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은 2014년 11월 '누구나 참여하는' 시장경제칼럼대회를 연 바 있다. 회차 수로는 17번째의 대회로서, 시장경제와 관련된 모든 주제를 글감으로 삼아 젊은이들의 생각과 참여를 모으는 칼럼대회였다. 3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열띤 경쟁을 펼친 가운데 수상작 50여 편이 선정되었다. 참가자들 모두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는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시장경제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디어펜은 수상작 중 일부를 추려 게재한다. 아래 글은 정용승 미래한국 기자의 글이다. |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호로록”
“음...”
말젖차를 처음 마셔본 대학교 동기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물로 나도 포함해서. 사정은 이렇다.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들과의 조촐한 동창회가 만들어졌고, 그 중 한 명의 추천으로 인해 몽고음식점에 모이게 된 것이다.
추천을 했던 친구의 조금 늦는다는 연락을 받은 나머지 친구들은 처음 보는 음식들이 신기해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켰다. 그게 실수였다. 배도 고팠던 차라 이름만 보고 끌리는 음식 여러 개와 각자 말젖차를 주문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몽고음식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걔(추천한 친구) 오면 다 먹으라고 하자”
친구들은 아마도 ‘그 친구도 몽고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 친구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동시에 자리에 앉아 말젖차를 꿀꺽꿀꺽 마시며 한 마디 날렸다. “맛있지 않냐? 나 여기 자주와” 그 친구가 대학 생활 내내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고, 방학 때는 해외에서까지 자전거를 탄 ‘21세기 유목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 잊었던 것이다.
결국 배가 고팠던 우리는 허기를 가시는 정도의 음식만 해치우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 친구는 포만감을 느꼈음은 당연한 일이고. 음식점을 나가는 길에 한 친구가 “취향 독특 하네”라고 말하자 그 친구가 바로 맞받아쳤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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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정가제 시행은 소비자 권익 증진 및 착한 가격 정착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소비자 사이에서는 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해 결국 책값만 올라 가계부담이 늘고,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다. 시장경제 용어로 말해보자. ‘선택’이 존중받는 시대다. 소비자는 시장에서 자기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고르고 구입한다. 이런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위해 수많은 기업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개발한다. 몽고음식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에 몽고음식점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부분은 지금부터다.
수많은 기업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나 더 얻는다면 거친 경쟁을 뚫으며 자신들이 만들어 낸 ‘혁신’과 ‘신기술’이다. 이렇게 소비자의 취향이 존중받으며 시장이 커진다면 당연히 신기술과 혁신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이런 긍정적인 미래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수많은 규제를 만드는 정부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도서정가제가 그렇다. 이달 2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된 도서정가제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다 같이 싸게 사지 말아라’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18개월 이상 된 도서에는 적용하지 않던 것과는 달리, 21일 부터 국내 발행되는 모든 서적의 가격할인 한도가 15%로 제한되니 말이다.
문제는 책값의 통일로 인해 도서업체들 간의 경쟁이 사라질 위기라는 것이다. 경쟁이 사라진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순은 저렴한 도서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의 소멸이다. 소비자 취향에 맞는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
반대로 규제를 풀었다면, 모든 도서에 대해 할인율을 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규제가 완전히 사라져, 도서업체들이 자신들의 브랜드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할인율을 높여 싼 값의 도서를 장려할 예정이었다면, 이에 질세라 다른 브랜드는 싼 가격에 경품까지 얹어 고객을 유인할 계획이었다면 어땠을까.
이것을 소비자들만의 행복한 상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 대한민국의 행복한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가뜩이나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암울한 뉴스가 나오는 지금이다. 이 뉴스가 저렴한 가격 덕분에 책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덤으로 도서시장이 커져 일자리도 늘었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부는 어쩌면 행복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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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정가제 시행을 하루 앞둔 2013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대형서점에서 시행 전 할인을 알리는 안내표가 설치돼있다. /뉴시스 |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는 단통법이다. 이미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법 또한 도서정가제와 비슷하다. 그동안 이통사들이 이따금 보조금을 풀어 소비자들은 싼 값에 핸드폰을 살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으로 인해 보조금의 한도는 규제됐고 소비자들은 에누리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핸드폰 값을 모두 지불하고 새로운 핸드폰을 사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단통법 때문에 오히려 핸드폰을 새로 사려는 소비자들이 줄어 관련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는 놀랍지도 않은 규제의 당연한 결말이다. 비단 시장에서만의 규제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교육 부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피해를 입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생겼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31일 자사고 6개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자사고를 선택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교육을 받고자 했던 학생들은 취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됐고, ‘강요된 평균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미래의 노벨상 과학자를 놓치게 됐다고 하면 과장일까.
선택의 자유는 시장의 발전을 가져오고 인류를 더 좋은 문명으로 이끄는 기술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반대로 정부의 규제는 획일화 된 개인을 만들어내고 개인의 자유를 침범해 창의성은 물론이고 행복할 권리까지 앗아가는 형국을 만들어 낸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사실을 알고 규제를 만드는 것일까. 혹은 정부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취존’이 필요한 정부가 절실한 지금이다. /정용승 미래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