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김일성‧김정일 시대 구호였던 ‘고난의 행군’을 소환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1월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 이후 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 3월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 4월 당 세포비서대회 개최까지 연속 회의를 개최해 주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주민 5~30명으로 구성되는 최말단 조직인 당세포의 책임자들을 모아놓고 사상교육을 강조하며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으로 결심했다”고 밝혀 어려운 경제 상황을 자력갱생으로 돌파하기 위해 대외 관계에 좌우되지 않을 것을 밝힌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폐회사에서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대북제재를 놓고 비핵화 협상을 벌이거나 북미대화에 도움을 받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란 다짐인 셈이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겨울 항일운동을 하던 김일성 주석이 일본군을 피해 추위와 굶주림 속에 100일간 행군한 것을 일컫는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 정권 초기인 1995~1998년 300만명 이상의 주민이 아사한 대기근 시기도 ‘고난의 행군’으로 불렀다.
김정은 정권 들어 세기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됐지만 지난해 북한은 ‘3중고’를 겪었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10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중국과 무역 단절 상태도 1년이 넘었다. 수해 피해까지 극심했다.
|
|
|
▲ 북한이 지난 6일부터 진행한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대회가 마무리되고,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세포비서들이 대회장인 평양체육관을 떠나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2021.4.9./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 위원장은 이번에 ‘가난하고 고생스럽다’는 의미의 ‘간고한’이란 말에 ‘더욱’이란 부사까지 붙여서 주민들의 각오를 다잡았다. 여기에 사상 통제를 강력히 주문하면서 청년들의 옷차림, 머리단장까지 통제해야 지적하며 ‘인간 개조 사업’까지 언급했다.
지금 북한의 청년인 20~40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세대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제가 붕괴되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장마당 세대’로 다른 세대보다 더 현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을 수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고난의 행군’ 연설은 남북 간 교류, 북미 비핵화 협상은 물론 혈맹국인 중국의 영향까지 받지 않으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정권이 북한사회를 더욱 폐쇄적으로 몰아가면서 체제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이어서 퇴행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당의 기층조직인 초급당과 당세포를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당생활조직과 지도를 당사업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 재확인됐다”며 “당세포들에게 주어진 10가지 중요과업과 세포비서들이 지녀야 할 12가지 품성을 제시한 것은 북한이 현재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이에 따른 민심동요 막기 등에 총력을 쏟고 있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이어 “다만 이런 사업들을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고 친인민적이고 친현실적으로 하라고 강조한 것을 볼 때 실효성도 따져본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에 이어 열린 이번 당세포비서대회 결과를 볼 때 향후 북한은 제재, 코로나19, 대미관계 등과 무관하게 내부 결속, 일심단결, 집단주의 일변도 방향성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지 않으면 북한의 대내외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치거나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