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시 원곡동 우리은행 외환송금센터 외부 현판./미디어펜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코리안드림을 싣고 외국인 노동자가 밀려오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15세 이상 외국인은 125만6000명이다. 올해까지 포함하면 170만명에 육박한다. 이 중 경제활동 참가율은 71.4%, 고용률은 67.9%, 실업률은 4.9%다. 외국인 취업자는 한국 전체 취업자(2581만명)의 3.3% 수준이다.

고국의 향수에 젖어 머나먼 타지에서 돈을 버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동남아시아 등 더운 나라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체감하는 매서운 겨울 바람은 더욱 세차다. 특히 우리 고유의 명절 설이 다가오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느끼는 고향은 더욱 그립기 마련이다.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위해 열심히 번 돈을 보내는 순간만큼 뿌듯할 때는 없다. 이들의 벌이는 1500~2000 달러 정도다. 한국 돈으로 매달 월급의 80%인 150만원 가량을 고향에 보낸다. 기숙사에서 거처를 마련해주고 끼니도 챙겨주기 때문에 쓸일이 별로 없다. 되도록 자신은 헐거운 옷을 사 입더라도 고향에 보내는 돈은 아깝지 않다.

하지만 국내 은행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계좌 개설에서부터 송금까지 벽안의 근로자에겐 벅찬 일이다. 또한 대부분 은행영업점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드릴 준비가 안돼 있다보니 언어장벽과 소통, 정보 제공에 있어 큰 장애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인편을 통해 돈을 보내면 배달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과거에는 이런 배달사고로 인해 외국에서 뼈 빠지게 일한 돈을 날리는 사례는 허다했다.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우리은행 외환송금센터가 고객 1000명을 2만명으로 늘리고 매출 역시 15배나 급증하는 등 놀라운 실적을 보여 화제다. 분명 그 지점에는 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느끼는 국내 은행의 현재를 엿볼 수 있을 거라 판단해 지난 13일 그곳을 찾았다.

오후 1시30분경 찾은 우리은행 원곡동 외환송금센터, 소문치고 한산했다. 여러명이 창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손님이 없네요" 첫 질문을 던졌다. 아차 싶었다. 사실 은행들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 대상으로 주말에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특화점포나 출장소를 운영하고 있다. 원곡동 외환송금센터도 그 중 하나다.

한국 사람은 점심시간 시간을 쪼개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지만 외국은 근로자는 도심에서 외진 공장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은행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점까지 와서 송금할 수 밖에 없는데 일요일에만 이용 가능하다. 실제 평일에는 보통 100~200명 가량, 월급일이 겹친 일요일에는 10배가량 많은 1000~2000명이 몰린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원곡동 외환송금센터 2층 출입구 앞 안내(Information) 데스크에는 애드민 이재덕씨가 외국인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일일이 외국인 손님들에게 찾아온 용건과 업무를 신경쓰느라 정신없다. 이미 그의 앞에 앉은 고객은 신규 통장개설 서류 작성에 여념이 없다. 이 씨는 서류에 기입해야 할 서명과 비밀번호 작성법을 반복적으로 영어와 우리말로 설명했다.

은행 업무를 알면 편리하지만 모르면 어렵고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본인임을 증명하는 신분증 발급이나 영문, 숫자를 조합해야 하는 비밀번호 작성법도 까다롭다.

스마트폰 뱅킹의 사용법을 알기 위해 인도네시아 청년이 안내데스크에 앉았다. 그 청년은 한국말이 서툰 탓에 자세한 설명에도 바로 숙지하지 못했다. 이마에 맺은 땀방울이 그의 심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10분여간 설명은 계속됐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는지 이 씨는 목을 축이도록 시원한 물 한잔을 권했다.

원곡동 외환송금센터에서는 외국인 고객에게 스마트뱅킹을 강추한다. 송금 통장을 만들고 스마트뱅킹을 배우면 시간을 쪼개 센터를 방문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또한 월급을 받은 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5분 안에 고국으로 송금돼 편리함과 신속함을 겸비할 수 있다.

