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로운 한 해의 시작과 함께 자유경제원은 ‘도약’을 이야기하는 신년토론회를 개최했다. 6일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자유경제원은 <2015, 대한민국 어떻게 도약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자유주의·정체성·경제 세 영역의 바로세우기를 꾀했다. 전문가들의 여러 논의와 제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2015년 퇴보도 안주도 아닌 도약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등의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아래 글은 최공재 영화감독이 발표한 토론문이다. |
영화 국제시장으로 바라본 자유진영 문화산업의 미래
- 영화 ‘국제시장’은 과연 자유보수진영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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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공재 영화감독 |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도 하고, 문화산업의 시대라고도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삶을 즐기는 시대로 진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선진국 진입에 대한 기본조건은 이런 문화적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더군다나 조그만 땅덩어리에 인적 재산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고부가가치로서의 문화산업은 반드시 성취해 내야 할 21세기 新 성장산업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산업을 선도해야 할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게서 문화적 인식을 찾기는 꽤 어렵다. 극히 소수만이 문화의 대중적 파급력과 문화산업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국제시장’이 1월 1일 새해 들자마자 600만 명을 넘어서며 천만 관객 달성에 청신호를 켰다. 초반부터 시작된 좌파진영 평론가들의 무차별, 무개념 집단공격을 받으면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한국식 신파코드와 ‘아버지’라는 주제로 인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 영화를 기준으로 자유보수진영이 이제 영화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연일 자유우파진영 언론과 종편 등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연신 쏟아내지만 그걸 보는 본인은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속엔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왜 영화얘기에 영화가 없을까? 그건 그 동안 우파가 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계의 불문율인 ‘5% 법칙’은 우파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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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그 결과 영화 ‘국제시장’은 좌파 평론가들의 우려와는 달리 우파 영화가 아니……게 됐다. 일단 영화를 만든 윤제균 감독도, 영화를 본 본인도 이 영화가 우파영화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파진영 스스로 이념을 떠나 실제 했던 얘기라 말하고, 문재인 의원이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최초의 천만 관객 우파영화일 뻔했던 국제시장은 그냥 ‘아버지’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아버지 세대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뿐인 평범한 영화로 전락해 버렸다.
웃긴 건 그나마 이런 현상이 흥행으로 잘 이어져 다행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외에도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우파영화가 될 수 없는 태생적인 이유가 있다. 그간 자유보수진영은 문화에 대해 너무 소홀했으며, 아무런 투자나 행동도 하지 않았다. 우파영화가 나올 씨조차 뿌리지 않고, 싹이 틔길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반면, 좌파진영은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해 지금의 문화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렇게 거머쥔 문화계를 통한 대중적 파워는 김대중, 노무현 10년만에 문화계를 넘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그럼에도 우파는 문화를 외면했었다. 왜? 모르니까!
국제시장의 성공 이후 자유우파진영은 이제 문화가 얼마나 대중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국제시장의 진정한 미덕은 이 영화가 어른 세대에게 감사를 전하는 대중적인 우파영화가 아니라 우파진영에 문화의 힘이 뭐라는 것을 보여줬다는데 있다. 이제 자유우파진영도 문화를 말할 수 있는, 말해야 하는 시대를 이 영화가 열어준 것이다. 386세대가 투쟁수단으로서의 도구로 택한 ‘이념문화’의 쇠락이 시작되고 있고, 새로운 ‘문화산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절호의 기회가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왔고, 문화산업의 시대는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누가 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지배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분명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에 이정표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5년, 새롭게 태동되는 대한민국 자유문화(free culture)를 꽃피우는 원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다음의 세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충분히 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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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경제원이 6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2015년 대한민국 도약 어떻게 하나> 신년토론회의 전경 |
첫째, 양(量)의 시대를 넘어 질(質)의 시대로 가야 한다.
한때 온라인은 전부 좌파들의 천국이었다. 모든 사실은 무시되고 그들만의 주장이 진실이란 미명하에 대중들에게 무차별 전파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가? 페이스북을 통해 우파의 목소리가 전달되기 시작했고, 정치와 경제를 다루는 ‘정규재TV’를 비롯하여 북한문제를 다루는 ‘OTV’, 자유문화를 다루는 ‘이런TV’, 그 외에도 많은 동영상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면서 이젠 온라인상의 영상 콘텐츠 수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자유진영의 콘텐츠들이 좌파보다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질(Quality)’이다. ‘질(質)’의 문제는 비단 기술적 완성도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생방송 시스템이나 현장 중계 시스템 등의 기술적인 질도 중요하다.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우린 2014년 세월호 광풍을 일찌감치 차단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확실히 밀려버린 기술적 질의 후진성은 그것으로 절실하게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우파진영의 문제는 프로그램의 질 자체가 떨어진다는 것에 있다.
