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갈팔질팡 헐값 처분, 홍기택회장들어 '접시' 깨기 기피

산업은행이 기어이 동부그룹을 해체시켰다. 지난 20여년 이상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동부그룹에 대해 편향적인 구조조정의혹만 남겼다. 동부해체 과정에서 산은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한 게 아니라 선제적 채권회수에 급급했다.

동부건설은 을미년 첫날 법정관리 신청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극심한 어려움을 뜷고 심기일전하려던 재계의 2015년 새해 분위기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건설업계엔 추가 부도설이 난무하고 있다. 동부건설의 수천개 협력업체도 줄도산의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동부가 짓고 있는 7000여채 주택도 제대로 지어질 지 불투명해졌다. 동부건설에 투자한 700여명의 개인투자자들도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됐다. 동부건설이 긴급히 요청한 1000억원에 대한 지원을 거절한 것이 결정타였다.

김준기회장과 대주주 일가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다 집어넣었다. 그룹차원에선 지원여력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동부건설은 보유자산을 다 팔아 지난해 9월이후 만기도래한 1900억원의 회사채를 상환했다. 필사적인 빚갚기였다.

산은은 동부건설의 SOS에 대해 그룹과 김준기회장일가가 절반인 500억원을 먼저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 김회장과 그룹이 더 이상 도울 형편이 없는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동안 그룹과 김회장의 눈물겨운 자구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라면서 새롭게 뉴머니를 마련해 출자하라고 압박했다. 동부를 회생시키겠다는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

동부제철에 대한 매각도 갈팡질팡했다. 게도 구럭도 다 놓쳤다. 동부측은 동부제철 인천냉연공장의 경우 개별매각을 하면 1조원가량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업체에서 인수타진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산은도 처음에는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매입한 후 매각대금을 일부 지급하기로 했다. 매각차액은 추후 정산하기로 했다. 당진발전소 매각가격도 4000억~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산은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인천냉연공장과 당진발전소를 패키지딜로 매각하겠다고 했다. 당진발전소(동부발전당진)는 포스코에 배타적 우선협상권을 부여했다. 포스코 권오준회장은 고민고민하다가 끝내 외면했다. 매각은 불발됐다.

당초 동부건설은 당진발전소의 공사규모 1조8000억원 중 1조원규모의 공사물량을 확보한 상태였다. 공사 착수와 함께 선수금 10%(1000억원)도 받을 수 있었다. 공사가 완료된 후에는 1000억원의 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산됐다.

   
▲ 산업은행의 동부그룹 구조조정은 철저히 실패했다. 선제적 구조조정은커녕 선제적 채권회수에만 급급했다. 매각타이밍을 놓쳐 헐값매각을 자초했다. 동부의 유동성위기를 부채질했다. 급기야 동부건설의 1000억원 자금지금 요청을 거절했다. 공시가격에 의한 자신실사라는 편향된 잣대로  김준기회장의 동부제철 경영권을 박탈했다. 동부건설은 을미년 첫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홍기택 산업은행회장이 2일 통합산업은행기를 흔들고 있다.

산은은 동부건설이 유동성위기에 몰리자 SK가스에게 2010억원에 서둘러 처분했다. 당초 추정가격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금액이었다. 산은은 지난해 동부건설의 당진발전소 지분(60%)을 담보로 190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브릿지론 방식이었다. 산은은 동부건설이 위기에 몰리자 브릿지론을 회수하기위해 당진발전소를 헐값에 처분한 것이다. 공사가 진행됐다면 받았을 1000억원의 선수금도 날렸다. 인천공장 매각작업도 실패했다. 산은은 급기야 동부제철 전체를 끌어안고 있다. 지금같은 철강 불경기에 언제 동부제철이 매각될 지 불투명하다. 결국 시간만 끌다가 국민세금만 낭비하는 꼴이다.

산은은 자산매각과 구조조정의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인 7개월을 허비했다. 매각차질의 책임은 동부에 전가했다. 김준기회장의 동부제철 경영권을 박탈하는 강수까지 줬다. 매각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애초 김회장 주장대로 개별 매각을 했다면 5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을 것이다. 유동성위기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룹이 해체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김회장의 경영권 박탈도 없었을 것이다.

산은은 동부제철에 대해 김회장의 지분을 없애버렸다. 대주주에 대해 100대 1의 감자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산은은 감자 후 530억원을 출자해 대주주가 됐다.

동부는 산은의 비협조와 외면으로 죽음의 터널로 갈 수밖에 없다. '라스트 리조트'였던 산은이 구명정을 보내지 않은 것.

산은은 동부 구조조정과정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편향된 행태를 보였다. 인천 냉연공장에 대한 자산실사 시 공시가격으로 평가한 것. 공시가격은 감정가나 장부가격에 비해 훨씬 낮다. 공시가로 산정된 인천공장은 자산가치가 마이너스로 나왔다. 이는 사실상 김준기회장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려는 심산이었다. 수십년간 온갖 역경을 거쳐서 키워낸 김회장에 대한 최소한의 경영권 보장이나 재산권 보장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의혹을 준다. 거래회사가 어려울 때 지원을 통해 윈-윈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동부해체과정을 복기하면 다른 그룹의 구조조정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산은은 STX와 금호아시아나의 매각을 위한 자산실사 땐 동부에 비해 후하게 쳐줬다. 장부가와 감정가로 자산을 평가했던 것. 이들 그룹엔 조단위 지원까지 했다. 유독 동부에 대해 야박하게 대했다.

산은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진행한 대기업 구조조정을 보면 실패의 연속이다. 금감원과 산은은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부채비율 200%가 넘는 동부 동양 한진해운 현대 동부 STX 등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했다. 부실이 확산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환부들을 도려내겠다고 했다. 의도와 취지는 좋았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철저하게 채권회수에만 급급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구조조정 대상 그룹 중 현재 현대그룹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공중분해되거나 다른 그룹에 합병됐다.

산은은 국책금융기관이다. 경제위기나 금융위기의 엄청난 파도가 밀려올 때 유동성위기를 겪는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책무를 갖고 있다. 실제로 산은은 외환위기 이후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라이머리 CBO 발행등으로 지원했다. 위기 시 기업들에게 산은이야말로 구명정을 보내주는 국책금융기관이었다.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산은이 달라졌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말로만 외칠 뿐이다. 정작 채권회수에만 연연하고 있다. 홍기택 회장 취임이후 산은이 '접시'를 깨려 하지 않는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산은의 기업구조조정은 매사 감사원 감사를 염두에 둔다고 기업관계자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감사원으로부터 문책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예 기피한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혁파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관료들이 감사원 문책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감사원도 최근 문책중심의 감사를 지양하겠다고 천명했다.

경기침체기 산은의 역할은 막중하다. 수십년간 거래를 유지해온 대기업들이 경영난과 자금난을 겪을 땐 구명정을 보내줘야 한다.  지금의 산은은 구명정을 내려보내지 않고 있다. 유동성위기 기업들은 차디찬 자금난의 바다에서 얼어 죽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이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