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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 교수 |
건국 이래 대한민국은 지상파방송의 절대 아성이었다. 그냥 아성이 아니라 누구도 도전은커녕 근접할 생각조차 못해봤던 철옹성이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은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다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를 목 놓아 불렀다. TV에 얼굴이라고 한번 비춰지게 되면 마치 엄청 출세라도 한 듯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지금도 그것은 여전해 보인다.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방송사에 근무한다는 것은 선망의 대상을 넘어 하나의 권력이었다. 방송사 카메라는 물론이고 방송국 로고가 달린 점퍼라도 입고 있으면 동네구멍가게 주인이 콩나물 한줌 더 주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한때는 KBS, MBC가 발부하는 차량스티커를 구하기 위해 온갖 로비가 난무했었다고 한다. 이처럼 방송과 방송인들은 엄청난 권력이었다. 물론 독과점 우산아래 경제적 풍요도 함께 누렸었다.
그 뿐 아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방송사에 근무하다는 것은 곧 정치권력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생각되었다. 때문에 방송사에 들어가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각 대학들이 방송사시험에 합격한 졸업생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고시합격자처럼. 하기는 ‘언론고시’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기는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도 그렇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나영석 같은 예능PD나 드라마 연출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은 넘쳐난다. 그렇지만 내용은 많이 다르다. 그 일이 부와 권력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즉자적 욕망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대자적 희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의 아성이 곧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조금 성급해 보이는 예측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동안 지상파방송은 시청자가 아니라 위에 있는 권력을 보고 돌진해왔다. 반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들이나 제작자들은 위의 권력이 아니라 아래 시청자들을 향해 나아가고 것이다. 한마디로 시청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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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미생'./TVN 캡처 |
지상파방송 아성이 붕괴될 조짐을 보여준 CJ E&M의 ‘꽃보다 ~ 시리즈’나 ‘삼시세끼’ 등의 예능프로그램들은 물론이고 ‘응답하라 ~ 시리즈’에 이은 ‘미생’은 급기야 지상파방송 최후의 보루 ‘드라마 산성’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비정상회담’을 필두로 한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의 징조도 만만치 않다. ‘3년안에 지상파방송을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했다는 뒷소문도 들린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낮시간, 종일방송을 ‘울며 겨자 먹기 식’ 땜방 재방송으로 채우던 지상파방송사들과는 완연히 다르다. 버려졌던 낮시간대 1% 시청자들을 잡아버린 종편 시사평론프로그램들도 욕만 할 일은 아니다. 하긴 요즘 지상파방송사들도 낮 시간에 정치평론가들 불러 같은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물론 지상파방송사들이 다른 채널들을 모방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 지상파방송의 아성은 만만치 않다. 낮아졌다고 하지만 평균 시청률은 여전히 높다. 시청률대비 광고단가는 훨씬 더 높다. 예전 같지 않지만 권력을 의식한 지상파방송에 대한 기업들의 편애도 여전하다. 특히 정치권은 지상파방송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다. 어쩌면 정치인들의 머리속에 방송은 시청자가 아니라 정치인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지상파방송사들은 고개는 여전히 위만 쳐다보고 있다. 시청자들을 모시면서 시장에서 약진하는 다른 매체들의 도전을 권력과 제도를 통해 막으려는 형국이다. 어떻게 해도 인터넷·모바일 매체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방송광고를 대폭 풀어주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700Mhz 주파수 문제를 놓고 여·야할 것 없이 지상파방송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 지상파방송과 정치권력간의 ‘철의 연대’는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하기는 한국 정치와 지상파방송 모두 과거를 먹고사는 ‘갈라파고스 섬’ 같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가 막아질 일이 아니다. 권력과 제도로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CJ E&M이 미얀마에서 50여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방송한다고 한다. 말로만이 아닌 진짜 한류 같아 보인다. 세계 여기저기서 걸그룹 콘서트나 하는 지상파방송사들의 한류콘텐츠들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슬로건이나 이벤트는 옛날식 방송패러다임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시장이나 시청자를 위해 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지상파방송사와 이에 도전하는 방송사들의 지향점을 보면 분명 역전가능성이 보인다. 시청자에게 소외된 방송은 절대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게 언제일까 하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어느 학자의 말대로 디지털혁명은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권력을 만들려는 도전세력과의 처절한 싸움판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