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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유니클로, 알리바바, 공차를 일군 사람들
유니클로. 일본을 비롯 한국과 세계 각지에서 패스트 패션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회사다. 유니클로의 창업주 야나이 타다시는 20년 전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자영업자에 불과했다. 야나이 타다시는 유니클로 1호점을 1984년에 오픈한 후, 1991년 체인점 사업을 시작했지만 도쿄 진출은 7년이 걸렸다. 유니클로는 1998년 도쿄 하라주쿠점을 개장한 후 상품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인 2004년 타다시는 실적 악화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듬 해 더욱 악화된 유니클로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사장 직에 복귀했으며, 이때부터 다시금 유니클로는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유니클로는 일본 국내 시장을 1위로 재패했으며 현재 세계 패스트 패션 업계의 4위로 손꼽히는 초우량 회사다.
타다시는 일본 최고 부자이며, 세계 백만장자 66위로 꼽히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 마윈
중국 알리바바의 창업자, 방년 50세 마윈의 스토리는 유니클로 창업주 타다시 보다 더욱 극적이다.
마윈은 1964년 가난한 경극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마윈은 작은 몸집에 싸움을 잘하던 아이였다. 고등학교는 재수했고, 대학은 삼수로 들어갔다. 삼수로 들어간 대학은 정원 미달로 들어간 요행이었다. 영어는 잘했지만 수학과 컴퓨터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데 서른 살의 통역회사 대표 마윈이 1995년 미국을 처음 방문하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컴맹 마윈이 인터넷을 처음 접한 것이다.
친구의 도움을 얻어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였던 마윈은 1995년 4월 동업자 친구 돈까지 합쳐서 2만 위안(약 329만 원)으로 정보기술회사를 차린다.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업체였다. 그렇게 알리바바의 신화는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4년 뒤 알리바바를 차렸으며, 또 4년이 지난 2003년 타오바오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설립한다.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현재 아마존 이베이 페이팔을 능가하는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윈은 300만원으로 수십조 짜리 회사를 일구어냈다. 십 몇 년 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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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윈(馬雲·잭 마) 알리바바 창립자 겸 회장 |
대만 본사를 능가한 공차코리아, 김여진
부의 크기는 다르지만, 한국에도 유니클로 알리바바와 비슷한 기업 성장 신화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공차의 김여진 전 대표이사다.
싱가포르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김여진씨는 공차를 거기서 처음 접했다. 당시 공차는 대만을 본사로 하여 홍콩 중국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 400여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차의 상품성에 대해 확신한 김여진씨는 공차 대만 본사를 찾아가 한국 프랜차이즈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대만의 공차 지점 수십개에 대한 고객반응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대만 본사를 설득했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금융인이었던 남편의 도움을 얻어 대만 본사의 마음을 사는데 성공, 유수의 한국 대기업들을 제치고 공차코리아 판권을 취득한다.
김씨는 2012년 4월 공차코리아 1호점 홍대점을 열었다. 불안한 기로에 서있던 시간이었다. 김여진 대표는 무방부제와 무색소를 넣어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개선된 포장기술로 배달하기도 했다. 고객을 위한 맞춤서비스로 당도와 얼음 양이 표기된 스티커를 모든 음료에 붙였다. 공차는 한국에서 흔하디 흔한 프로모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가맹점 문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후 이어진 공차코리아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이 본거지인 대만 보다 더 많은 매장을 둔 세계 최대 매장(282개 점포) 보유국이 되기도 했다. 현재 김여진 전 대표이사는 공차코리아의 보유 지분 일부(340억 원)를 매각하면서 대기업 경영체제를 공차코리아에 접목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을 대표로 삼아 공차는 아직도 성장 중에 있다. 3년 전만 해도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사업의 실패 성공 여부를 두고 전전긍긍하던 김여진 씨. 지금은 수백억의 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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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클로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는 연말 특별 프로모션. /사진=유니클로 제공 |
공차 김여진, 유니클로 타다시, 알리바바 마윈. 그들이 증명하는 것
부의 축적은 무제한이 아니다. 시장의 경쟁과정을 통해서 끊임없이 견제 받는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을 보자. 상속부자 보다 당대에 부를 이룬 기업가 출신 부자가 대다수다. 미국 뿐 아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래로 일어났던 수만의 부자, 기업가들은 모두 당대에 부를 이루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이래로, 상위 1%의 구성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현재 일본과 중국의 넘버 원 부자들은 10년 전까지 ‘듣보잡’ 자영업자, 자그마한 중소기업 오너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일본 유니클로의 창업주타다시와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창업한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3백억 부자가 된 ‘공차(Gong Cha)’ CEO, 김여진 씨는 30대 초반의 유부녀다.
김여진 씨는 개인이 기업을 통해 부를 일구어 우리나라의 상위 1%로 새로이 진입한 전형적인 사례다. 우리나라 부자 순위 1, 2위를 다투는 이건희 정몽구 회장도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세계 톱 기업으로 올라서게 한 대가로 자신의 부를 일군 것이다. 상속은 일종의 종자돈이었고, 자신의 부를 우리나라 최고로 거대하게 키운 것은 온전히 이건희 정몽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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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차의 인기를 증명하는 문구가 공차코리아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현재 매물로 나온 점포가 전혀 없으며 외부 창업컨설팅 업체와의 상담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사항이 홈페이지에 떠있다. /사진=공차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
빈부격차 1 대 99의 사회는 영원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욕한다. 점차 늘어나는 빈부격차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할 수도 있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미신과도 같다. 시장경제, 자본주의는 아무 것도 없던 사람이 기존의 부자를 추격하거나 추월하는 기업가적 과정을 통해서 부의 격차를 끊임없이 견제하여 분배를 개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개인들이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의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기업가정신은 재산수준이나 정규교육과 무관하다. 재산이 없거나 교육받지 못했어도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대에 성공한 기업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날카로운 비판, 예측, 판단, 직관이다. 이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빈부격차가 더욱 늘어난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해서는 차후 논하겠지만, 상속에 초점을 맞추어서 얘기하자면 사람들이 흔히들 비판하는 1대 99의 사회는 영원하지 않다.
재산은 상속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일부 부자들은 상속에 의해 일정기간 유지될 수 있지만, 부자는 3대 이상 가기 어렵다는 옛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착취수탈체제의 정점에 올라 있는 왕조의 역대 왕들이 아닌 이상 100년 이상을 아무런 능력 없이 기존의 부를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부는 상속이 아니라 기업가정신을 지닌 개인에 의해서 좌우된다. 공차의 김여진, 유니클로의 타다시, 알리바바의 마윈처럼 말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