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 향한 폭력 아닌 궤변자 응징…침묵하는 다수에 경종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서양 격언에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en.(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속된 표현으로 “입바른 소리나 헛소리 지껄였다가는 몰매를 맞아도, 입 다물고 있으면 본전은 한다”라는 얘기다.

만인이 세상만사에 침묵만 하고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 나폴레옹은 “세상은 악한 자들의 폭력 때문이 아니라 선한 자들의 침묵 때문에 큰 고통을 받는다”(The world suffers a lot. Not because of the violence of bad people, but because of the silence of good people!)라고 말했다. 프랑스혁명의 혼돈기(混沌期)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스스로 황제까지 된 나폴레옹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나 정치와는 무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이 세상은 사악한 무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악함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 때문에 살기에 위험한 곳이 되었다”라고 했으며, 영국의 대문호(大文豪) 셰익스피어는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내 적들의 가혹한 말보다도 내 친구들의 침묵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두 침묵으로는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를 잠재운 '냄비 폭약'

작년 12월 10일 저녁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재미동포 신은미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라는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콘서트 도중 고교 3학년 오 모(18)군이 냄비에 담은 인화물질을 던져 폭발한 사건이 벌여졌다.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가 어떤 행사인가? 미국인(재미교포) 신분으로 자유민주주의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여 대한민국 땅에서 공공연하게 북한을 찬양하며 나라와 국민을 우롱한 망동 아닌가? 그럼에도 언론들은 신은미의 경찰 및 검찰 출두 당시의 종북 망언을 전국민에게 홍보하듯 생생하게 방영해댔다. 우리 공안당국은 신은미와 황선이 공공연하게 김정은 왕국을 찬양하며 전국을 헤집고 다니고 우리 언론들이 이들의 종북 망언들을 생중계하다시피 해도 어영부영 수수방관했다. 국민의 분노가 들끓는 와중에 18세 고교생의 침묵을 깨는 용기가 이들의 망동을 저지했다.

'종북 논란'과 우리 사회의 좌경화 현주소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의 경거망동은 점입가경이었다. 신은미가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더니, 황선이 나서서 자신들의 토크콘서트를 '종북'으로 몰았다고 대통령에 대해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황선은 2005년 방북해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에 날짜까지 맞춰 평양에서 딸을 출산하고 온 사람이다. 신은미는 '냄비 폭약' 사건 후에도 우리 공안당국을 비웃기나 하듯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북한에 갈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국민들은 신은미의 정체가 궁금하고 이들 두 사람의 공공연한 종북 망언들을 방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어리둥절하고 있다. 법무부가 신은미를 강제출국시키고 검찰이 뒤늦게 신은미가 북한 정찰총국의 특별관리대상으로 포섭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지만, 그녀가 과연 본인의 주장처럼 순진한 통일 전도사인지, 북한의 꼭두각시거나 교활한 위장공작원인지, 아니면 영웅심리에 사로잡힌 저능아이거나 과대망상환자인지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신은미의 법률대리인이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강제퇴거 명령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강제출국 당해 남편과 함께 LA 공항에 도착한 신은미는 재미 좌파단체 회원들로부터 “민족의 영웅 신은미 환영”이라는 팻말로 영접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이 서울 거리를 활보하며 공공연하게 종북의 목청을 높이고 다니는 현실이 우리사회의 좌경화 현주소 아닐까?

일본 우익청년 '야마구치 오토야'의 '의거(義擧)'

오 군 사건 보도를 보면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1960년 10월 12일 일본의 아사누마 이네지로 (浅沼稲次郎) 사회당 당수가 여야 3당 합동연설회에서 연설 도중 일본도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를 척살(刺殺)한 사람은 17세의 고교생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였다.

야마구치는 우익단체인 대일본애국당(大日本愛國黨)에 가입한 후,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을 막아 일본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본의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던 사회당 당수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사건 당시 야마구치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종이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너, 아사누마 이네지로는 일본의 적화를 도모하고 있다. 나는 너 개인에게 원한은 없으나, 사회당의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로서의 책임과, 중공(中共)방문 시의 폭언과 국회 난입의 직접적 선동자로서의 책임을 물어,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여기 이곳에서 나는 너에게 천벌(天罰)을 내린다……" 사건 현장에서 자살을 기도하다 경찰에 체포된 야마구치는 이네지로 당수 암살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로 진술했다.

