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롯데 자이언츠의 '영원한 4번타자' 이대호(39)가 깜짝 놀랄 장면을 연출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한 점 차 박빙의 승부에서 9회 1이닝 안방을 지키며 팀 승리 순간을 함께했다.

이대호는 8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원정경기 9회말 롯데 마지막 수비에서 포수 프로텍터와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 사진=롯데 자이언츠 SNS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날 경기는 롯데와 삼성이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며 접전을 벌였다. 6-8로 뒤지던 롯데가 9회초 삼성 마무리투수 오승환을 상대로 3점을 뽑아내 재역전을 했다. 그 과정에서 2사 1, 3루 득점 기회가 됐을 때 포수 강태율 타석에서 대타 이병규가 나섰다. 이병규의 적시타와 마차도의 역전타가 잇따라 나와 경기를 뒤집었던 것.

그런데 롯데의 9회말 포수 자리가 문제였다. 선발 포수 김준태가 8회초 안타를 치고나가 대주자로 교체됐고, 8회말부터는 백업포수 강태율이 투입됐다. 강태율이 9회초 다시 대타로 교체돼 엔트리에 두 명밖에 없었던 포수가 모두 소진됐다.

누군가 다른 야수가 포수를 맡아야했는데, 아무도 예상 못한 이대호가 마스크를 쓴 것이다. 이대호는 이날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1회 투런홈런을 날리는 등 5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9-8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투수 김원중은 '포수' 이대호와 호흡을 맞췄다. 김원중은 오재일과 박해민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 2루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마운드를 방문한 이대호의 격려를 받은 후 세 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세이브에 성공했다. 이대호는 김원중을 비롯해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 사진=롯데 자이언츠 SNS


허문회 감독은 당초 9회말 들면서 내야수 오윤석을 포수로 내세우려 했지만, 이대호가 포수로 나가겠다고 허 감독에게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호는 과거 경남고 시절 포수로 뛴 경험이 있는 반면 오윤석은 마스크를 써본 적이 없었다. 이대호는 후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팀이 어려울 때 쉽지 않은 일에 스스로 나선 것이다.

20년도 더 된 고교 시절 잠깐 포수를 했던 경험만 갖고, 팽팽한 승부처에서, 한국 나이로 40세가 된 이대호가 프로 데뷔 첫 포수로 출전한다는 것이 결코 보통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1사 2, 3루의 위기도 있었기 때문에 투구 하나만 뒤로 빠트려도 실점할 수 있는 살떨리는 상황이었다.

이대호니까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경기 후 이대호는 "내가 덩치가 크니까 투수를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김)원중이가 잘 막아줘서 기분 좋게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포수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소감을 전했다.

롯데 팬들은 이대호의 이날 포수 활약을 '야잘잘'이라고 표현했다. 역시 '야구 잘 하는 선수가 야구를 잘 한다'는 것을 4번타자 이대호가 보여줬다며 환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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