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궁지에 몰렸다. 의사 면허 취소와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총파업을 불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위한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부터다.
국민 생명을 담보로 입법 흥정에 들어갔다는 1차적인 비난 여론은 물론이고, 의사 면허 취소와 관련한 법조계 이견과 협상전략에 대한 의료계 찬반 논쟁까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우선 의사 면허 취소와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법조계는 '무리 없는 법안'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9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 개정안에 따르면 실형을 받는 경우 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의 경우 기간 만료 후 2년까지 면허 재교부가 금지된다. 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허 재교부가 가능하고, 의료과실로 처벌받을 경우 면허가 취소되지 않도록 했다. 또한 개정안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면허를 발부받는 경우 이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기고 소급 적용이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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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좌측)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사진=(좌)연합뉴스,(우)더불어민주당 제공 |
의료분쟁을 여러차례 다루었고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로펌의 파트너변호사 이모 씨는 23일 본보 취재에 "의협이 내세우는 헌재 판례는 '의사에게 자율징계권을 줘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에 부족하다"며 "변호사의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도 내려달라고 해서 나온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당시 헌재는 변호사에 대해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여 그 독점적 지위가 법률사무 전반에 미친다고 규정했는데, 이것이 그대로 의사의 경우 변호사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힘들다"며 "헌재는 판례에서 변호사 업무의 높은 공공성과 윤리성, 국민 신뢰의 중요성을 고려해 결론 낸 것이지 의사 등 다른 전문직에 대한 지위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헌재의 헌법소원심판 판례 및 현행 법에 따르면, 감정평가사나 관세사 등 다른 전문직종 종사자에 대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결격사유로 정하는 것은 합헌"이라며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의협은 자율규제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울까"라고 반문하면서 "이번 법 개정안은 의료행위 중 업무상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는 예외로 두어서 의료진이 수술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초에 의료법은 지난 1973년부터 '범죄 구분 없이 금고 이상 형을 선고 받은 경우'를 면허최소 사유로 삼았지만 2000년 정부가 의약분업을 꾀하면서 이면합의 끝에 의료법을 개정하고 면허취소 범죄 범위를 형법상 보건의료 범죄 및 직무 범죄로 좁힌 것"이라며 "이번 법 개정은 일부 엄격하게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또한 '의도적이지 않은 교통사고 사망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는 대부분 벌금형"이라며 "실형이나 금고 이상 형을 받는 것은 무면허 운전 혹은 상대 운전자 폭행 등 매우 의도적이고 악질적인 사고일 경우 해당된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의협의 이번 논란에 대해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정부와의 협상에 나선 의협의 행태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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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1일 서울 중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열린 코로나 백신접종 의정공동위원회 2차회의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서울 대형병원 산부인과 전문의인 한모 씨는 이날 본보 취재에 "내부적으로 의협에 대한 반발이 크다"며 "애초부터 무조건적인 반대에 나선 것이 문제다. 특히 백신 접종 자체에 대해 협조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 컸다. 완전히 다른 사안인데 결부시켜서 역효과가 낫다. 스마트하지 않은 아스팔트식 선동으로는 입장을 관철하기 힘들다. 백신 효과를 정확히 따지고 안전성이 입증된 것에만 협조하겠다고 했다면 여론이 움직였을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에도 적용된다는 법 개정안"이라며 "의사라면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빨리 맞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단 백신이 감염증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전제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최대집 등 현 의협 집행부는 의사들 전반의 공감도 얻지 못했을 뿐더러 정치적 야욕도 드러낸 상태라 의사총파업을 강행한다고 해도 참여율이 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정부가 할 일은 아스트라제니카 같은 백신 말고 화이자 백신처럼 부작용 적고 효과가 좋은 백신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빨리 접종시키는 것"이라며 "의협은 제발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고 입법 흥정할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의협은 의료인의 자질 관리를 강화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직무와 무관한 사고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았다고 면허가 취소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처벌 사유를 지나칠 정도로 광범위하게 규정해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유사한 면허 취소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종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 상황이 타개될지 주목된다. 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빠르면 이달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