"좌익지도자를 죽인다 하여 좌익세력을 조속히 없앨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저질러 온 죄악은 용서할 수 없었으며, 한 명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향후 좌익지도자의 행동이 제한되고 선동꾼의 감언이설에 부화뇌동하는 일반 국민이 한 명이라도 더 각성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야마구치는 수감 20일 만인 1960년 11월 2일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제아무리 애국적인 행동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신념이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남의 목숨을 빼앗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 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집단을 '극우(極右)' 또는 '극좌(極左)'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야마구치의 행동은 '극우 청년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거(義擧)'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극우'와 '극좌'가 있는가?

그렇다면 오 군의 행동을 '극우 청년'의 '의거' 또는 '테러'라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에 '극우'나 '극좌'가 존재하는가? 우선, 좌파를 제압하고 승리한 우파가 건국한 대한민국에서 '극우'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 아닌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우익은 남의 목숨을 빼앗거나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만큼 '극단적', '조직적', '희생적'이지 않다.

좌익의 '거사(擧事)'도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고성방가 시위를 벌이며 화염병과 죽창을 휘두르는 '불량배' 수준이거나, 국회에서 젊은 야당의원이 할아버지뻘의 6.25 영웅 장군을 불러 세워놓고 호통을 쳐대거나 기물을 파괴하고 최루탄을 투척하는 '망나니' 수준이 고작이다.

광우병 파동과 한미 FTA 체결 당시의 좌우 대립이나 파란이 뻔히 내다보이는 국회선진화법과 세월호특별법 등의 입법 과정에서 보았듯이 좌우 모두 지리멸렬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다. 그럼에도 우익단체들이 좌파들로부터 '극우'라고 비난 받는 이유는 최근의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상당히 '좌클릭'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냄비 폭약' 투척 사건으로 오 군은 구속되었고, 이 사건을 놓고 좌우 진영의 말 잔치가 난무하고 있다. '극우', '테러', '위험물 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일베 회원' 그리고 배후가 있다는 등의 좌파의 비난 속에 일부 우익 네티즌들은 '의거', '열사(烈士)'라는 표현을 올리기도 했다. 오 군의 냄비폭약 투척을 테러라고 떠드는 것은 테러의 개념조차 모르는 무식한 소리다. 테러란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고(無故)한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파괴, 살상, 폭행 등의 만행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테러라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오 군의 행동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 아니라 종북 궤변을 쏟아내는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응징이다. 이번 오 군 사건은 우중(愚衆)의 비겁한 침묵에 대한 경종이자 좌경화된 사회와 나약한 공안당국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표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사회의 극심한 좌우갈등은 '좌익'과 '진보(進步)'가 동일시되는 데서 비롯되어 '종북 좌익'과 '진보'가 정치적 세를 키우기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심화되어 왔다. 종주국에서조차 사라진 공산주의 환상에 젖어 북한정권을 찬양하거나 추종하는 집단에게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진보'가 아니라 '퇴보(退步)'가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진정한 '진보'는 '수구(守舊) 친일•친미'로 매도 당하면서도 전쟁과 가난에 찌들었던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키워낸 진취적인 '보수(保守)' 우익 아닌가?

침묵은 금이 아니다

요즘 방송가의 토크쇼 붐을 타고 변호사, 평론가, 교수,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이 TV방송 ‘패널리스트’로서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개그맨 같은 언변이나 순발력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궤변이나 함량미달의 개인적 주장을 일삼는 사람들이 전문가랍시고 '패널'의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새해 첫 출근일인 지난 1월 2일 아침 뉴스전문방송 YTN의 '이슈 오늘' 프로의 첫 이슈가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대한항공 조 전 부사장 얘기였다.

패널리스트들이 둘러앉아 조 전 부사장이 수감생활을 제대로 할 것인지, 독방으로 옮겨 갈 것인지 등에 대한, 실로 너절한 얘기로 무려 25분을 떠들었다. 1월 8일 같은 프로에서도 같은 얘기로 또 15분을 썼다. 종편 방송들의 세상을 황폐화시키는 무한 수다는 또 어떤가? 침묵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헛소리들은 사회분란을 조장하는 독이 된다. 이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의사진행 절차(議事進行節次)(Parliamentary Procedure)에서 '침묵은 동의(Silence is consent.)'다. 침묵만으로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는 이유이다. 언론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무관의 제왕’이다. 제왕의 권력이 바르게 행사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비틀댈 수밖에 없다. 국민과 언론이 함께 바른 소리를 내야만 세상이 바르게 돌아간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이철영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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