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어린이날’의 창시자 방정환 선생을 기리고자 명명된 소파로(小波路)를 조금 더 따라가니, ‘서울미래유산’을 지정된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옛 어린이회관 건물) 옆으로, 넓은 돌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은 2005년 인기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엔딩 촬영장소로, 일명 ‘삼순이 계단’이라 불린다. 커플들은 드라마틱한 로맨스를 꿈꾸며, 계단 오르기 가위바위보 게임에 열중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계단은 일제 때 조선신궁으로 오르는, 시련의 역사가 서린 계단의 일부다.
구 남산식물원(南山植物園) 자리에 있던 조선신궁은 일제가 식민지 이 땅에 세운 가장 높은 사격을 가진 신사로, 1918년 조성해 1925년 완공됐다. 조선총독부의 국가의례를 집전하고,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한, 피눈물 나는 역사의 현장이다.
계단 위에, 2019년 8월 14일 ‘일본군 피해자 기림의 날’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세워진,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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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사진=미디어펜 |
우리나라는 물론,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제국군의 성노예(性奴隸)가 돼야 했던 아시아태평양 13개국, 수십만 여성들의 고통을 증언하는 기념물이다.
연대(連帶)의 의미로 손을 맞잡은 한국, 중국, 필리핀의 세 소녀를, 고(故) 김학순(金學順)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위안부 피해를 1991년 8월 14일 사상 처음으로 공개 증언, ‘20세기 가장 용감한 여성’이란 평가를 들은, 바로 그 분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바로 옛 조선신궁 및 남산식물원 터다.
한양도성 성벽을 허물고 지은 조선신궁 배전(拜殿) 터, 기초구조물이 보전돼 있다. 배전은 일반인들이 참배하던 건물이다. 가로 18.9m, 세로 14.9m 크기로, 콘크리트 기초 위에 16개의 기둥이 세워졌다. 이 배전 터는 현재 유일하게 조선신궁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위에는 일제가 처음 조성한 방공호(防空壕)도 남아있다.
그 아래에, 발굴된 한양도성 성곽 유구(遺構)가 길게 이어져 있다. 성 돌에 따라, 태조 때 처음 성벽의 기초를 쌓은 장대석, 세종 때 성벽, 숙종 때 성벽 등을 시대별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遺蹟展示觀)이다.
1969년 조성된 남산식물원의 흔적은, 분수대(噴水臺)만 남았다.
당시 서울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였고, 분수대는 기념사진 ‘포토 포인트’였다. 2006년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식물원이 철거되면서, 분수대도 가동이 중단됐지만, ‘추억의 명소’로서 남겨둔 것이다.
그 옆에는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의 망토를 걸친 동상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당당히 조선신궁 터를 압도한다.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와 안중근 기념관 사이 ‘안의사 광장’에는, 의사(義士)의 어록과 글씨, 그리고 특유의 ‘손바닥 도장’을 새긴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
‘국가안위(國家安危) 노심초사(勞心焦思) : 국가의 위기에, 노심초사한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접명(見危接命) :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친다’, ‘인무원려(人無遠慮) 난성대업(難成大業) : 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안의사 광장에는 와룡매(臥龍梅)도 자란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창덕궁에 있던 매화나무를 일본으로 파 갔는데, 남산 와룡매는 그 후계목(後繼木)이다.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400년 만에 환국한 매화나무다.
한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휘호,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殿堂)’ 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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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광장' 김구 선생 동상/사진=미디어펜 |
안중근의사기념관은 1970년 10월 이 자리에 처음 건립됐고, 국민성금 모금을 거쳐 총 180억원을 투입, 신축공사를 통해 2010년 확대 개관했다. 지하 2층, 지상 2층의 구조다.
지하 1층에는 ‘참배(參拜)홀’과 상징 공간, 안 의사의 가문과 출생 및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제1전시실’이 있다. 지하 2층은 200석 규모의 강당.
1층은 안 의사의 하얼삔 의거 전 국내.외 활동자료를 모은 ‘제2전시실’이, 2층은 ‘하얼빈 의거’와 법정 투쟁,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등 옥중 유필, 순국(殉國)을 다룬 ‘제3전시실’, 기획전시실, 체험전시실과 추모실이 자리한다.
기념관 밖, 백범광장을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275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保護樹)가 있다.
계단 아래 백범광장에서 김구(金九) 선생과 이시영(李始榮) 선생 동상에 인사를 드린 후, 남산공원길 산책로를 따라 동국대학교까지 걸었다.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지도로 3.1운동에 앞장섰던 중앙학림(中央學林)을 계승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동국대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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