재미도 없고, 프로그램의 내용적 스펙트럼도 너무 부실하다. 우파는 정치와 경제라는 큰 틀에만 국한되어 있지만, 좌파는 실생활과 문화전반에 걸쳐 모든 곳에 포괄적으로 퍼져 있고,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형식으로 포장되어 있다. 거기에 비해 양만 많고 즐길 것 없는 우파 프로그램들은 당연히 대중의 외면으로 이어질 뿐이다. 기대했던 종편마저 경악할 정도로 조악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문화는 아예 다루지도 못하고 있다.
이 고질적인 ‘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음의 두 가지를 반드시 구현해야만 한다. 하나는 기술적인 부분을 보강해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자본의 투입이다. 여러 군데 흩어져 산재되어 있는 콘텐츠 제작자들과 거기에 투입되는 자금들을 규합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 종편도 있고, 인터넷 TV도 넘쳐나 이제 또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 양을 늘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선택과 집중, 한국판 자유진영의 ‘트랜스포머’ 콘텐츠 시스템이 필요한 시기다. 또 하나는 그 장비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를 수 있는 기술 인력과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구현할 전문 인력의 구축이다.
아마추어 콘텐츠 제작자들의 난립은 질적 저하의 근본 원인이고, 외부에서 인증된 인력의 수급은 더 많은 자금과 인력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종편방송에서 좌파인물들과 쓸모없는 전문가들이 난립하는 이유다. 지금 문화 콘텐츠와 관련한 대학의 졸업생들은 넘치고 넘쳐난다.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자유진영으로의 유입을 시도한다면 적은 규모의 자금으로 기본기는 갖춰진 기초 전문 인력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극소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장의 문화전문가들이 자유진영으로 오고 있다. 그들을 활용하자! 좌파 문화권력에 불만을 가진 그들의 잠재된 욕구는 분명 자유진영에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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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경제원이 6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2015년 대한민국 도약 어떻게 하나> 신년토론회에서 최공재 영화감독이 토론하고 있다. |
둘째, 예술의 시대에서 문화산업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예술가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시대, 이게 제정신인 시대인가예술가라 자칭하는 예술인들 스스로가 얼굴에 먹칠하는 재미있는 시대다. 창작 활동과 노동이 엄연히 다르듯, 예술과 문화산업은 엄연히 다르다. 예술은 특정 한 부분만을 가리키지만, 문화는 예술을 포함한 전반적인 부분을 다룬다. 문화의 발전은 지금까지 총 3단계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18세기까지의 초기 문화에선 소수의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수한 가치로서 ‘예술가(artist)’의 시대를 열었고, 중반에 들어서서는 일반계층과 폭넓게 접목해 ‘교양인(culturati)’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20세기들어 문화는 그저 즐기고 소비하는 시대를 넘어 개인들이 직접 작품에 참여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문화산업인(culturist)’의 시대로 변화를 시작했다. 문화발전의 중반, 교양인의 시대에만 해도 예술가들의 입지는 확고했다. 지배계층이나 일반계층 모두 그들의 예술을 소비하는 소비자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문화산업의 시작은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의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자유시장주의의 확장과도 큰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미국만의 국수주의를 버리고 세계인 모두를 감동시킬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할리우드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라도 문화를 즐기며 소비자(대중)가 문화산업의 주체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그런 할리우드의 배려에 대해 소비자는 그곳을 세계 최고의 영화시장으로 만들어 보답해줬다. 한국의 한류가 1년동안 버는 돈이 4조원, 할리우드 영화 한편이 버는 돈이 4조원이다. 한류라고 난리들 치지만 실상 한국에 수익을 내주는 구조는 별로 못 된다. 왜 그럴까.
일단 국내의 문화산업 시장은 문화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문화산업이 가장 활성화되어야 할 시기에 국가주도로 문화를 지원하고 문화인을 양성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상실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자생력을 상실한 그들은 국가에 기대야만 했고, 스스로 자유인으로서의 예술적 가치를 포기했다. 거기에 정치적으로 편협한 시선을 교육받은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 컨텐츠는 국내용으로 전락해 버리고, 문화산업은 미제국주의와 자유시장주의의 더러운 산물로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그렇게 한국의 문화인들 스스로가 과거의 문화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문화산업의 소비자(관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가감 없이 문화산업의 역동성을 받아 들였다. 노동조합이나 만들고 옛날 옛적 예술타령이나 하며 삽질하는 한국의 지고지순한 예술가들과는 달리 한국의 대중들은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자유로이 주인공으로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이젠 이 불완전한 한국의 문화산업시장과 그 엄청난 파괴력을 누가 가져가나 하는 것만 남아있다. 하지만, 좌파는 과거에 붙잡혀 헤매고 있고, 우파는 문화에 대해 아직 문외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잡을지는 몰라도 누가 잡아야 하는지 확실히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문화산업의 태동을 시작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이다.
