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000억 서민금융에 출연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현 정부는 금융사를 ‘금융 소비자를 약탈해 이익을 얻는 집단’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기본적인 금융상식도 무시한 채 자유시장주의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이익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됐다고 보여진다.”

   
▲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시중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그동안 정부여당이 금융권을 타깃으로 추진하려 했던 ‘이익공유제’가 현실화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입법 예고돼 오는 10월 9일부터 시행되는데, 금융권에선 이를 ‘금융판 이익공유제’로 보고 있다.

9일 입법예고된 개정안에 따르면 서민금융 출연 의무를 담당하는 금융사의 범위를 가계대출을 취급하는 전 금융사로 확대하고, 서민금융진흥원 계정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서민금융진흥원의 신용보증 재원이 되는 출연금 부과 대상 금융사의 범위를 현행 상호금융조합, 저축은행에서 은행, 보험사, 여신전문금융회사로 확대한 바 있다.

서민금융 출연금 규모는 가계대출잔액의 0.03%이며, 은행권은 1050억원, 여전업권은 189억원, 보험업권은 158억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기간이 낸 연간 2000억원에 달하는 출연금은 서민금융으로 활용된다. 해당 규정은 올해부터 5년간 적용된다.

금융권에선 공공성 요구에 따른 사회적 책임에 공감하면서도 “규제 산업이라는 명분 아래 사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엄밀히 따지면 금융사도 민간기업인데 자본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기자들과 만나 은행권의 고통 분담에 대해 “은행들이 대한민국에 있는 한 금융 시스템과 떨어져 살 수 없다”며 “한쪽에서 부도가 난다 해도, 나 혼자 잘 먹고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여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의장이었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금융업을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익을 보고 있는 가장 큰 업종으로 꼽으며 “은행의 이자를 멈추거나 제한하는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에 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출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는 만큼 이를 통해 얻은 부의 일부를 공공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라는 취지에는 공감을 한다”면서도 “문제는 금융사가 정당하게 벌어들인 이익을 마치 부정하게 벌어들인 듯한 뉘앙스가 엿보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의 금융정책이나 금융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고 있노라면, 금융업권을 ‘산업’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든 빼 쓸 수 있는 ‘정부 금고’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복지 재원 마련을 사실상 금융권에 떠 안긴 셈”이라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서민금융 지원과 배당 자제 등 정부의 서민금융 활성화 지원 요구에 피로감이 높은 상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