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回航)'이 아니고, ‘땅콩후진(後進)’이 정확한 표현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재판에서의 최대 쟁점은 무단 회항과 항로변경, 그리고 공무집행 방해여부다.
19일 열린 재판에서 조전부사장의 변호인과 검찰간에 치열한 법리공방도 이들 3대 쟁점에 집중됐다.
좌파시민단체 참여연대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조 전부사장이 땅콩회항과 항로변경을 강요했다면서 중대범죄임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당시 뉴욕 JFK공항에서 출발하려던 A380은 엔진시동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 주기장(램프)에서 토우잉카에 의해 후진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A380은 고작 17미터 후진했다가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기종의 길이가 70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후진한 거리는 기수로부터 앞날개까지의 거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현아 사건은 그동안 여론의 선정적 보도와 경마식 취재경쟁이 극성을 부렸다. 실체적 진실과 사실 보도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들을 흥분시키는 ‘조현아 마녀사냥’이 대한민국 신문과 방송을 뒤덮였다.
조전부사장과 동생들인 조원태부사장, 조현민 전무도 도마에 올랐다. 이들의 과거 행적을 둘러싸고도 부정적인 글들이 언론에 도배질됐다. 그 불똥은 마침내 조양호회장에게도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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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사건의 본질은 땅콩회항이 아닌, 땅콩후진이다. 이게 실체적 진실이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공로상에서 항로가 변경되지 않았다. 공항 주기장에서 공항관제탑의 승인을 얻어서 17미터 후진했다. 이정도 사안이면 경고감 수준이다. 아무리 국민여론이 사납다고 해서 여론적 잣대가 사법적 잣대로 둔갑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조전부사장이 탄 A380기가 뉴욕JFK공항에서 후진했던 경로. |
급진 정당과 언론들은 조양호 일가의 퇴진과 축출까지 거론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근간인 대주주의 경영권까지 내놓으라는 식의 반시장적 보도가 창궐했다. 조현아 사건은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로 성장하고 번영한 대한민국이 대기업 문제만 터지면 반시장적이고 소유권을 부정하는 여론재판이 극성을 부리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조현아 사건을 차분히 복기하면, 단순 해프닝사건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언론의 취재경쟁이 난리를 치면서 중대범죄인 것처럼 부풀려졌다. 종편들은 하루종일 대한항공 전임직원들을 출연시켜 시시콜콜 대한항공을 난도질했다.
이제 그 숱한 논란을 불러온 땅콩회항이란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자. 조현아사건은 땅콩 회항사건이 아니다. 땅콩 후진사건이다. 언론이 무분별하게 땅콩회항으로 덫칠해서 자극적인 보도를 했을 뿐이다. 검찰과 판사도 언론의 잣대로 기소하고, 영장을 발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회항은 공로(空路), 즉 하늘에서 비행기를 되돌리는 행위다. 그런데 조현아 부사장이 탄 A380기는 뉴욕JFK공항에서 22초간 20미터를 이동했다. 당시 후진장면이 담긴 CCTV에선 기장으로부터 지상요원이 정지지시를 받을 때까지 17초가 걸렸다. 그 사이에 이동한 거리는 17미터에 불과했다.
더욱이 공항 관제탑의 승인을 받고 후진했다. 하등 문제가 될 게 없다. A380기는 활주로를 이륙해서 하늘에서 항로를 바꾸지 않은 것이다. 하늘에 뜬 채로 항로를 무단으로 변경했다면 그야말로 검찰이 주장한대로 중대범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건 하이재킹 수준의 범죄에 해당할 것이다.
CCTV에 찍힌 동영상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A380기는 연결통로와 분리돼 엔진시동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토우잉카에 의해 00시53분38초(뉴욕시간) 후진하기 시작했다. 주기장 안에서 23초간 17미를 후진한 후 54분01초에 정지했다. 이후 03분2초에 제자리에 멈춘 후 57분03초에 전진하여 57분 42초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검찰이 기소장에서 항로변경을 강조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과잉기소의 대표적 사례다.
항공 법규에서 항로라고 하는 개념은 항공로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고도 200m이상의 관제구역을 뜻한다. 뉴욕JFK공항의 경우 항공기가 주기장을 238m, 유도로(택시웨이)를 3200m 이동하여 활주로에 이르게 된다.
당시 ‘땅콩기종’은 활주로는 물론 유도로로 이동하기 전이었다. 더욱이 미국항공당국의 관리를 받는 주기장에서의 이동은 항로로 볼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운항(In Flight)과 항로(airway)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운항은 승객이 탑승한 후 항공기 문이 닫힌 때부터 문이 열릴 때까지를 의미한다. 반면 항로의 경우 주기장-유도로-활주로를 거쳐 항공기가 이륙해 고도 200m를 지난 시점부터 항로진입으로 간주한다.
조전부사장의 항공기 주기장 후진지시로 승객들이 큰 피해를 봤다는 기소도 논란이다. 후진으로 인해 뉴욕JFK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도착하는 데 예정시간보다 11분가량 늦었다. 이 정도 연착이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예정시간에 도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승객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은 셈이다. 비행기 연착은 비일비재하다. 항공기정비 문제, 공항사정, 날씨 등에 따라 30분에서 1시간, 수시간동안 벌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팩트들을 감안하면 검찰의 땅콩회항 논리는 항공관련 법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감이 없지 않다. 여론의 잣대를 그대로 따르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여론적 잣대를 사법적 잣대로 쓰는 것은 과잉기소, 과잉처벌로 흐를 수 있다.
조현아 사건은 그의 부적절한 행태로 인해 불거졌다. 여론도 매와 회초리를 심하게 들었다. 여론이 흥분했다고 해서 여론기소, 국민정서재판으로 변질돼선 안된다.
조현아부사장은 분명 잘못했다. 직원을 대상으로 폭언과 폭행시비를 불러온 것은 일탈된 리더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가 3세의 잘못된 리더십이 표면화된 사례였다. 직원들을 머슴으로 하대해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리더십은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추종과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없다.
오너가 자제일수록 겸손한 리더십으로 직원들과 소통해야 한다. 임직원과 합심해서 회사의 발전과 글로벌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합리적인 경영능력과 미래 비젼,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주주 투자자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봉건시대같은 강압적이고 전제적 리더십보다는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래야 직원들이 따르고, 회사발전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조전부사장은 구치소에서 그간의 행동과 행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직위도 내려놓았다. 경영에 복귀하는 것도 불투명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부친 조양호회장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줬다. 조회장은 두 번이나 머리숙여 사과했다. 그룹안에 소통위원회를 구성해서 잘못된 그룹문화를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전부사장의 행태가 문제가 된다고 해서, 그의 죄까지 언론적 잣대로 단죄하는 것은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땅콩회항은 땅콩후진이다. 항로변경(divert)이 아니다. 주기장 후진(ramp return)이 진실이다. 하늘에서 기장을 협박해서 고의로 항로를 변경한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항로의 개념에 공항의 지상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잉 유추해석이다.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조현아 사건과정에서 국민정서법이 극성을 부렸지만, 재판은 법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흥분하기 쉬운 여론적 잣대와 사법적 잣대는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미디어펜=이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