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43)- 태극낭자가 강한 이유는 젓가락과 발효식품?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LPGA투어의 2015년 시즌 개막전으로 지난 1월 28~31일(미국시각) 미국 플로리다 오칼라의 골든오칼라 골프클럽에서 열린 코츠골프 챔피언십 대회는 ‘태극낭자들에 의한, 태극낭자들을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대회의 전체 흐름을 태극낭자들이 주도했다. 특히 마지막 라운드는 태극낭자들을 위한 특별경연 무대를 방불케 했다.

대회 출전자 120명중 한국국적이 21명으로 전체의 17.%를 점령했고 여기에 교포출신 선수 9명을 포함하면 30명으로 전체 출전자의 25%를 차지했다. 미국 선수를 제외하면 한국 및 교포 선수를 아우르는 ‘태극낭자’들이 LPGA투어의 주류로 자리매김 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비록 국적은 한국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교포선수들 역시 한민족의 DNA가 흐르기에 넓은 의미의 태극낭자군에 포함시켜도 어색하지 않으리라)

수적인 우세만 놓고 한류골프 운운 하면 유치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확실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만 해도 첫 라운드의 경우 톱8 13명 중 장하나 최나연 리디아 고 허미정 등 태극낭자가 7명이나 포진했다. 시작 전부터 과연 박인비가 리디아 고(세계랭킹 2위)와 스테이시 루이스(세계랭킹 3위)의 추격을 뿌리칠 것인가, 새로이 등장한 한국의 루키들이 얼마나 가능성을 보일 것인가 등 매스컴의 관심이 태극낭자에 쏠렸는데 과연 태극낭자들은 첫 라운드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이런 흐름의 압권은 마지막 라운드 챔피언조였다. 세계랭킹 2위 리디아 고(17), 랭킹은 21위지만 항상 우승 가시권에 있는 LPGA 통산 7승의 최나연(27), 그리고 LPGA투어에 막 데뷔한 장하나(23).

LPGA투어 마지막 라운드에서 모두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으로 챔피언조가 짜여 진 것은 전무후무한 대사건이다.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 국적이긴 하지만 부모가 한국인이고 그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국적만 다를 뿐 한국인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 골프의 기본은 손과 클럽이 만나는 그립이다. 골프에서 손은 클럽의 무게와 질감을 느끼면서 스윙에 필요한 적당한 악력과 섬세한 동작을 필요로 한다. 가느다란 쇠 젓가락으로 밥알이나 콩알을 집는 섬세한 젓가락질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그만큼 유리하지 않을까? /삽화=방민준 
리디아 고야 설명이 필요 없는 천재 골프소녀로, 골프여제로 추앙받는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를 능가할 선수로 지목받고 있다. LPGA 통산 7승의 최나연 역시 늘 톱10에 이름을 올리는 실력파인데다 미모와 우아한 스윙으로 미국 골프팬들의 인기가 높다. 루키인 장하나는 데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LPGA투어를 놀라게 할 스타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갤러리들과 중계화면을 통해 본 골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우승경쟁을 벌인 끝에 우승은 최나연에게 돌아갔지만 공동2위를 한 리디아 고는 17세 9개월이라는 최연소 나이에 박인비를 2위로 밀어내고 세계 골프랭킹 1위에 올라 ‘소녀 골프여왕’으로 등극했다. 역시 공동 2위인 장하나는 데뷔무대에서 출중한 기량과 골프팬들을 사로잡는 표정, 제스추어, 매너 등으로 LPGA의 차세대 스타로 눈도장을 찍는 기회를 잡았다. 드물게 3명 모두가 윈윈 한 대회였다. 최종합계에서도 6명이 톱10에 들어 태극낭자들이 LPGA투어의 대세임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태극낭자들이 주름잡는 LPGA 무대에 리디아 고와 같은 급의 골프천재로 평가받는 김효주(19)세가 2월말부터 가세하고 이번에 컷오프 당한 백규정(19) 김세영(21) 등이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LPGA투어에 몰아칠 태극낭자들의 질풍노도는 한층 거세어질 것이다.

“도대체 왜 한국 여자선수들이 골프를 잘 하는가?”
골프와 연관이 있건 없건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우리도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골프대디’ ‘골프맘’이란 조어에서 알 수 있듯 부모가 자녀를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분위기, 어릴 때부터 접하는 스파르타식 훈련, 사회를 지배하는 특유의 경쟁심이나 인내심이 거론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답이라 볼 수 없다. 골프에 매진하는 청소년층이 두터워 수준 높은 선수의 공급원이 풍부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답으로선 부족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 생활관습과 정신문화에 돋보기를 대봤다.
우선 젓가락문화가 눈에 뜨인다. 골프의 기본은 손과 클럽이 만나는 그립이다. 골프에서 손은 클럽의 무게와 질감을 느끼면서 스윙에 필요한 적당한 악력과 섬세한 동작을 필요로 한다. 가느다란 쇠 젓가락으로 밥알이나 콩알을 집는 섬세한 젓가락질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그만큼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인구비중으로 볼 때 한국처럼 골프인구, 골프선수가 많고 골프장이나 연습장, 최첨단 스크린골프장이 많은 나라를 세계에서 찾기 어려운데 쇠 젓가락을 사용해온 습관이 골프를 익히고 즐기는데 유리하다면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고도의 정신집중과 육체의 평온한 긴장이 요구되는 활쏘기도 골프와 공통점이 매우 많아 근거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남성에게는 적용될 수 있지만 활쏘기 기회가 거의 없었을 여성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이밖에 장구한 농경시대의 도리깨질, 60년대 이전 어린아이들이 즐기던 팽이나 자치기도 손목의 리듬과 스냅을 중요시하는 스윙 동작과 관련이 없지 않지만 현재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접해보지 못했을 것이기에 설득력이 약한 것 같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동양적 정신문화와 식생활을 지배해온 발효식품 문화가 골프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추리해본다.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듯 골프의 80%는 정신이 지배하는 운동이다.(필자가 보기엔 90% 이상이다.) 골프를 하다 보면 맞닥뜨리는 상황에 따라 머리는 혼란스럽고 마음은 희로애락의 불길에 휩싸여 게임을 망치기 마련인데 이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고전들에 담긴 정신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중용(中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속에 절제 조화 겸손 배려 평정 균형 사양 등 거의 모든 동양정신의 미덕이 녹아 있다.

이런 정신문화가 우리의 DNA 속에 녹아 있다고 가정할 때 희로애락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밖으로 표출하며 마음의 불길에 쉽게 휩싸이는 서양 사람보다 한국인이 더 골프에 유리하지 않을까.

된장 김치 간장 고추장 등 발효식품에 익숙한 식문화도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쳐 정신을 조절 또는 지배하는 데 긍정적 기능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음식재료를 절이고 띄우고 삭힌 후 깊은 맛을 오래 즐기는 데 익숙한 터라 머리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이나 마찰과 갈등 등도 내부에서 적당히 발효시키는 습관이 절로 터득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감정의 불길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유전적으로 축적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해본다. 물론 이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화병으로 도지기도 하지만 견뎌내기만 한다면 정신적 달관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김치나 된장 홍어처럼 곰삭은 전통음식이 기막힌 맛을 창출해내듯.

한국 골프선수, 특히 한국 여자 골프선수가 왜 골프를 그렇게 잘 하는 지는 앞으로 더욱 다양하게 깊게 파고들어야 뚜렷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