자유우파진영이 이젠 문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미 백 년 전에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걱정되는 건, 이미 좌파는 과거로부터의 변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셋째, 독과점이 아닌 메이저(Major)의 시대로 변화해야 한다.
10년 전부터 본인이 스크린독과점 문제를 제시했을 때 좌파보다 우파와 더 많은 오해가 있었다. 대기업의 참여로 인한 문화산업의 확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를 제시한 것이었음에도 그걸 이해시키기는 매우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크린독과점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체제를 제거한 문화산업 독과점이 문제였다.
기획과 제작, 유통을 모두 거머쥔 거대기업 CJ로 인해 현장문화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양으로만 변화해야 했고, 스크린쿼터는 그런 독과점을 지켜주는 엉뚱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다른 곳은 몰라도 최소한 문화산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기존 사업구조는 달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누차 말해 왔던 것이 독과점이 아닌 할리우드식 ‘메이저(major)’시스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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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시스템 도표, <한국에 메이저(Major)는 없다> |
할리우드는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월트 디즈니, 워너 브러더스, 20세기 폭스 등의 7개의 메이저가 있고, 그들은 미라맥스나 뉴라인시네마, 뉴리젠시 같은 마이너(minor) 계열사를 키운다. 그리고, 다시 그 마이너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로 유명한 트러블메이커나, 픽쳐하우스 같은 인디펜던트(independent) 영화사들을 키우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은 현장문화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할만이 아니라 메이저의 안정성을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해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일례로, 뉴질랜드 구석의 ‘피터 잭슨’이란 감독을 데려와 이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감독으로 올려놓았고, 피터 잭슨은 마이너 영화사였던 뉴라인시네마에서 ‘반지의 제왕’을 성공시키며 당시 망해가던 메이저 모회사인 워너 브러더스를 살려 놓았으며, 뉴라인시네마라는 마이너 영화사마저 메이저로 등극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듯 메이저 시스템은 마이너와 인디펜던트 계열사들의 합리적인 경쟁구조를 통해 발굴된 안정적인 인력들을 확보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영화산업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문화산업시장은 아직도 CJ의, CJ를 위한, CJ에 의해서만 돌아가고 있다. 이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기업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문화산업 시장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기업의 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대기업밖에 없고, 그렇기에 CJ에 의해 왜곡 되어버린 독과점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롯데도 진입해 있지만 파급력은 CJ보다 훨씬 약하고, 그곳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본인은 더 많은 대기업들이 바로 이 문화시장에 진출해 경쟁을 해주길 바란다. 그저 진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독과점 형태가 아닌 메이저 시스템의 모습으로 나타나주길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좌우 이념을 떠나 모든 문화인들이 원하는 것이고, 그래야 관객(소비자)들의 볼 권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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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CJ E&M, 한국 문화산업시장은 아직도 CJ의, CJ를 위한, CJ에 의해서만 돌아간다. /사진캡처=CJ E&M 홈페이지 |
그리고 무엇보다도 98% 이상 한쪽으로 잠식당한 한국의 문화계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좌파가 20년을 넘게 준비해서 장악한 현재의 문화계를 정상적으로 돌려 놓기 위해 그들과 똑같이 하거나 굳이 싸울 필요는 이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자유진영에는 이제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문화산업’이라는 화두가 던져졌고, 그걸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 한국 문화산업 시장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위의 세가지 조건들이 2015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는 지난한 시간과 꾸준한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화산업을 이해하기 위한 꾸준한 교육과 그로 인한 인력 발굴의 노력도 겸해져야만 한다. 우파 역시 제2, 제3의 ‘국제시장’ 탄생을 위해서라도 이제 문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한다.
당장 내년에 국제시장을 이어줄 영화가 없고, 올해 개봉할 ‘연평해전’조차도 처음으로 우파에서 나서 펀딩으로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우파의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에둘러서 국제시장이 우파영화가 아니라고 핑계 댈 필요 없이 내년에는 떳떳하게 이것이 자유우파진영의 영화라 말하는 작품을 만났으면 싶다.
이젠 우파도 문화를 통해 즐겁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2015년! 대한민국의 자유문화와 문화산업 시장의 날개를 다는 첫 시작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공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