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의 골프탐험(42)- ‘10대 90의 법칙’이 골프에 주는 교훈
|
|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을 연구하던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영국 인구의 20%가 80%의 부를 소유하고 있고 20%의 소비자가 전체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20%의 근로자가 전체 근로의 80%의 일을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20대 80의 법칙’으로 더 알려진 ‘파레토법칙’이다. 빈부의 격차를 설명하는 데 원용된 이 법칙은 현대의 거의 모든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만능 잣대 구실을 하고 있다.
갈수록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요즘엔 ‘10대 90의 법칙’으로 심화되어가는 느낌이다. 경제 현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적용범위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협상의 마지막 10%의 시간에 90%의 합의가 이뤄진다든가,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감하면서 진지한 생각에 투자하는 10%의 시간이 목표와 꿈을 달성하는 90%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준다든가, 근무시간 중 효율성 있게 쓴 시간은 전체 근무시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등 ‘10대 90의 법칙’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최근엔 사고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사고나 위험 자체는 10%에 불과, 나머지 90%는 이후의 대응자세에 의해 결정된다는 ‘10대 90의 법칙’도 널리 공감을 얻고 있다.
가령 아침 밥상머리에서 초등학생 딸아이가 그릇을 깨뜨렸다고 치자. 이미 딸이 저지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작은 사건이다. 그러나 이 작은 사건 하나에 대응하는 방식이 어떤가에 따라 전혀 상반된 결과를, 그것도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먼저 일어나기 쉬운 간단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딸아이가 그릇을 깨뜨리자 아빠나 엄마가 얼굴을 찡그리며 딸애를 나무란다. “덤벙 거리니까 그릇이나 깨지?” “출근길에 재수는 다 달아갔네!” “얼른 치우지 않고 뭘 해?” “누굴 닮아서 저렇게 덤벙거릴까?” “누굴 닮아? 당신 닮아서 그렇지 뭐, 피를 속일 수 있겠어!”
|
|
|
▲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티샷을 날리면 빗맞거나 실수가 잦아 비거리가 반도 못 나간다. 골프에서는 크고 작은 실수나 부주의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삽화=방민준 |
엄마 아빠의 공세에 딸애는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밥 먹고 학교는 가야지?” 딸애는 계속 방안에서 운다. “방귀 뀐 놈이 큰소리 친다더니 그릇 깨트려놓고 지가 왜 울어?”
아빠는 벌레 씹은 얼굴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근한다.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과 어깨가 부딪히자 아침에 딸애가 그릇을 깬 사건을 떠올리며 얼굴을 찡그린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얼굴이 밝아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하지만 심드렁하게 받아넘기니 직원들도 슬슬 눈치를 본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아침 사건을 떠올리며 “걔는 누굴 닮아 신중하지 못할까”하고 정말 자신의 나쁜 점을 닮지나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편으론 딸애에게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후회도 한다.
딸아이는 그대로 등교해서 아침의 사건을 떠올리며 우울하고 불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낸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가족들이 모인 저녁에도 집안 분위기는 밝지 못하다. 딸애는 방안에 박혀 얼굴도 안비치고 엄마는 딸과의 신경전을 벌인 화풀이로 퇴근하는 아빠를 퉁명하게 맞는다.
이래저래 가족 모두 힘들고 괴로운 하루였다. 이런 기억은 하루에만 끝나지 않고 두고두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수면 위로 올라와 부정적인 상황을 깊게 할 것이다.
이번엔 그 반대의 케이스다. 딸애가 그릇을 깨고 놀라자 엄마 아빠가 이구동성으로 “아이구 다치지 않았어? 큰일 날 뻔 했네! 우리 딸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리 나와. 우리가 치울 게. 정말 다행이다.”
그리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세 식구가 아침을 맛있게 먹고 딸애는 학교로 아빠는 회사로 출근하다. 엄마는 혹시 깨진 그릇 조각이라도 남아 있을까봐 부엌 주변을 다시 한 번 깔끔히 정리하고 다른 집안일을 한다.
딸애는 평상시대로 학교에서 명랑하고 놀고 열심히 공부하고 아빠 역시 열심히 일한다. 저녁에 만난 세 가족은 환한 얼굴이다.
이 법칙을 골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모처럼 예정된 친구들과의 라운드를 생각하며 약간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골프코스에서 벌어질 온갖 상상을 떠올리며 신나게 달리는데 외제 승용차 한 대가 급차선 변경을 하면서 앞을 가로 막는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저 놈 미친 것 아냐?” 화를 낸다. 앞차의 속도가 느려 차선을 바꾸어 달린다.
그러나 어느 새 외제차가 앞을 가로 질러 막는다. 화가 치솟아 창문을 내리고 앞차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앞차는 태연하게 진로를 막으며 한참 주행하다 고속으로 내뺀다. 추격하려 하지만 성능이 따라주지 못한다. 가슴은 뛰고 혈압이 올라가고 체온도 올라간다. 흥분상태에 빠진 것이다.
시간을 조금 뒤돌려 보면 잠시 휴대폰을 검색하느라 정상 속도로 주행하지 못한 적이 있는데 그때 뒤따르던 차가 그 외제차였고 외제차 운전자는 분풀이로 앞차를 앞질러 진로를 막으며 보복을 했을 뿐이다.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한 채 골프장에 도착,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서 동반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고속도로에서의 사건을 얘기하며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첫 홀 티샷을 날렸으나 빗맞아 비거리가 반도 못 나갔다. 속으로 ‘아침부터 재수 없더니 첫 티샷부터 엉망이구먼, 오늘 라운드가 심상치 않을 것 같애.’ 중얼거린다.
라운드를 마쳤을 때 스코어는 최악이었고 친구들과도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집에 도착해서도 불쾌한 감정이 가시지 않아 아내로부터 “당신 오늘 라운드 별로였구나!”하는 소리를 듣는다.
동일한 상황을 당한 사람의 다른 대응을 가정해보자.
외제차가 끼어들어 정상적인 주행을 방해하자 “왜 갑자기 저러지? 내가 뭐 잘못 했나?”하고 속도를 줄인다. 앞길을 좀처럼 열어주지 않자 “차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지” 천천히 차선을 바꾼다. 외제차가 다시 앞을 가로막자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르려 한다.
‘고속도로에서 시비 가려봐야 서로가 손해지 뭐, 급하지 않으면 그렇게 가시오. 나도 그다지 급하지 않소’ 하고 속도를 줄여 달린다. 한참 그렇게 가다 앞차가 지쳤는지 속도를 높여 사라진다. 이후 평상시와 다름없이 골프장에 도착한 그는 멋진 티샷을 날리며 평소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간단한 사건이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골프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실수나 부주의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골프에서의 ‘10대 90의 법칙’이 통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