양포럼 명예회장은 같은 방송에서 “문 대통령이 얼마나 순진한지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고 했으며,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모든 가용 정보와 반대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니 몹시 놀랍다”고 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뉴스1·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이와 같은 미 전문가들의 견해는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 진행한 북핵 협상 결과에 대한 총평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김 위원장는 12일 제8차 당대회 ‘결론’을 발표하면서도 “핵전쟁 억제력을 보다 강화해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핵무력 고도화’ 발언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북미 간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 합의된 원칙들을 어떻게 이행할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정부가 싱가포르선언을 계승해 속도감 있게 북미 간 합의된 원칙을 구체화시키는 방안을 논의해나간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많은 분야에서 ‘트럼프 지우기’를 새로운 정책으로 삼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선언 계승’을 노골적으로 발언한 것은 촉박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과 협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선제적인 메시지를 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아시아정책을 주관할 요직 인사들은 이미 과거 클린턴 정부와 오마바 정부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진행해본 경험을 가진 인물들로 포진돼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 협상 결과 북미 간 비핵화 정의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 확인됐다. 북한은 우선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군축회담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이런 과거 협상 실패의 핵심 요소들을 간과한 채 북한 핵포기와 관련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북미대화만 재촉할 경우 새로운 중재 역할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장 미 윌슨센터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 시기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 긴장완화는 이뤄졌으나 그 이상의 진전을 거두지 못했으므로 오히려 북한은 더욱 위협적인 핵능력을 갖게 됐다”며 “한국정부는 트럼프 정부 시기 대북정책에 대한 바이든 정부 인사들의 비판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정 연구위원은 특히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와 관련해 ‘필요하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미군사훈련은 한미 간 결정할 문제이지 남북 간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부적절한 입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바이든 정부는 동맹을 중시하기 때문에 한국 입장을 존중하려 하겠지만 동시에 한국도 미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번처럼 한국정부에서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이 계속 나온다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입장 조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 바이든 행정부 탄생 이후 미 백악관이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활동을 중대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간) 밝혔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나 백악관 차원에서 대북전략이 거론된 것은 처음으로 젠 샤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의심의 여지없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등 확산 활동이 세계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전 세계 비확산 체제를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샤키 대변인은 이어 “새로운 대북전략은 진행 중인 대북 압박 방안과 미래 외교 가능성 등 북한 관련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토, 그리고 한국·일본 등 다른 동맹들과 긴밀히 협의해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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