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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
<규제감옥, 위기 때마다 찔끔 찔끔 규제 완화>
수도권 정비계획법은 경제위기 때마다 찔끔찔끔씩 개정되어왔다. 그것은 경제위기의 돌파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해제하는 것임을 입증한다.
1982년에 만들어진 수도권정비계획법, 1990년 만들어진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공배법·현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관한법률(산집법))에서 규제가 완화되었던 시점들을 되돌이켜 보면 첫 번째 계기가 1997년 외환위기였다. IMF구제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했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와 수출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25개 첨단 외투기업의 신증설의 경우에는 허용할 수 있도록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바뀌었다. 파주 LG필립스 공장 신설은 이 조치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이것은 내국인 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수반한 것이었다.
수도권 정비계획법의 두 번째 규제 완화 시점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 속에서였다. 이때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밀억제권역과 성장관리권역에서의 기존 숙원들이 대폭 개선되었으며, 자연보전권역도 공장입지를 제외하고는 오염총량제 실시를 전제로 허용되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는 재임 당시에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규제감옥’이라고 표현한 바 있었다. 그 정도로 평상시에는 도저히 그 규제를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규제를 뚫었던 것은 제도가 아닌 case by case 방식이었고, 따라서 순전히 김문수 경기도지사 개인의 열성 덕이었다.
2006년 취임한 김문수 도지사는 제도 자체의 변경에 반대하는 완강한 분위기 속에서, 동분서주하면서 중앙정부의 이 부서 저 부서를 설득해가며 case by case로 막혔던 부분들을 우회적으로 뚫어내야만 했다. 그 결과가 14개 첨단산업의 증설 허용이었다. 즉 삼성전자 반도체 부분의 기흥 화성 동탄공장 증설, LG전자 평택공장의 증설 및 진위 산업단지내 확장,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2차에 걸친 증설 등이 그 사례다. 그 외에도 LG전자, LG마이크로텍, LG이노텍, LG화학, 대덕전자, 한미약품, LG전자, 팬택, 일동제약, 태평양제약 등의 숙원을 풀었다.
내국인 기업들의 역차별이 심했고, 규제완화에 대한 반대들이 심했기에, 당장의 숙원들은 이렇게 case by case 로나마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기업의 애로, 그리고 그것을 뚫기 위한 경기도의 노력 등 행정력 낭비는 막대했다. 만일 규제가 없었다면 지출하지 않았어도 될 지출을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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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은 경기지사 시절 펴낸 책에서 경기도 전체를 '규제 감옥'이라고 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나는 꿈꾼다, 규제 감옥 경기도에서'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도권 성장을 틀어막는 게 우리나라라고 지적하고 있다. /뉴시스 |
<세계는 대도시권간의 경쟁의 시대>
대한민국에서 수도권 규제를 처음 시작한 것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출범 후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에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만들었다. 명분은 주택 교통난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수도권 인구집중이 군사 안보 차원에서도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되었고, 노태우 정권 이후 신도시를 계속해서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일자리 없는 주거 전용의 아파트 단지들이었을 뿐이다. 결국에는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한 제도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타났고,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IMF구제금융은 큰 윤곽으로 살펴보면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 자해(自害)적인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식 때문에 위에서 말했듯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찔끔찔끔 규제완화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수도권규제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단지 규제완화 정도가 아니다. 성장축을 어디로 삼을까에 대한 인식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제 속에 하나가 되면서 이제는 일국 내의 균형발전 정책을 포기하고 있다. 자유무역 시대에는 이제 대도시권 간의 경쟁이 성장축이란 점을 인정하고 있다.
선진국의 예들을 살펴보자. 우리보다 앞서 수도권 규제를 실시했던 나라들로서는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이 있다.
영국은 1945년 공업배치법으로부터 시작해서 1948년 공장개설허가제, 1964년 사무실개설허가제를 도입하여 규제를 하였다. 런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이 그린벨트였다. 그러나 1979년 대처정부가 출범하고나서는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 제도들이 대폭 완화되고 폐지되었다. 그리고 도크랜드 개발을 통해 런던을 금융 보험의 세계중심지로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프랑스는 1955년부터 건축허가제, 1960년부터 사무실 공장 등의 신증설에 대해 과밀세제도를 이용하여 공장입지 규제를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도 1970년대에 국가경제가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율, 경상수지 적자 등에 시달리게 되자 1980년대 중반부터 규제를 대폭 철폐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유럽 전체가 1993년 EC로 하나가 되면서, 마침내 국가 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EC 내 대도시권 경쟁으로 상황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일국적 개념을 가진 수도권 규제는 거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도 1956년 수도권정비법을 만들어서 1958년부터 수도권정비계획을 수립하였다. 런던의 예를 따라 일본도 그린벨트를 설정하였다. 1972년에는 수도권 기성시가지의 공장 등의 제한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규제를 대폭 강화하였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의 심화 속에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고이즈미 당시 수상은 제5차 수도권기본계획에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나아가 수도권정책의 초점도 규제 일변도에서 기능의 강화로 바꾸는 대전환을 이룩했다.
<대한민국에서도 대전환이 필요하다 -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말자>
이러한 영국 프랑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시대상의 변화를 읽고 그에 적극적으로 발맞춰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쪽이라고 지방과 수도권 간의 갈등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갈등은 러다이트적 성격의 것이기에, 과감히 전환하여 자유무역시대 대도시권 경쟁이라는 새로운 구도에 자신을 적응시켰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뭉기적거리면서 찔끔찔끔 규제를 완화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간 때를 다 놓치고 만다.
과거 역사에서 이런 비슷한 예를 발견할 수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사농공상의 유교질서에 빠져있던 조선 왕국은 마지못해 개항을 하였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지못해 한 개항이니만큼 열의를 보일 리가 없었다. 답답해했던 개화파 선각자들이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개혁 독립 번영의 가능성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런 반면 일본은 어떠했던가? 일본은 우리보다 불과 20여년 전인 1854년에 개항을 했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능동적으로 서구 문물을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것은 막부개국(幕府開國)파와 존왕양이(尊王攘夷)파의 대결을 존왕개국으로 융합시킨 1866년 대정봉환과 1868년 명치유신의 결과이기도 했다. 하나로 된 일본은 급속하게 근대화를 이루었다. 비록 그 이후 이웃 국가들에 대해 제국주의적 침략자로 돌변하여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어쨌든 그들은 과거와 전통과 기존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고 새로운 시대 흐름에 바로 올라타 개혁을 하였다.
우리가 개혁을 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이해관계와 과거에 얽매여 나아가지 못한다면, 조선 말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경쟁 대열에서 탈락하는 아픈 상황을 되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개혁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특히 세계사적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타는 개혁을 하여야 한다. 과거와 전통과 기존 이익은 그런 궤도 위에서 해결하려고 할 때 비로소 성공적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목전의 이익 갈등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사의 흐름은 규제철폐 정도가 아니라 대도시권경쟁이 성장축이다. 이미 자유무역시대에 접어든지 오래이기 때문에, 일국 내에서의 균형 주장은 더 이상 논의 주제가 될 수 없다. 대도시권 간의 경쟁이 중요하다. 대도시권 경쟁에서 이길 방안을 찾아야 국가경쟁력이 되살아난다. 과거 자유무역이라는 세계사의 조류를 타고 수출입국을 이룩했던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이 말의 의미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