은행 업무를 본 인도네시아 청년에게 "은행업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 다른 은행도 있는데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뭔지" 등을 물었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외환송금센터는 다른 곳 보다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처음에만 힘들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답하기를 꺼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원곡동 우리은행 외환송금센터의 외국인 고객은 2만 여명이다. 이 중 인도네시아 고객 비중이 60% 가량으로 가장 많다. 중국 30%, 나머지 10%가량이다. 원곡동 부근 외국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이곳을 찾는다.

일요일이 되면 스마트뱅킹을 배우러 대구, 부산, 목포에서도 먼거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발품을 판다.

외환송금센터를 찾는 외국인 고객들은 대부분 송금 업무가 가장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송금 외에도 외국인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니즈(Needs)를 찾아 긁어준다. 외국인 사업자 수입업무, 외국인 투자 지원, 해외송금, 환전, 산재보상, 국민연금, 퇴직금 지원서비스 까지 자산관리 원스톱 금융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김장원 외환송금센터 지점장은 "한국에서 어렵게 번 돈을 고국으로 잘 보낼 수 있을까, 그러지 않았을때 누구에게 연락할까 등 부족하고 알고 싶은 목마른 부분들을 챙겨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들이 귀국할 때 기댈 것은 1000만원 가량의 퇴직금, 국민연금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해 준다"고 설명했다. 김 지점장은 기자와 약속 전에도 앞서 국민연금과 미팅을 하고 난 후였다.

외국인 고객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사연을 들어봤다. 고객과의 소통과 원하는 정보가 부족하니 막힌 것을 뚫어보자는 기준을 세웠다.

실제 외국인 고객의 경우 외환서비스를 지원받을 때 연락처를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외국인 고객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자신의 신상정보가 노출됐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김 지점장은 업무용 핸드폰을 여러 개 구매했다. 그 핸드폰 번호로 홍보업무에 대해 외국인 고객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알려줬다.

주요 고객들에게 홍보용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고 저장하라고 주지시키고 카카오톡 친구 등록 요청을 했다. 이후  단문메세지(SMS)를 통해 고객에게 환율 정보, 상담 요청 등의 홍보를 시작했다.  이후 중국 고객의 경우 5000여명 가량 카카오톡 친구가 늘었다. 인도네시아 고객들은 카카오톡보다 페이스북을 선호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매일 환율 정보를 올리고 각종 금융정보를 업데이트했다. 특히 UCC를 통한 효과는 대단했다. ATM 사용방법, 통장정리 방법, 현금인출 방법, 이체 방법 등 각 섹션별로 나눈 UCC의 조회수가 2만건이 훌쩍 넘었다.

김 지점장은 "외국인들이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에 목말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를 통해 입소문이 나서 친구의 친구를 소개하고 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내 친구, 내 가족같은 서비스를 직원들이 해주니 상당히 반응이 뜨거웠다"고 소개했다.

사실, 원곡동 다문화음식거리 부근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 특화지점은 많다. 외환은행과 국민은행, 뱅크오브 차이나도 위치해 있다. 국내 은행의 서비스는 최고의 미소와 친절이 으뜸인 만큼 상대적으로 차별화를 찾기엔 어렵다.

외환송금센터가 인기를 끌수 있었던 모멘텀이 있었다. 바로 종교행사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이슬람 종교를 믿는 국가는 상당하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이곳의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라마단 행사가 끝난 후 이슬람 종교를 믿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기들만의 감사 기도 축제를 연다. 우리의 경우 감사 예배를 말한다. 유점승 우리은행 외환사업부 상무(현 인사담당 부행장)시절 외환송금센터 앞 만남의 광장 공원에서 이들을 위한 감사 기도 축제행사를 지원했더니 종교 지도자가 감사의 뜻으로 모인 외국인들에게 우리은행 거래를 당부했다. 또한 이광구 행장이 부행장 시절, 안산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에 방송장비를 기부했던 것도 계기가 됐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십시일반 걷어 만든 이슬람 사원인 만큼 이들에게 있어 방송장비는 애틋했다.

이같은 소식은 전국에 있는 이슬람 근로자들에게 퍼지게 되면서 외환송금센터의 성장동력이 됐다.

