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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교수 |
경제 혹은 사회복지정책과 달리 미디어정책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사업자간 혹은 정치권 갈등으로 비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미디어 관련 쟁점들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미디어들이 곧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미디어 정책들이 미디어사업자들의 자사 이익에 함몰된 여론조성으로 합리적 논의구조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700Mhz 주파수 논쟁’도 그런 경우다. 많은 시청자들은 올 한해동안 지상파방송 뉴스 시간에 자주 보도되었던 700MHz 관련 뉴스들을 보면서 생뚱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저게 도대체 뭔데 툭하면 뉴스로 나오는거야?’라는 의문을 한번쯤 해 봤을지도 모르겠다. 또 나와 별로 상관없는 일 같은데, 방송사들이 자기들이 그 주파수를 꼭 써야 한다고 강변하는 이유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했을 것이다.
700Mhz 주파수는 대부분 나라들이 오랫동안 방송용 주파수로 사용해왔던 대역이다. 이 주파수대역은 도달거리가 길고 기지국이나 안테나 설비가 적게 들어 이른바 ‘황금주파수 대역’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런데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정부는 기존에 아날로그 지상파방송에서 사용하던 698 ~ 806Mhz 주파수를 회수하게 된다.
2008년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회수되는 주파수는 통신·방송용으로 지정하지 않고 경매를 통해 재배치 활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반면에 지상파방송사들은 이 주파수는 방송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속내는 이 주파수를 반환하지 않고 디지털전환 이후에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2012년 초에 <광개토플랜 1.0>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12월 1일 20Mhz(728~748Mhz)를 경매를 통해 이동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하였다. 그리고 2013년 12월에 기존 계획을 보완한 <광개토2.0플랜>까지 발표하였다. 그러자 2014년들어 지상파방송사들은 700Mhz대 주파수는 재난방송 같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와 지상파방송 UHD 실험방송용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이후 7월에 이 중에 20Mhz(718~728Mhz, 773~783Khz)를 재난 대비 통신망용으로 서둘러 지정하게 되고 그 결과 지상파방송사들이 요구한 UHD실험방송용 주파수가 절대 부족하게 된다. 즉, 이미 배정한 이동통신용 주파수와 재난망용 주파수를 제외하면 남은 주파수는 48Mhz에 불과하고, 여기에 보호대역을 빼면 35Mhz만 남게 된다.
때문에 지상파4사가 UHD 실험방송으로 요구한 60Mhz에 턱없이 모자라게 된다. 때문에 지상파방송사들의 집요한 요구에 갈팡질팡하던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UHD실험방송에 다른 주파수를 이용하게 할 수도 있다는 입장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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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2014년 후반들어 지상파방송사들은 ‘무료보편서비스를 위한 공적 주파수 확보’를 명분을 내세우게 된다. 무료보편서비스 논리는 지상파방송사들이 기존 주파수를 반환하지 않고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 주장은 여·야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강하게 제기되면서 정치권과 정부간 갈등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주파수 배분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존 계획을 고수한다는 입장이고 정치권은 계획을 전면 수정하든지 아니면 별도의 지상파UHD 주파수대역을 확보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갈등은 2015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무료보편 서비스라는 공익성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무료보편서비스라고 하지만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가 전체 가구의 6.9%에 불과한 상태에서 무료서비스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케이블TV를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지상파방송사들이 700Mhz 주파수를 이용해 복수의 채널을 직접 운영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미 허용하기로 한 지상파다채널방송(MMS)과 함께 지상파방송사들의 멀티플렉스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유료방송에서의 지상파방송 지배력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700MHz 주파수 재분배 갈등은 지상파방송사들이 기존 주파수를 그대로 고수하려는 의지가 정부나 다른 사업자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벌어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방송용이든 통신용이든 주파수는 사업자들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고, 사업자들은 이를 수탁 받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업 역시 방송사업권 취득 후 정부가 거기에 필요한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는 무선국 면허를 부여하는 형태다. 그런데 지금의 갈등구조는 주파수가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사업자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포장하면서 기득권을 주장해왔던 한국 방송계의 고질적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통신 구별이 거의 사라지고 있고 실제 사업자구도나 이용자들의 수용행태는 이런 낡은 틀을 이미 벗어나 있다. 그런데 일부 사업자들과 정치권은 이미 용도폐기된 방송·통신 영역논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짜증나는 700Mhz 주파수 재분배 논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도 불구하고 마치 갈라파고스 섬처럼 진화를 멈춘 한국 방송계와 정치권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