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8회까지 점수 차가 10점 이상 크게 벌어져 승부는 이미 결정난 상황. 팀 마운드 사정도 결코 넉넉지 않아 마땅하게 올릴 투수도 없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2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SSG 랜더스 경기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원정팀 LG가 8회까지 13-1로 앞섰다. 9회초 수비에서 SSG는 1사 후 마운드에 '낯선 투수'를 등판시켰다. 바로 팀내 최고참 야수인 김강민이었다.

1982년생 김강민은 한국나이로 마흔이다. 올해 영입한 추신수와 함께 SSG 최고참 선수다. 프로 입단 후 투수로 나선 경험이 전혀 없는, 베테랑 외야수다.

   
▲ 사진=SSG 랜더스


김원형 SSG 감독이 김강민의 등판을 결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투수 자원을 아끼기 위해서다. 메이저리그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야수의 투수 기용이고, 올 시즌 국내 KBO리그에서도 이따금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래도, 김강민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팀의 터줏대감과 같은, 오랜 기간 외야 주전 자리를 지키며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김강민이다. 그의 투수 등판은 이날 맥없이 대패한 SSG가 사실상 승부가 결정난 상황에서도 끝까지 관중석을 지키며 응원해준 홈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유일한 서비스처럼 보였다.  

프로 입문 20년 만에 처음 올라본 마운드에서 김강민은 처음 상대한 타자 정주현에게 홈런을 맞았다. 이어 김재성을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김용의에게는 볼넷을 허용한 후 스무살 차이가 나는 신인 이영빈을 3루수 뜬공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김강민의 투수 데뷔전 성적은 ⅔이닝 동안 투구수 20개에 1피안타(홈런) 1볼넷 1탈삼진 1실점. 김재성을 상대하면서 던진 145km 강속구가 최고 구속으로 기록됐다.

이닝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김강민에게 동료 선수들, 관중들의 박수와 격려가 쏟아졌다. 마치 완투승을 따낸 에이스를 반기는 장면처럼 보일 정도였다.

팀 최고참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강민이 투수를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야수투수'로 나서야 했던 이유가 잘 드러났다. 김강민이 대구중을 거쳐 경북고 1학년 때까지 투수로 활약했다는(고교 1학년 때 손등뼈 골절로 야수 전향)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야구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좋은 내용의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추억거리 하나라도 선사하는 것이 프로팀이 해줄 수 있는 팬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강민은 그런 역할을 해냈고, 늘 새로운 '스토리'가 필요한 프로야구에 새로운 화제를 하나 보탰다.

야수의 투수 등판이 자주 나오지 않는 것이 건강한 리그이고, SSG로서 이런 상황을 또 맞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팬 입장에서라면, 혹시 다음에 이런 비슷한 상황이 나왔을 때 메이저리그 출신 추신수의 피칭을 보고싶다는 욕심도 생길 만하다.

그러고 보니 김강민과 마흔살 동갑내기 추신수도, 이대호(롯데)도 고교 시절 각각 부산고와 경남고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투수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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