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세계 유일 대기업규제 제도... 글로벌 경쟁 약화 우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쿠팡의 동일인 지정이 불발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아예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앞서 제기돼, 동일인 확인 절차와 함께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현행 동일인 지정제도의 미비점을 이유로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도, 일부 전문가와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 대기업집단 지정에 대해선 역대 최대수를 지정하면서 강행했다.
|
|
|
▲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9일 세종정부청사에서 대기업집단 지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공정위 제공 |
이날 공정위는 자산총액이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을 근거로, 71개 기업집단을 5월 1일자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이 중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40개 집단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올해 지정된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 감소했고, 당기순이익 역시 9.4% 감소하는 등 경영실적 악화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최대 141개의 규제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최대 188개의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앞선 27일, 지금의 경제는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제도 도입 근거로 제시한 ‘경제력집중 억제’의 필요성이 사라졌고, 과도한 규제는 기업의 성장을 저해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도 전면폐지를 제안했다.
앞서, 한국은 지난 1986년 상위 대기업그룹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을 개정, 대기업집단을 지정했다. 상위 30대 기업집단이 전체 제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7년 34.1%에서 1982년 40.7%로 상승한 것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 결과, 출자총액 제한 및 상호출자 금지 등의 규제를 도입했으며, 일부 제도의 변화는 있었으나 대기업집단을 지정해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시각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기업집단 규제는 과거 폐쇄경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도로서, 개방경제로 변모한 오늘날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
전경련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공정거래법 제정 당시인 1980년대는 경제 개방도가 낮아, 일부 기업이 시장독점을 통해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1980년대 65.6%에서 2010년대 91.5%로 시장 개방도가 상승한 점을 들었다.
이에 더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가 전무했던 1980년대와는 달리, 현재는 57개국으로, 해외기업들 역시 언제든지 한국 시장에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국내기업의 시장독점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기존 방식에 따른 매출집중도 분석은 국내시장과 무관한 수출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내수시장에 대한 대기업집단의 영향력이 과장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들은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의 63.8%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으며, 상위 대기업집단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9년 전경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위 30대 그룹의 매출이 국내 기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37.4%에서 2019년 30.4%로 감소했고, 10대 그룹의 매출 비중도 같은 기간 28.8%에서 24.6%로 떨어졌다.
전경련은 현재 대기업집단이 과도한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 발굴을 위한 벤처기업, 유망 중소기업의 기업인수합병(M&A) 등을 저해하고 있으며, 각종 지원제도에서 배제되고 계열사의 지원도 일감몰아주기, 부당지원행위로 규제받아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동일인 지정제도 폐지, 대규모 기업집단 시책의 폐지가 다시 제기되고 있는데, 시장의 지배를 방지하고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억제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시대의 정신이고 정책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점점 개방화된 부분은 인정하지만, 개방화된 경제로 인해 경제력집중 완화·소유지배구조 개선·사익편취 및 일감몰아주기가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김 부위원장은 “공정위는 대규모 기업집단 시책과 동일인 지정제도는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경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쿠팡이 최근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것도 이러한 제도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우리 기업만 글로벌 경쟁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과거 일본 역시 대기업집단 지정과 유사한 규제가 있었으나, 경제활성화를 위한 독점금지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집단 규제를 사실상 폐지했으며, 1997년에 지주회사 보유 전면 허용, 2002년에 출자제한제도 폐지 및 금융회사의 사업회사 주식보유제한을 완화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