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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 |
나라마다 복지제도 만큼이나 조세제도도 다르다. 그리고 이 두 제도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복지제도와 조세제도의 틀이 서로 맞지 않도록 되어 있다. 복지는 “무상” 무차별 보편복지를 지향하면서 조세제도는 보편적 징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복지와 증세 논쟁은 이 두 제도의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진통이다.
부족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야당은 부자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차피 부자는 소수고 기업은 투표를 하지 않으니까 정치적으로 안전하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이 일부 잘사는 사람들과 잘나가는 기업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부자증세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면 정치적으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부자와 기업에 대한 세율을 올리는 것으로는 증세에 한계가 있다. 기업은 각종 면세나 공제제도를 더 많이 활용할 것이고, 고소득자는 일을 덜 하거나 세금을 더 내느니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표적 과세는 항상 과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세금 회피 행동을 유발한다. 따라서 소수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표적과세의 증세효과는 한계가 있고, 경제활동의 왜곡이 초래된다.
어떤 사람들은 법인세를 기업주에 대한 과세와 혼동하는 듯하다. 그러나 법인세 인상의 부담은 기업주가 지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법인은 자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인이 번 소득은 결국 기업활동에 참여한 자연인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분배된다.
따라서 법인세를 징수하면 결국 세부담은 주주, 임직원, 협력업체,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분담된다. 그 과정에서 배당이 줄어 주가는 하락하고, 고용과 기업투자는 위축되어 일자리는 줄어들고, 제품가격은 인상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법인세 인상이 증세효과는 별로 없이 부작용만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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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무상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그가 재원대책으로 제시한 것은 법인세율을 3%포인트 올리고, 부유세를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해서 무상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더구나 증세는 나라경제 전체로 보면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낮춰 총수요를 위축시킨다. 지금 그러지 않아도 내수가 위축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마당에 증세로 경기 위축을 가속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소수로부터 걷어 다수에게 나눠주는 재분배 정책은 지속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계층 간의 갈등을 초래하여 사회통합을 위해 바람직하지도 않다. 진정한 의미의 복지는 다수로부터 걷어 정말 필요하고 불우한 소수에게 몰아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더 효과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가치관에도 맞는다. 우리 말에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가 조세제도가 누진적인 소득세구조를 가지고도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재분배 효과가 작은 것으로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수의 고소득자로부터 집중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나눠 주기 때문이다.
전문가 연구에 의하면 누진세제보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단일세율로 세금을 거둬 이 세금을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망에 사용하는 것이 빈곤층 보호에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각국의 복지제도와 조세제도의 차이는 각국의 근본적인 사회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처럼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국가가 의료, 육아,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국민의 보편적인 기본권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에서는 모든 국민이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에 대해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대가를 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병역 의무와 같은 보편적 의무인 것이다.
반면 미국과 같은 나라는 개인주의적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복지제도도 자기 책임원칙이 강조된다. 그대신 조세제도는 누진세와 보조금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추구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서유럽의 보편적 복지제도를 추구하면서도 조세제도는 보편적이지 못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상위 10% 소득층이 소득세의 70%를 부담하고, 1%의 기업이 법인세의 80%를 부담하는 매우 보편적이지 않은 편향된 조세부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를 가지고 부자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얼마나 더 세금을 거둘 수 있을까.
보편적 복지를 가지려면 조세제도도 보편적으로 가야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근로소득세는 높지만 자본소득세는 낮다. 그리고 유류세나 부가가치세 같은 소비세는 세율이 매우 높다. 북유럽 국가들의 부가가치세율은 대부분 20% 이상이다. 소비세는 역진적이어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왜 이런 조세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소비세는 누진 소득세나 법인세에 비해 누수가 적고 경제활동에 대한 왜곡이 작다. 따라서 작은 세율 인상만 가지고도 상당한 증세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가가치세율을 2% 올리면 15조 정도의 추가 세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2014년 세수부족분을 메우고도 남는 금액이다.
지금과 같이 경제가 침체된 상태에서 증세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경제상황에서는 증세를 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를 선별적 맞춤형 복지로 바꾸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하겠다면, 투자나 고용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세금수입을 늘리는 보편적 조세제도로 가야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재원은 고소득자와 기업으로부터 걷어서 조달하겠다는 것은 “증세 없는 복지” 주장 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표적증세로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는 것도 얼마 못가 다시 국민에게 거짓임을 자백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세금도 보편적으로 걷어야 한다. 보편적 징세를 할 용기가 없다면 보편적 무상 복지를 말해서는 안된다. /김종석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것을 수정, 증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