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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교수 |
우리 방송사에서 ‘통합방송법’의 역사는 깊다. 멀리 보면 1981년 신문법과 방송법을 통합해 만들었던 신군부의 ‘언론기본법’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법 제·개정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방송매체들이 등장하면서다. 그 시작은 1992년에 케이블TV 도입을 위한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 법은 케이블TV도입부터 2000년대 방송·통신 융합 논쟁까지 주무부처인 공보처(그 후 문화체육관광부)와 정보통신부 간 갈등의 기원이 되었다. 그 후 1994년에 위성방송 도입을 위한 방송법 개정이 추진되게 되고, 이때 기존 방송법에 없었던 허가·재허가 같은 보완 입법도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여·야, 정부 부처간 갈등 등으로 지지부진하다가, 김대중 정부에 와서 ‘방송개혁위원회’ 논의를 거쳐 모든 방송매체들을 아우르는 ‘통합방송법’이 탄생하게 된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도 위성DMB, 지상파DMB, IPTV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방송법 개정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특히 방송법은 기존 방송사업자들이 새로운 방송매체 진입을 저지하는 ‘구조적 진입장벽’ 수단이 되곤 했다. 그 이유는 우리 방송법이 모든 방송매체들은 법에 그 개념이 규정되어 있어야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아날로그식 규제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위성DMB는 2004년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어렵게 도입될 수 있었고, IPTV는 기존 방송사업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별도의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이하 IPTV법)’을 통해 우회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2008년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2010년 선언적 성격의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을 제정하고 사업법을 추진하였다. 그렇지만 당초 통합법 기본 틀로 고려했던 ‘수평적 규제체계’ 도입이 방송의 고유한 역무를 저해할 수 있다는 방송사업자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결국 현 정부 들어서 방송매체들만이 통합 규제하는 통합방송법으로 축소되어 버린 것이다.
당초 정부가 내세운 통합방송법 제정목표는 급증하고 있는 디지털 스마트미디어들을 방송규율체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논의과정에서 실시간 방송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방송 개념으로는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통합방송법은 유료방송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케이블TV, 위성방송 그리고 IPTV를 이른바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라는 명목으로 통합 규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즉, IPTV를 방송법 안에 포함시키는 지극히 협소한 법 개정안으로 축소되어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합방송법은 ‘유료방송합산규제’를 도입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되어버린 듯하다. 즉, 서로 다른 소유·겸영 규제를 받고 있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를 방송법 안에 동일서비스로 규정해 동일 규제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2012년 말 위성방송과 IPTV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kt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커지자 케이블TV와 경쟁 IPTV사들에 의해 처음 제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13년에는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한 사업자의 유료방송시장점유율을 33%로 제한’하는 ‘방송법’ ‘IPTV법’ 개정안이 여·야에서 각각 발의되게 된다. 이에 대해 사실상 이 규제의 유일한 피해자인 kt가 시청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반시장적 사전규제’라고 강하게 반대하면서 아직 국회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 당초 미래창조과학부는 ‘합산규제’는 국회입법결과를 보고 통합법에 포함시키겠다는 소극적 입장이었지만, 정부의 통합방송법 내용이 별게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도리어 여기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이러다보니 통합방송법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솔직히 몇 번의 토론회와 공청회 등에서는 통합방송법(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훨씬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막강한 지배력을 가진 지상파방송을 전혀 건드리진 않은 ‘절름발이 법’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수없이 지적되어왔던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 거버넌스, 재원구조 등에 대한 개선요구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통합방송법이라는 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당초 목표로 내세웠던 수평적 규제체계 도입이 무산되면서 OTT 같은 스마트매체들에 대한 규율방안이 전혀 없다는 것도 통합방송법의 실효성을 의심받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유료방송시장을 합리적으로 만들겠다고 하지만 지상파방송재전송댓가 같은 공정거래 관련 내용들이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합방송법은 결국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민원종합선물세트’가 되어 버렸다는 비아냥 소리를 듣고 있다. 때문에 야당은 별도의 통합방송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한마디로 전체 방송·통신서비스를 통합해 합리적으로 규율하겠다는 큰 그림은 사라지고 유료방송 그중에서도 합산규제 하나에만 목을 매는 전형적인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 버린 듯하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