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생태계 혁명…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씨조차 뿌리지 못해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T와 금융이 융합된 ‘핀테크(Fintech) 혁명’이 화두이다. 핀테크는 Financial Technology의 약어로서 인터넷, 모바일 기반의 플랫폼을 활용한 대안적 금융 서비스를 총칭한다. 기존의 금융회사들도 IT를 보충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송금이 그와 같은 사례이다.

그러나 핀테크는 IT 기업들이 주도하여 자금 결제와 이체부터 자산 관리와 투자 중개업에 이르기까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미 잘 알려진 구글월렛, 애플페이, 알리페이 등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핀테크의 일부분일 뿐이다.

핀테크는 가장 보수적인 산업에 속하는 금융 생태계의 기저를 흔들고 있다. 1999년 중국에서 생겨나 세계적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도약한 알리바바의 IT 금융 각 분야의 진출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4년에 앞서 언급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를 설립했고, 2007년에는 온라인 쇼핑몰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대출업을 하는 알리바바 파이낸셜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2013년에는 투자(위어바오), 보험(중안 온라인 보험) 업무를 추가하고, 작년에는 인터넷 전문은행 허가를 취득하였다. 이처럼 알리바바 그룹은 IT 영역에서 금융 산업 풀 라인을 갖추고 IT 금융 혁신을 주도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 IT 강국이라 하면서도 IT 금융기업은 내로라할만한 게 없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전혀 없고, 핀테크는 이제 시작하는 중이다.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전문은행이 나타났고, 미국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총자산이 전체 상업은행의 3.3%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취임 후 두 번째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 3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한국은 아예 씨조차 뿌리지 못하였다. 씨를 뿌리려는 시도는 있었다. 2001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허용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비금융주력자의 금융업 참여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규제에 막혀 무산되었다. 만약에 알리바바도 한국에서였다면 IT 금융기업으로의 도약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산업자본이 문어발식 금융업 진출한다고 시민단체로부터 맹폭을 당하고 창업자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열린 경제 환경에서 그 어떤 나라도 세계적인 핀테크 혁명을 비껴갈 수는 없다. 한국은 하드웨어 인프라를 잘 갖추고도 구태의연한 제도와 정책 때문에 늦어도 한참 늦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년도 신년사에서 핀테크 혁명은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시대적 흐름이자, 한국 금융의 미래를 위한 당위적 과제라고 강조하였다.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크지만 올바른 지적이다. 정부가 핀테크 혁신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도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잘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지난 두 차례의 시도와 좌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IT 금융 혁신은 출발이 한참 늦은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금산분리의 제도와 규제부터 혁파해야 한다. 금산분리 이야기만 나오면 무슨 흑마법의 주문인양 규제당국도 관련 기업도 모두 손사래를 치고는 한다. 그러나 알리바바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의 인터넷 전문은행과 FIN TECH 선두주자들의 대부분은 제조업 기반 회사 또는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시작하였다.

미국의 인터넷 전문은행 1위 Charles Schwab Bank는 증권사, 2위 Ally Bank는 제조업체(GM)의 자회사들이다.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우려 탓인지, 진입규제 온실 탓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은행이 핀테크 혁명을 주도한 사례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나라 선행 사례를 봐도 산업자본의 핀테크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를 깨트리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핀테크 혁명도, 금융 산업의 미래도 없다.

출발은 늦고 규제 장벽은 높다보니 조급증이 생길 법하다. 금융을 주관하는 부처의 입장에서는 법률 개정을 수반하는 복잡하고 힘이 드는 제도 개혁보다는 행정부 차원의 정책을 통해 먼저 인터넷 전문업체를 출범시키고 핀테크 혁명의 불씨를 지피려는 유혹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 일단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편법은 이제 통하지도 않는다.

관련 부처의 인터넷 전문업체 설립 권유에 IT 기업들이 난색을 표명했다는 최근의 언론보도만 해도 그렇다. 정부의 권유에 ‘관심이 있지만 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달려들었다가 금산분리를 건드린다고 역풍을 맞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는 게 IT 업계의 반응이라 한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정책은 또 다른 파도가 몰려오면 스러지는 모래성과 같음을 기업도, 시장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부가 핀테크 발 금융혁신을 진정으로 의도한다면 정책이 아닌 게임규칙의 변화, 즉 제도 개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금산분리 규제를 없애고, 금융실명제법상 비대면 본인인증금지, 금융기관들의 공인인증서 사용 강제 내용도 완화 또는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와 규제를 혁파하되 그 어떤 명분으로든 정부가 특정 사업자를 염두에 두고 정책적으로 지원·보호하는 정책은 禁物이다. 여럿이 경쟁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시행착오도 발생하겠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시장과정이다.

경쟁적 진입의 문턱을 없애는 것은 IT 금융이 발전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진입규제의 혁파에 못지않게 규제의 일관성 및 예측성을 높이는 방안도 보강해야 한다. 지금의 금융 산업을 보면, 규제당국의 지나친 규제와 예측하기 어려운 잦은 간섭 때문에 선제적 대응 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IT 금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러한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금산분리 규제철폐에도 불구하고 창의적,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IT 금융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핀테크 발 금융 혁신을 이루려면 진입규제 개선과 함께 규제집행의 일관성과 예측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