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논란이 일파만파다. 임성근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녹취파일 공개 후 김 대법원장의 사실 인정과 사과가 있었지만 잇따른 고발과 정치권 공세로 막다른 코너에 몰렸다.
대검찰청에는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이 잇따라 제출됐고, 국민의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은 5일 대법원에서 김 대법원장을 만나 사퇴를 촉구했다.
임성근 판사의 동기인사법연수원 17기 법조인 140여 명은 5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탄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17기는 총 300명이다. 한 기수 절반에 가까운 법조계 인사들이 여권의 눈치를 보는 김 대법원장에게 반발해 들고 일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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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미 형사재판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행위에 대하여, 범여권 국회의원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선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한 것"이라며 "사법부 수장으로서 누구보다 사법부 독립을 수호해야 함에도 정치권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여 소속 법관이 부당한 정치적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 심지어 일국의 대법원장으로서 임성근 판사와의 대화 내용을 부인하는 거짓말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시선은 싸늘하다. 법원 외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이번 거짓 해명에 대해 '정치적 목적'이라며 자신의 편향된 입장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크다. 법원 내부는 더 심각하다. 법원의 권위를 실추시켰고 다수의 법관으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는 비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6일 본보 취재에 "임성근 판사 행위는 잘못된 것 맞더라도 그 심판은 재판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잘못이 있더라도 그 잘못에 비해 탄핵은 지나치고 '법관 길들이기'라는 정치적 목적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법관들의 우려가 크다"며 "진실공방이 여러차례 벌어졌지만 대법원장은 거짓으로 일관하거나 침묵했다. 법원 구성원들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비겁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각에서는 대법원장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완전한 사죄를 하고, 직접 자신의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9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발언을 자신이 기억 못한다는 추가 해명도 거짓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 정도까지 대법원장 권위가 실추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참담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또다른 현직 판사도 이날 본보 취재에 "그동안 헌정사에서 청와대나 국회가 사법부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외압이 일어나면 수차례 사법파동이 일어났다"며 "1988년에는 전국의 소장 판사 335명이 전두환 정권 사법부의 김용철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으로 사법부 개혁을 바라는 법관들의 건의문이 제출되자 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은 전격 퇴진했다"며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도 마찬가지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터지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고 일선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따르면, 정욱도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4일 "탄핵이 논의되는 중 사직 수리로써 탄핵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 오히려 직무상 의무나 정치적 중립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가 다"는 글을 올렸고,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5일 "법관직에서 나가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라며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헌법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김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인은 본보 취재에 "우스개소리지만 이번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물러나선 안된다는 얘기도 있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퇴하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6년의 대법원장을 또 임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더 최악이라는 비판이다. 김명수 보다 더한 사람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나온 조크"라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비판 일색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김 대법원장은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법조계 일각의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나 여당 입장에서 내칠 필요도 없고 1년 3개월 채 남지 않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사법부 장악을 위해 꼭 필요한 카드라는 뒷얘기까지 나온다.
김 대법원장이 실추된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 수호에 나설지가 관건이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아직 2년 7개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