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광역단체 촉구에도 '난관'…지역·단지별 '형평성 논란' 가장 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올해 전국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국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은 19.08% 뛰었고 이에 공시가 이의 신청이 4만여 건으로 4년 전보다 30배 증가했다. 이의 신청을 해도 (지난해 기준) 0.2%만 받아들여진다.

공시가격은 노인기초연금·건강보험 피부양자 결정·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63개 행정 지표로 활용된다. 공시가격이 뛰면 그에 따른 국민의 조세 부담이 가중된다.

당장 국민의힘 소속 5개 광역단체의 시장·도지사들은 올해 공시가격을 전년도 수준으로 동결해야 함은 물론이고, 결정권한 자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결정권한은 국토교통부 장관 소관으로 중앙 정부가 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결단이 필요한 사항이다.

지난 18일 이들은 건의문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올해 공시가격 전년도 수준 동결을 비롯해 가격조사·산정 보고서를 지자체에 제공할 것, 감사원의 공시가격 조사, 결정 권한의 지자체 이양을 촉구했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도 부동산 민심을 잡기 위해 지난 19일 부동산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 사진은 4월 18일 서울시청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공동 논의'를 갖기 전 사진촬영 포즈를 취한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 왼쪽부터 원희룡 제주지사, 박형준 부산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사진=서울시 제공
문제는 결정권한을 실제 이양하려면 여러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공시가격 산정 과정이 부실하다. 공정성·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인데, 여기서 바로 '형평성' 논란이 빚어진다. 국토부가 지금처럼 전권을 휘두르든, 각 지자체가 결정하든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가격 제도는 2005년 도입됐다. 16년째 가격 산정의 투명성, 신뢰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2019년도 개별 공시가격을 분석해 144만 건의 오류를 찾아낼 정도다.

가령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의 인상률도 차이가 크고,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의 인상률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을 정도다.

특히 지자체로 결정권한을 이양해서 각 지자체가 공시가격을 정할 경우, 시세가 비슷한 아파트 공시가격이 지역별로 천차만별로 잡힐 가능성이 있다. 이는 건강보험 및 기초연금 등 63개 행정 지표 산정에 영향을 줘서 형평성 우려가 커질 수 있다.

또다른 변수는 각 지자체의 비용 부담과 업무 가중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감정평가사 인건비 등을 포함해 연간 공시가격 산정 예산은 250억 원이다. 덩치가 큰 광역단체들 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무량 가중은 더 크다. 어차피 실제 공시가격 산정을 위한 조사는 공무원이 아니라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주관하고 검수하는 지자체 업무량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선출직 지자체장들이 다음 선거를 의식해 공시가격 산정에서 포퓰리즘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관계자는 22일 본보 취재에 "각 지자체장에게 공시가격 산정 권한이 주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며 "경쟁적으로 공시가를 지역민들 구미에 들도록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재선을 노리는 지자체장이 대부분이지만 3선까지 해서 더 이상 표심을 바라지 않는 단체장이 있을 수도 있다"며 "가격 산정을 놓고 지역별, 단지별로 별의별 시비와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형평성 문제 말이다. 국토부가 하든 지자체가 하든 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그는 "진짜 국민을 위한 행정이라면 공시가격 산정 자체의 부조리함, 불합리성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자고 해야 한다"며 "이번에 여러 광역단체장들이 감사원에게 공시가격 과정을 조사하게 하자는 건의는 유효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 입장은 공시가격 동결 제안은 물론이고 공시가격 상승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지난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에 대해 질의를 받자 "공시가를 동결하는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정부로서는 증세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경감을 위해 세율 조정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은 이미 검토해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첫 출근한 노형욱 국토부 장관 내정자는 공시가격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전제로 "문제 제기한 자치단체와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결정권한 이양에 대해서도 국토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한을 넘겨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자치단체가 구체적인 공시가격 조사방법을 가져오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전 국민의 63개 지표를 좌우하는 공시가격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향후 정부가 각 지자체의 건의와 수십만 국민의 이의 제기에 대해 어떻게 대안을 마련하고 개선할지 주목된다. 피부에 와닿는 개선 보완이 이뤄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