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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경제 살리기의 핵심으로 떠오른 수도권규제 완화를 과연 이 정부가 해낼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인데, 결정적 상황 변화 없이는 성공하기는 좀 힘들다는 게 최근 며칠 새 필자가 내린 중간결론이다.
결정적 상황변화란 이 정부가 지금보다 똑똑해져서 사안 전체를 꿰뚫는 능력을 갖추는 걸 말한다. 이게 일조일석에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수도권 규제와 균형발전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의 인식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비상한 각오로 정책추진을 해도 될까 말까한데, 지금 실력으론 어림도 없다.
본인도 이해 못하는 걸 어떻게 남에게 설득할까? 남을 설득 못하는데 추진동력을 어떻게 확보할까? 더구나 사회통념 혹은 여론은 수도권규제 완화에 우호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예외 없이 지역 할거주의(수도권 대 비수도권)에 사로 잡혀있고, 평등주의 이념(경제민주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환경을 지난 주 새삼 깨달았는데,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계기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자 친박 진영과 청와대가 바로 반격했는데, 좀 황당했던 게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의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것은 신뢰의 정치, 지역균형발전이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이 한마디야말로 이 정부의 인식능력을 보여준다. 즉 그럴싸하지만, 신기루에 불과한 지역균형발전의 빛과 그늘에 대한 파악이 전혀 안 돼있다는 증거다. 너와 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똑 같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앞서가는 이웃의 뒷다리를 잡는 평등주의 이념이 왜 문제인지를 모른다. 상황이 그러하니 왜 그게 우리경제의 목을 죄는지의 구조도 파악 못 한다.
이명박 회고록에 청와대가 발끈한 이유
무지몽매한 건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한 고위관계자는 회고록을 문제 삼으며 2009년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는“국토균형 발전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국토균형발전론이나, 이정현의 지역균형발전론이나 똑같은 얘기다. 이 정부는 우파 정권임에도 균형발전이란 가짜 신화의 실체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듣는 순간 “저게 무슨 말이지?”싶었던 보름 전 박근혜 대통령 발언이 떠오른다.
그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는 종합적 국토정책 차원에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올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게 조금 전 국토균형발전론 등과 뭐가 다른가? “수도권 규제는 종합 국토정책 차원과 무관하게 경제 살리기의 차원에서 풀겠다”라고 말했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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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유사 사회주의, 혹은 명백한 사회민주주의 이념이 헌법적 가치인 시장경제와 거의 동격이 되면서 재벌규제 등 온갖 규제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뉴시스 |
그동안 우린 상생과 경제민주화란 구호를 앞세우는 바람에 n분의 1씩 안배하고, 나눠 먹는 평등주의 정책을 반복해왔다. 수도권규제도 이 맥락인데, 대통령도 급소 파악이 안 된 건 아닐까?
필자 판단이 기우이길 바라는데, 실은 이완구 총리 후보자도 걱정스럽다. 기억하시는지? 그는 충남지사 재직 때 세종시 수정안을 가장 앞장서 반대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수도권을 틀어막으면, 8~9할에 해당하는 기업이 해외로 탈출하고 나머지 1~2할이 비수도권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충청도가 혜택을 좀 봤다.
총리 후보자도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지역할거주의자라는 얘기이고, 균형발전의 늪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찔하다. 이 정부의 핵심 리더들은 예외없이 우파의‘옳은 이념’(차별화)을 외면한 채 좌파식의‘좋은 이념’(평등주의)에 현혹돼 있다. 지난 한 달 새 필자가 네 차례 설명했던 경제학자 좌승희 박사의 지적도 실은 그 문제다.
좋은 이념(상생-균형발전) 버리고 옳은 이념(불균형-불평등) 선택해야
좌 박사는 자신의 저술에서“귀에 그럴싸하지만, 경제를 죽이는 좋은 이념(상생-균형발전-평등-경제민주화)을 버리고 옳은 이념(불균형-불평등)을 선택해야 한다.”고 반복했는데, 며칠 전 사석에서도 그걸 핵심을 찔렀다.
“평등주의를 꿰뚫지 못하는 사람들은‘규제는 나쁘니까 없애자고 하면서도 균형발전이란 좋은 것이다.’라고 말을 하죠. 서로 모순된 말을 하면서도 그게 왜 모순인지도 스스로가 잘 모릅니다. 그래서 흥하는 이웃인 서울대-삼성전자-강남을 끌어내리려고 난리를 칩니다.”
심란하다. 이완구-이정현에서 대통령까지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에서 실패하고 있다. 쉽게 말해 무얼 모른다. 그럼에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상생-분배-균형발전-경제민주화 따위를 앞세운 건 1987년 6공(共)부터다. 그래서 이른바 87년 체제가 한국경제를 죽였다고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1982년)이란 괴물도 그 맥락이다.
위정자들이 저렇다면, 언론이라도 멀쩡해야 하는데, 상황은 답답하다. 조선일보가 지난주 3일간에 걸쳐 ‘투자 막는 수도권 규제’시리즈를 매일 1면 톱에 두 개 지면씩을 할애했다. 관심있게 봤다. 잔뜩 늘어만 놓았지 막상 먹을 것 없는 상차림이었다.
한국경제가 죽어간다고 아우성이면서도 규제와 균형발전의 바탕에 깔린 평등주의 이념의 실체를 짚어준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이럴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평등주의 좌파 이념에 한국사회가 모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 평등주의란 괴물이란 우리 마음 속에서 사는데, 그건 올바른 인식능력과 경제철학을 통해서만이 극복 가능하다. 우리의 평균적 실력은 거기까지는 안 된다.
그나마 사안의 핵심에 근접한 건 서동원 규제개혁위원장이다. 그는 신문 인터뷰에서 “수도권 규제도 큰 틀에서 불합리한 것이 나타나면 적극 해소하는 쪽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따져본 뒤 필요하다면 완화해야한다”라고 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게 어딘가.
대통령은 얼마 전 우문현답이란 말로 조크를 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라는 데 필자는 그걸‘우문철답’으로 바꾸려 한다. “우리의 문제는 경제철학에 답이 있다.”란 뜻이다.
“한국호(號)가 정말 걱정이지요? 경제가 이러한데도 번드르르한 말로 국민을 오도하는 정치권, 뭘 모르는 언론과 지식인을 어찌해야 할까요? 우국당(憂國黨) 하나를 우리끼리 만듭시다.”
보름 전 좌승희경제학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할 때 마침 일본에 출장 중이던 좌승희 박사가 필자에게 보내온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하나다. 당? 필요하면 기꺼이 만들자. 당의 명칭을 ‘우문철답당’으로 하는 건 어떨까.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