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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궁금했던 이유는 작년의 선례(先例) 때문이다. 2014년의 유행어 “통일은 대박이다”가 바로 작년 1월6일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의도한 바대로’ 유행어를 만들어낸 특이 케이스였다.
새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힌 올해의 회견문에는 작년과 같은 ‘돌출’은 없었다. 오히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볼만 했다. 비선 실세 논란, 청와대 조직개편, 새누리당-청와대 간의 갈등 문제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하겠다는 의지가 읽혔기 때문이다.
90분간 정치, 세계경제, 국제, 안보, 통일을 비롯한 모든 이슈를 커버했다 보니 ‘문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적극적인 언급은 다소 묻힌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레벨로 문화산업에 대해 언급했다. 회견문을 보자.
“창조경제에 끊임없이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핵심 콘텐츠이자, 새로운 경제영토를 개척하는 첨병은 바로 ‘문화’입니다. (중략) 정부는 창조 문화가 이끄는 미래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먼저,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으로 무형의 자산을 가치화시켜 문화 콘텐츠 산업을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키워나가겠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장점인 디지털 파워가 결합되면 전 세계 디지털 소비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신 디지털 문화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 콘텐츠와 디지털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공급과 수요가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새로운 시장도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인트는 둘로 나뉜다. 첫째, 문화와 창조경제의 연관성이다. 21세기에 와서는 문화산업이야말로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와 시너지를 낸다는 인식이다. 일찍이 취임사와 신년사 등에서 문화 산업에 대해 이렇게 반복적으로 강조를 한 대통령은 없었다.
둘째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 부분이다. 이 표현 직후에 ‘디지털 파워 결합’ ‘새로운 플랫폼 구축’ 등의 표현이 뒤따른 것으로 보아 인터넷 환경을 활용한 문화산업 융성을 도모하겠다는 의도를 추측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두 포인트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촉발시킨다. 우선 대통령이 문화산업을 이렇게까지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수출액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연평균 22.5%씩 성장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빠르다. 문화산업을 빼놓고는 미래를 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만 문화산업 융성이 과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으로 도모될 수 있는 것인지는 따로 생각할 문제다. 한국 문화산업의 경우 잠재력이 높은 반면 내수시장이 영세한 까닭에 정부는 쉽사리 ‘보이는 손’을 사용할 유혹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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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취임 후 두 번째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정부 지원과 육성’의 선례를 살피고 있노라면 차라리 ‘침묵’이 최선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북 논란으로 강제 출국된 신은미의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와 같은 책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일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나라 만들기’에 대한 좌우 양측의 논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마저도 북핵 두둔에 가족제도를 부정하는 인사가 앉아있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볼륨을 키우기 위한 지원과 육성에만 몰입할 경우 ‘정부가 反정부를 지원하는’ 아이러니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굳이 시장경제 원리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문화산업 지원‧육성에 세심해야 할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례적인 언급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대중음악, 영화‧드라마, 문화산업 관련 기업들의 주가에는 별 영향이 없다. 어쩌면 시장은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정부의 지원과 육성으로 뭔가 얘기가 풀린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말이다.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다.
정부는 차라리 ‘중독’이라는 연관 검색어를 끝내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임 산업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올 한 해의 노력을 투입해 보면 어떨까. 문화 분야 수출액 1위인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마저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규제가 들어있다면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뿐이다.
한국형 유튜브 같은 플랫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 스스로가 나날이 발전하는 문화산업의 에너지를 느슨하게 흘려보내는 ‘무난한 플랫폼’이 되는 일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