특히, 외환송금센터 3층에는 이슬람 고객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인 무솔라(Musolla)가 마련돼 있다. 언제든지 은행 일을 보다가 기도시간이 되면 다른 곳을 찾지 않고 이 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국내 금융권 최초로 영업공간을 활용해 무솔라를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종교는 삶 자체다. 우리은행이 단순히 이슬람 종교를 지원했다는 것보다 그네들의 삶을 이해하고 문화를 존중했다는 점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김 지점장은 "외국인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잘해주고 친절하면 은행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이라며 "베품과 좋은 시스템을 익혀서 고국으로 돌아갔을때 한국과 자기네 나라를 비교하게 되고 한국은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기업들이 외국에 진출하거나 수출했을 때 메이드인 코리아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현지에서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수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친절과 은행서비스를 체험했다는 자체만으로 대한민국 브랜드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심의 차이다. 고객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의미는 없다. 성장도 없다. 꾸준함 없이 일시적인 이벤트도 통하지 않는다. 김 지점장은 직원들에게 항상 전문성을 요구한다. 

현재 송곡동 우리은행 외환송금센터의 직원은 김 지점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이다. 이 중 4명이 외국인이다. 중국인 2명, 인도네시아 1명,  태국 1명 등이다. 오퍼레이션과 고객관리를 이원화시켰다. 직원이라 해도 한국 시스템 관리에는 리스크가 크다. 중국교포들은 한국식 교육을 받아서 쉽게 시스템을 익히는데 반해 타국인들은 아무리 석박사를 받아도 익히기엔 매우 어렵다. 대신 고객관리 부분은 자국민에 대해 릴레이션십을 잘할 수 있으니 집중하게 만들었다. 

친절함과 세심함도 빠질 수 없는 덕목이다. 일례로 얼마 전 인도네시아 고객이 로또 1등에 당첨돼 당첨금 수령에서부터 관리까지 상담을 진행했지만 그 후 연락이 끊겼다. 외국인이 거액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위험해질 것은 뻔할 테니.

   
▲ 안산시 원곡동 우리은행 외환송금센터의 게시판에는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 고객들의 사진이 붙여있다. 이들의 코리안드림은 이곳에서 부터 시작한다./미디어펜
또한 고양터미널 화재사고 때도 사망자 중 중국인 2명이 있었다. 회사에서 사망자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내국인과 달리 지급절차가 복잡하다. 자칫 브로커들의 농간에 공중분해될 수 있다. 외환송금센터에서는  무료로 컨설팅을 지원하고 유족들에게 도움을 줬다.

외환송금센터는 센터 앞 광장에서 수많은 NGO 단체들과 함께 매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설 연휴에도 3층 무솔라 기도실을 오픈해 기도와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설 연휴동안 외국인 근로자는 회사가 휴무이기 때문에 원곡동 다문화음식거리를 많이 찾을 거란다. 자국의 음식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국에 돈도 보내야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는 곳인 이유다.

김 지점장은 방문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안산 부근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찾아가가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평일 야간에 회사에서 봉고차를 지원해주고 있어 간단한 장비를 싣고 은행서비스를 펼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남동공단, 시화공단 등 외국인 근로자를 담당하는 회사 관리자에게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안내해달라고 홍보할 계획이다.

김 지점장은 2012년 9월 외환송금센터가 세워진 후 3년간 일요일에 쉬지 못했다. 몸은 힘들지만 행복한 마음이 없다면 쉽지 않을 일이다.

김 지점장은 "외국인 고객들이 즐거워하는데 어쩌겠는가"라며 "즐겁고 행복하니까 즐겁지 않으면 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원곡동 외환송금센터를 그대로 적용한 김해 외환송금센터를 오픈했다. 외국인들에게 있어 김해는 제2의 도시다. 이곳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김 지점장에게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고객들이 감사하다고  선물을 보내온다. 한 인도네시아 고객은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인 바띡(Batik)을 보내왔다. 그는 일요일 바띡을 입고 외국인 고객을 맞이한다.

외국인 영업의 최전방도, 외국인 근로자의 코리안드림도 이상무다.