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성·집착증 보이면 조심…이별땐 상처주지 말고 웃으며

   
▲ 성시완 범죄심리학자
지난 1월말 포항의 한 상점 앞에서 전 여자 친구의 승용차를 3-4회 들이받은 4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당시 승용차에는 전 여자 친구가 타고 있었기에 경찰은 체포된 남성을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같은 달 19일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는 이별을 통보한 동거녀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살해를 시도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중들이 이별범죄라 칭하는 현상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범죄학적으로 이별범죄라는 범죄현상이나 이론이 별도로 논의되고 있지는 않다. 형사절차상으로도 이별범죄에 대해선 특별한 취급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연인간 발생하는 범죄, 이별과정이나 이별 후 발생하는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사람이 2011년 6775명, 2012년 7076명, 2013년 6598명이며, 심지어 애인으로부터 살해된 사람도 2011년 47명, 2012년 47명, 2013년 49명이라는 경찰청 집계도 있다.

데이트폭력과 이별범죄에 대한 언론보도나 시민들의 인식에 비추어 보면 양자가 엄격하게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학문적으로 데이트폭력과 관련해서는 ‘이성교제(중) 폭력’, ‘데이트폭력’, ‘구애기 폭력’ 등 여러 가지 용어가 혼재 사용되고 있으며, 신체적 폭력 또는 언어적 폭력을 비롯하여 정서적, 심리적 폭력, 그리고 성적폭력까지를 포함시켜 논의함이 일반적이다. 경찰 공식 문건 중에는 데이트폭력을 ‘치정폭력’이라 표현한 것이 있어 눈길을 끈다.

데이트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80년대 후반부터 본격 논의가 있었다. 원인 이론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동기나 청소년기 부모로부터 폭행피해를 당하거나 부모간 폭행장면을 목격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이 연인관계에서 이를 모방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전통적 사회학습이론에 속하는 주장으로 성장환경적 요인이 성인이 된 이후 각종 스트레스, 음주, 갈등의 존재, 상대방의 공격성, 폭력으로 인한 보상 등 요인에 의해 데이트폭력으로 촉발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두 번째는 소위 사회유대이론(Social Bond Theory)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폭력적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의 경우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연인관계에서도 유대감을 형성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 이론 역시 어린 시절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최근 들어 논의되는 이론으로, 가부장 패러다임(Patriarchal Paradigm)이 있다.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역할이 데이트 폭력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각 이론들은 이별범죄의 원인이론으로도 원용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별범죄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아직 전무하다. 학문적 논의가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이별범죄가 데이트폭력과 엄격한 의미에서 구별되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대중의 흥미와 언론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필자부터 학문적 논의를 시작해볼까 한다.

   
▲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사람이 2011년 6775명, 2012년 7076명, 2013년 6598명이며, 심지어 애인으로부터 살해된 사람도 2011년 47명, 2012년 47명, 2013년 49명이라는 경찰청 집계에서 보듯 증가추세에 있어 이에 대한 예방책이 요구되고 있다./뉴시스
이별의 본격화 단계에 발생한 폭력이나 이별 통보 직후 발생한 폭력 등 데이트폭력을 포함하여 이별과 관련한 모든 형태의 범죄를 이별범죄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필자는 이별범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연인관계 종료 전후를 불문하고 이별과 관련하여 상대방 및 그 친족을 대상으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

이별범죄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가 형사정책적으로 유의미한 것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별범죄라는 세간의 현상을 반영한 고심의 결과라는 점을 너그러이 봐주시고 애용해 주시길 바란다.

한편, 한 경찰관서 블로그에는 ‘이별범죄예방법’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 이별범죄 예방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경찰의 공식의견이 아닐 것이라 믿지만 또한 재미있는 조언들이기에 무시하지 말고 하나씩 뜯어 보며 품평회를 해보자.

먼저, ‘헌신적 사랑 요구는 위험’하다고 한다. ‘여성들은 나만 바라보라는 식으로 남성의 헌신적 애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연애 과정에서 일과 친구관계를 포기한 남성은 이별통보를 받고 보상심리 때문에 극단적 분노를 표출한다’. 그저 미소만 지어지는 진단이다. 과연 그럴까. 어쨌든 그런 경우도 있다니 그렇다 치자.

두 번째, ‘집착하는 애인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수시로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확인하는 등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행동은 위험신호이다. 이럴땐 만남 횟수를 줄여 상대가 개인시간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연인관계에서 집착증의 문제점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나 만남의 횟수를 줄여 상대방의 개인시간을 보장하라는 조언은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 가능하기나 할까.

세 번째, ‘때리는 습관 못고친다’는 조언. ‘폭력을 습관적으로 행사하는 애인과는 빨리 결별하는게 상책. 남자 친구의 폭력성향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건 극복해야 할 환상이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적절한 지적이다. 폭력성향은 사회학습이론, 가부장패러다임 등 그 어떤 이론에 따르더라도 만만하게 보고 방치하면 안될 문제적 습성이다.

네 번째, ‘헤어질 땐 잘 헤어져라’고 한다. ‘이별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연락을 끊으면 상대의 집착과 폭력성을 키울 수 있다. 양측이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인만큼 서서히 정리해야 상실감을 줄이고 사고예방을 할 수 있다’. 잘 헤어지는 것이 연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볼 수 있지만 이유가 또 웃긴다. ‘양측이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인만큼’ 예의를 갖추라는 것. 이혼시 재산분할에 목매고 소송전을 벌이는 세태를 보면 연인관계 역시 이별시에는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스토킹은 증거수집해라’는 사후대책. ‘막연한 스토킹 신고에는 경찰이 개인사로 보고 움직이지 않아 폭력이나 협박이 있을 경우 사진으로 찍거나 녹음해 물적증거를 남겨야 조기에 공권력 개입이 가능하다’. 적절한 예방법이나 실전에는 사용하기 거의 불가능한 방법.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범죄를 피해자 주장에 중점을 두고 처리해야 하는 이유는 가정폭력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연인관계가 지속중이거나 종료된 이후라 하더라도 폭력과 협박의 매 순간을 채증한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실제 데이트폭력이나 이별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형사사법제도상으로 범죄예방을 위한 수많은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 범죄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문제는 데이트폭력이나 이별범죄 그것들의 범죄율도 크게 감소할 것 같지 않으며, 마땅한 대책 또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학습이론이든 유대이론이든 그 예방대책은 아동기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서 부모가 아이를 잘 키웠어야 한다는 것이고, 가부장 패러다임에 따르더라도 더 이상 가부장적이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전근대적인 가족사의 멍에를 짊어지라고 강요하는 것 외에는 딱히 묘안이 있지도 않다.

어찌 보면 폭력성향이나 집착증을 가진 사람은 우선 조심부터 하고, 연인관계 종료시에는 매너있게 이별통보를 하라거나, 범죄적 현상 발생시에는 채증을 잘 해두라는 등의 조언, 웃으면서 보았던 위 다섯 가지 조언이 최선의 예방책이 아닐까 싶기도.

○○범죄라고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많은데 뾰족한 방책은 없는 범죄과잉의 시대, 걱정이다. /성시완 범죄심리학자, 범죄학 박사, 죄와벌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