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나오고, 일본정부가 2019년 7월1일 한국기업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관계가 올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비록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라고는 하나 지난해 12월 한중일 정상회담이 화상으로도 개최되지 않았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취임 20여일이 되도록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방을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마침 일본기업의 후원을 받아 ‘미쓰비시 교수’로 불리는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칭한 논문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부른 일과 맞물렸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23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보편적 인권 문제라며 피해 재발 방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이러한 폭력의 희생자와 생존자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위스 제네바 주재 일본 대표부가 다음날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의) 연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양국 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비난과 비판을 자제할 것을 확인했다”면서 “일본은 이 합의에 따라 10억엔 지급을 포함, 약속한 모든 조처를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외교장관과 통화를 했지만 일본 장관과 통화를 못하고 있는 것처럼 강창일 주일 대사도 지난달 22일 부임 이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물론 모테기 외상도 면담하지 못했다. 강 대사는 당초 정해진 일정이 나흘씩 밀리면서 외무성 차관만 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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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오른쪽),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
한국에선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에 도착한지 2주 격리를 마친 끝에 26일 최종건 1차관만 면담했다. 신임 대사의 신임장 사본 제출 뒤 차관 접견이 관례라는 것이 외교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강 대사가 일본 외무상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보시 대사도 정 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서나 정 장관이 청문회 등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도 일본이 오히려 더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고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자 그 수위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국무부는 연일 한미일 3자 공조를 강조하면서 대북 접근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잘 알고 있는 일본정부가 한국에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최근 정부는 조 바이든 새 미국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기자회견에서 “강제집행의 방식으로 현금화된다든지 판결이 실현되는 방식은 한일 양국 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아베 정부에 이어 스가 정부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합의에 따라 한일 역사 문제가 해결됐다는 문재인정부의 발표가 없는 이상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자 정부는 ‘미국 중재’ 카드를 고민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일관계 개선에) 필요하다면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오는 3.1절 연설에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얼마나 피력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이어가면서 구체적인 징용배상판결 문제를 풀 해법을 먼저 제시할 경우 바이든 정부의 공조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스가 정부도 적절하게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여전히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스가 정부가 바이든 정부의 7월 도쿄올림픽 개최 지지 등을 얻기 위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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