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 주민 통제에 ‘간판 간부’들 희생양 삼는 듯
20㎏ 감량 김정은 ‘김일성 27주기’ 참배로 위중설 일축
국정원 “북, ‘오빠’ ‘남친’ 등 남한식 말투·복장 단속 중”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근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간부 손보기’에 나섰다. 특히 북한 미사일 개발의 공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한 리병철이 강등되면서 내부적으로 충격요법을 사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병철은 2016년 8월 북한이 첫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성공 직후 간부 중 유일하게 김 위원장과 맞담배를 피는 모습으로 북한 매체에 공개된 인물이다. 

‘군부 1인자’의 강등 사실은 김 총비서의 건재함과 더불어 확인됐다. 최근 남한 일각에서 또다시 김 총비서의 위중설이 돌면서 국가정보원이 7일 “근거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바로 다음날인 8일 김 총비서는 김일성 사망 27주기를 맞아 작년보다 다소 많은 간부들을 대동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김 총비서를 비롯해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김덕훈 내각총리가 위치한 상무위원 자리인 첫줄에서 리병철 당 상무위원이자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셋째줄로 밀려나 있었으며, 복장도 이전 행사 때 입었던 군복이 아니라 인민복 차림이었다. 이에 따라 리병철은 상무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됐으며, 군사 간부 지위도 변동됐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김 총비서는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켰고, 그로 인해 초래된 엄중한 후과가 있었다”고 밝히고, 간부들을 문책했다. 이 회의에서 리병철은 개회 직후 몇 번의 표결엔 손을 들었지만 마지막 표결에 거수를 못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 북한 노동당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지난 29일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회의 참가자 가운데 김여정·현송월 당 부부장이 나란히 앉아 주석단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참가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이다. 2021.6.30./사진=조선중앙통신

김 총비서는 이 회의 도중 인상을 찌푸리고 역정을 내면서 발언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리병철과 함께 박정천 총참모장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들지 못했다. 이번에 박정천은 이날 두 번째 줄 오른쪽 끝에서 식별됐다. 군복은 입었지만 계급장이 원수에서 차수로 강등된 것이 확인됐다. 박정천은 지난번 궁전 참배 때 두 번째 줄 중앙에 위치했었다. 이 때문에 역시 후보위원으로 강등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 총비서는 지난해 리병철과 박정천 두 사람 모두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한 바 있다. 하지만 1년만에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두 사람은 김 총비서를 비롯해 조직과 공안 책임자 김재룡 조직지도부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및 실세인 김여정, 현송월 부부장으로부터 집중 비판을 받았다.

역시 지난 확대회의에서 문책을 받았던 최상건 당비서 겸 과학교육부장(정치국위원)은 이번 참배에서 아예 식별이 안됐다. 그는 지난 8차 당대회 직후 정치국위원으로 확인된 만큼 이번에 두 번째 줄에 있어야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상건의 신상 변동 가능성 있다”고 전했다. 지난 확대회의에서 조용원 조직비서는 최상건을 일으켜 세워놓고 화를 냈으며, 잠시 후 최상건의 자리가 비어있었다고 한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은 리병철에 대해 군수공업부장으로 강등됐으며, 박정천의 경우 차수로 강등됐으나 총참모장직은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 발표했다. 국정원도 최상건 당비서의 경우 퇴임된 것으로 관측했다.  

코로나 방역 위기 상황에서 식량난도 겹친 북한에서 당국이 폭등하는 쌀가격을 통제하기에 급급한 사실도 이날 국정원의 정보위 보고로 전해졌다. ‘정해진 쌀가격을 넘기면 총살하겠다’는 포고와 함께 최근 북한에선 ‘오빠’ ‘남친’ ‘쪽팔린다’ 등의 남한식 말투와 남한 옷차림이 유행하는 것을 단속하기 위해 김 총비서가 회의에서 보다 공세적으로 사회주의 수호전을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 27주기를 맞아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이번 참배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성원들과 당 중앙 지도기관 성원들이 참가했으며 김 총비서와 함께 맨 앞줄에는(왼쪽부터) 조용원 조직비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등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자리했다.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겸직하던 리병철은 상무위원들의 자리가 아닌 셋째줄로 밀려나 있어 지난달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상무위원에서 해임된 것이 확인됐다. 2021.7.8./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 총비서가 “중대사건”이라며 간부들에게 호통친 사건이 무엇인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코로나19 방역에 군이 상당 부분 개입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방역사업에서 군 간부들의 실책 또는 비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김 총비서가 특별명령서까지 발행해 전시 비축미를 주민들에게 공급하라고 지시한 일도 전해지고 있어 ‘2호 창고’가 바닥났거나 일부 식량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을 진정시키지 못한데 책임을 군에게 물었을 수도 있다.   

사실 수령체제로 3대를 세습해온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가 작업 탓에 북한에서 당국의 공동책임이란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들어 김 총비서는 간부들과 당의 책임 역할을 강조해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김 총비서는 최근 회의에서 직접 “간부 혁명”을 언급한 일도 있어 주민들을 통제하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일에 얼굴이 잘 알려진 ‘간판 간부’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에 김 총비서는 많으면 20㎏ 정도 감량해 홀쭉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간부들에게 “태공”(태만)이란 말 등으로 문책했다. 그런 한편, 지위가 강등된 리명철 등의 후임이 아직 채워지지 않은 점에서 일정한 시일이 지나면 이들 모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